사람독과 사람약

사람 속에서 병이 시작되기도 하고, 사람 속에서 치유가 완성되기도 한다

by 고기완


사람으로 인하여 독약이 되기도 하고 명약이 되기도 한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들은 늘 비슷한 말을 한다. “몸이 아파서 왔어요.”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진찰해 보면, 그 말의 이면에는 늘 다른 문장이 숨어 있다.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요.” “인간관계 때문에 지쳤어요.” “마음이 버티질 못하겠어요.”


몸은 결국 마음이 선택한 마지막 언어이고 그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약도, 음식도 아닌 사람이다. 임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만성 통증, 소화 장애, 불면, 두통, 심지어는 설명되지 않는 피로까지도 그 뿌리를 따라가 보면 인간관계의 매듭에 닿아 있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사람독>과, <사람약> 처방전에 적힌 약재 이야기가 아니다. 환자의 얼굴에, 환자의 목소리에, 환자의 맥상태에 스며 있는 것들로 환자가 직접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안다. 이 사람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누군가가 이 환자의 생명을 갈아먹고 있다는 것을. 독은 환자로부터 먼 곳에 있지 않았고 환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한의학에는 칠정(七情)이라는 개념이 있다. 기쁨, 분노, 근심, 사려, 슬픔, 두려움, 놀람. 이 일곱 가지 감정이 과하거나 억눌리면 오장육부를 상하게 한다고 본다. 분노는 간을 치고, 근심은 폐를 짓누르고, 두려움은 신장을 흔든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으며 마음이 몸을 망친다는 것을. 그런데 그러한 마음은 어디서 오겠는가? 대부분, 사람에게서 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관계는 외부에 있지만 그 관계가 독이 되는 순간은 내 안에서 결정

부모라는 이름의 독이 있다.

부모가 자식이 잘 되길 바란다는 말로 포장된, 그러나 실은 부모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자라기를 강요하는 왜곡된 사랑.


진료실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위장이 항상 뒤틀렸다. 밥을 먹으면 체하고, 잠들기 전이면 복통이 왔는데 원인을 따라가면 언제나 같은 곳에 닿았다. 어머니와의 전화. 주 3회, 한 시간씩. 그 통화 후 그녀는 반드시 몸이 망가졌다. "엄마가 미운 건 아닌데요. 그냥 전화만 끊으면 위가 뒤집혀요."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배우자라는 이름의 독도 있다.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 가장 많은 말을 주고받는 사람. 그래서 가장 정밀하게 상처를 낼 수 있는 사람.


30대 남성이 불면증으로 왔다. 잠들 수가 없다고 했다. 정확히는, 잠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자고 나면 또 아침이 오고, 아침이 오면 아내와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라고. 몇 년 동안 부부지간에 한마디도 다투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게 더 무서웠다. 분노도 없고, 기대도 없고, 그냥 피하는 것. 그 관계가 이 환자의 심장을 두 시간마다 두근거리게 하고 있었다.


자식이라는 이름의 독도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독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알지만 자식이 부모에게 독이 되는 경우는 말하기가 더 어렵다. 부모로서 죄책감이 앞서기 때문인 경우가 있고 자식에 대한 걱정은 밤잠을 앗아간다.


60대 여성은 두통이 만성이었다. 진통제를 매일 먹었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그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그 아이 생각만 하면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사랑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내 몸으로 낳은 자식사랑이 가장 독한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진료실에서는 매일 본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무너지지 않고, 어떤 사람은 깊이 병들어 간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해석하는 각자의 방식에 있다.


누군가는 부모의 간섭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그것을 억압으로 느낀다. 누군가는 배우자의 말 한마디를 위로로 듣고, 누군가는 그것을 공격으로 해석한다. 즉, 관계는 외부에 있지만 그 관계가 독이 되는 순간은 내 안에서 결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이 나를 아프게 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 더 정직하게 들여다보면 그 아픔은 ‘사람’이라는 외부 자극과 ‘나의 해석’이라는 내부 반응이 만나서 만들어진 결과다. 그래서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기에 그래서 더 깊고, 더 위험하며, 더 강력하다.



나는 사람이 약이 되는 장면도 매일 본다.

몇 년째 잘 낫지 않던 난치병 환자가 어느 날 훨씬 좋아져서 왔다. 그 환자는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고 한 달에 한 번 밥을 먹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한 끼 식사 이후로 잠을 잘 잔다고 했다. 소화가 잘 된다고 했으며 만성 두통이 줄었다고 했다. "그 친구랑 있으면 제가 저 같아요."


나는 환자의 그 말을 진료 차트에 메모해 두었다. '제가 저 같아요.' 이것이 명약의 정의다. 비싼 약재도, 오래된 처방도 아니다. 내가 나일 수 있게 해주는 사람. 그것이 그 환자에게 가장 강력한 난치병을 치료한 명약이었다.


같은 말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한다. "괜찮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이 두 글자는 완전히 달라진다. 진심으로 안부를 묻는 사람의 "괜찮아?"는 굳게 닫혀 있던 무언가를 건드려 눈물이 나온 후 몸이 스르르 풀린다. 반대로, 의무처럼 던지는 "괜찮아?"는 더 외롭게 하여 혼자라는 것을 더 또렷하게 확인시켜 준다.

독과 약의 차이는 성분이 아니라 인간관계가 결정한다.


사람은 동시에 가장 강력한 <보약>이기도 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긴 시간 쌓인 긴장을 풀어주고, 진심 어린 공감 하나가 깊은 우울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누군가의 존재 자체가 삶을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인간관계가 면역이며 그 관계는 나를 비추는 거울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는 상처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더 깊이 알게 된다. 왜 그 말에 그렇게 아팠는지,

왜 그 행동이 그렇게 화가 났는지, 그 모든 감정은 결국 나라는 존재의 구조를 보여주는 신호다. 그래서 관계는 단순한 외부 사건이 아니라 내면을 탐색하는 하나의 통로다. 누군가가 나를 힘들게 할 때 그 순간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관계는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그 질문 하나가 독이 될 관계를 약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나를 가장 빠르게 지치게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를 가장 빠르게 회복시키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마 몸이 반응할 것이다. 어깨가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위장이 조이거나 풀리거나. 호흡이 얕아지거나 깊어지거나. 그것이 바로 <사람독>이고, <사람약>이다.


사람은 최고의 처방전이며 인간관계를 약으로 만드는 몇 가지 기준

임상에서도 그런 순간을 자주 본다. 가족의 지지 하나로 치료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는 환자, 친구와의 관계 회복 이후 오랫동안 낫지 않던 증상이 사라지는 경우. 그럴 때면 확신하게 된다. <사람은 최고의 처방전>이 될 수 있다.


침을 놓는 위치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그분의 감정을 풀어내는 과정이었다. 신기하게도, 관계의 매듭이 조금씩 풀리자 통증도 함께 완화되기 시작했으며 이런 경험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다. 몸의 병은 종종 마음의 그림자이고, 그 마음의 상당 부분은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보다 “그 관계를 어떻게 다루느냐”인데 관계를 명약으로 만드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거리를 조절할 줄 아는 지혜. 모든 관계가 가까워야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야말로 서로를 지키는 방법이다.

둘째, 기대를 줄이고 이해를 늘리는 태도. 기대는 클수록 실망을 키우고, 이해는 깊을수록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셋째, 나 자신을 먼저 돌보는 중심. 내가 무너지면 어떤 관계도 건강할 수 없다. 자신을 지키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시작이다.


보약 같은 사람, 명약이 된 사람

한의학에서는 병의 원인을 외인(外因), 내인(內因), 불내외인(不內外因)으로 나눈다.

외부의 바람, 추위, 습기가 외인이고, 칠정의 상함이 내인이며, 음식과 노동이 불내외인이다. 그런데 임상에서 이 모든 원인의 뿌리에 사람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추운 날 옷을 챙겨주는 사람이 있고, 제대로 먹게 해주는 사람이 있고, 잠들 수 있게 옆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이 외인도, 내인도, 불내외인도 막아주는 <<보약 같은 사람>>이다.


35년 진료를 보다 보며 알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정교한 독은 실험실이 아니라 사람의 인연줄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약도 약물학 책에 있지 않고 인간관계 안에 있었다. 사람의 오래 얽히고설킨 인연일수록 독의 농도도 진하고, 약의 효력도 너무 깊기에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인연의 끈 속에 놓여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부부, 친구, 그리고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까지. 이 관계들은 때로는 따뜻한 온기를 주지만, 때로는 서서히 스며드는 독이 된다. 부모의 말 한마디가 평생의 상처가 되기도 하고, 배우자의 침묵 하나가 심장의 박동을 무겁게 만들기도 하며 친구의 배신은 간을 상하게 하고, 이처럼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라 신체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부모가 독이 된 사람이 있고, 부모가 명약이 된 사람이 있으며 배우자가 독이 된 사람이 있고, 배우자가 명약이 된 사람이 있었다. 자식이 독이 된 사람이 있고, 자식이 명약이 된 사람이 있고 친구가 독이 된 사람이 있고, 친구가 명약이 된 사람이 있었다.


사람은 참으로 모순적인 존재다. 서로를 살리기도 하고, 서서히 병들게 하기도 한다. 같은 사람이 어떤 순간에는 독이 되고, 어떤 순간에는 약이 되는 것을 의료현장에서 매일 접하면서 정말 인간관계는 너무 어렵고, 그래서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진료실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며 느끼는 것은 하나다.


질병은 몸에만 있지 않고 치유 또한 몸에서만 시작되지 않으며 사람 속에서 병이 시작되기도 하고, 사람 속에서 치유가 완성되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독이 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나를 살리고 있는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하나.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 답을 찾는 순간, 관계는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 삶을 치유하는 가장 깊은 명약이며 <보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