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적기업 불나방 Jun 01. 2020

04  솔직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

사회적기업에게 주는 공짜돈만 필요하다고!


1


  역시나 조용한 사무실. M을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다.


  '떨어졌군.'


  M은 낙담하지 않았다. 떨어질 것 같았고, 떨어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막상 떨어지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원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아주 약간 있었고, 모든 서류를 자신이 작성했기 때문이다.


  M의 회사는 모기업 주최 사회적경제조직지원하는 공모사업에 도전했다. 이 공모사업은 '출발 그룹'과 '성장 그룹' 2개 분야로 구분해서 사회적경제조직의 지원 신청을 받았다. '출발 그룹'은 법인 설립 2년 미만이며 연 매출 5억 미만의 사회적경제 조직이, '성장 그룹'은 법인 설립 2년 이상 또는 연매출 5억 이상의 사회적경제조직이 도전할 수 있었다.


  회사 대표는 M에게 '출발 그룹' 분야로 지원 서류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M은 회사가 이 공모사업과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서류상으로는 '출발 그룹'이 맞았지만, 법인 설립을 한 지 2년이 되지 않았을 뿐 본 사업을 10년 넘게 해왔다. 잘 나갈 때는 연 매출 5억을 넘길 때도 있었다.

  회사 대표는 사회적기업이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 때문에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전환했을 뿐이었다.



2


  "대표님, 우리 회사는 1년 기다렸다가 내년에 성장 그룹로 지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회사 홈페이지에 예전 연혁도 다 나와 있고, 재무제표도 제출해야 되는데 연 매출 5억이 넘은 적도 있으니까 신청 조건에 적합하지 않아요.

  출발 그룹을 지원한다는 공모사업의 취지에도 어울리지 않고요."

  "아니야. 이번에 출발 그룹으로 지원해. 법인 설립 2년 미만, 연 매출 5억 미만 다 부합해. 서류상으로 아무 문제없어. 성장 그룹은 무이자 대출 지원이잖아. 출발 그룹은 대출이 아니라 돈을 그냥 준다고. 성장 그룹은 메리트가 없어."

  "대표님 집 잘 살잖아요. 건물도 있고. 회사도 재정 상태 좋잖아요. 우리 회사는 돈 받을 필요 없잖아요. 우리보다 훨씬 필요한 곳이 지원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왜 욕심을 내세요."


  M마지막 말을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 이 말을 입 밖에 냈다면 M은 더 일찍 회사를 그만둘 수 있었을 것이다. M은 대표의 지시대로 '출발 그룹'의 지원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했다. 더 이야기해봤자 달라질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서류 심사와 현장 심사를 통과하자 대표는 기대에 부풀었다. 대표는 PT 발표 및 면접 심사는 자신이 볼 것이며 합격하고 난 후 일들은 M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자신은 M에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하면서 웃었다. 대신 M에게 PT 발표 자료 및 면접 대비 질문 리스트를 작성할 것을 지시했다.

 

  '자신이 한다고 했으면서...... 발표 자료랑 면접 준비는 하는 사람이 직접 해야지. 에휴.'


  M은 이번에도 하고 싶은 말을 참았다. 혹시나 자신에게 좋은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질문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찾아보니까 업력이 꽤 되시네요. 홈페이지의 회사와 서류에 있는 회사가 동일한 회사인가요?"

  "저희 공모 사업에 선정된 기업들에게 다양한 지원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어떤 지원이 필요하신 가요? 그 지원을 통해서 어떤 성과를 내고 싶으신가요?"

  "대표님, 재무제표가 좀 이상한데요. 내일까지 공증된 재무제표를 저희 쪽에 다시 제출해주실 수 있으세요?"


   면접관들은 M이 우려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했다. 


  '솔직하게 말해. 공짜로 돈 받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그걸 위해서 서류상 출발그룹으로 다 맞췄다고.'


  대표는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 M은 당황하는 대표의 얼굴과 대표의 대답을 듣고 굳어지는 면접관들의 얼굴을 보았다. M의 회사는 면접을 망쳤다. 결국 M의 회사는 대표가 기대했던 사회적경제조직을 지원하는 공모 사업의 '출발 그룹'에 선정되지 못했다.  




3


  대표는 M을 불렀다.


  "우리 떨어졌어. 그런데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어. 납득이 가지 않더라. 그래서 내가 전화를 했어. 왜 떨어졌는지 물어봤지. 담당자가 우리가 선정 기준에 따른 평가에서 다른 회사보다 점수를 덜 받았다고 하더라고. 뭐, 당연한 이야기지. 그래서 내가 점수표나 면접 심사표를 보여달라고 했지. 우리 회사가 뭐 어떤 점이, 얼마나 부족한 지 알아야 보완해서 다음에 또 지원할 것 아니냐고. 그런데 그쪽에서 공개하는 건 어렵다고 하더라고."

  "왜 공개할 수 없다고 하던가요?"

  "몰라, 뭐 고유 권한이니 뭐니~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말하더라고. 그래서 면접 봤던 면접관 바꿔달라고 했지. 면접관한테 직접 들어봐야겠다고. 그러니 꼭 그렇게 해야겠냐고 물어보더라고. 아니면 내가 민원 넣겠다고 했지. 지원자가 원하면 정보 공개해야 되는 것이 의무 아니냐고. 그러니 우선 알겠다고 하면서 끊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담당자 말고 팀장한테 전화가 오더라고. 우선 재무제표까지 다시 제출하라고 하고 번거롭게 해 드렸는데 탈락 소식을 전달하게 되어서 죄송하다고 말하더라. 면접은 이런저런 기준에 의해서 진행되었고 점수 집계를 해보니 우리 기업이 아쉽게 선정되지 못했다고. 내년에도 사업은 계속되니까 다시 도전해달라고 하더라고. 팀장한테까지 전화 오니까 나도 더 이상 말 못 하겠다 싶어서 알았다고 하고 끊었지. 다음에 또 볼 수도 있으니까."

  "네, 그렇군요. 제가 전화해서 면접 심사표 공개해달라고 다시 말할까요?"

  "아니야, 그러지 마. 좋은 관계 유지해야지. 일 봐."




4


  자리로 돌아와 의자에 앉은 M은 왜 떨어졌는지 납득이 가지 않아도 이제 그만 한다는 대표와 면접 심사표를 공개하는 건 어렵다고 말한 담당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왜 떨어지긴요. 대표님 욕심 때문에 떨어졌죠. 애초에 우리 회사는 선정 기준에 맞지 않았어요. 그저 지원금만 준다고 하면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시는데, 지원금이 절실히 필요하지도 않은 곳에 쓰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왜 면접 심사표 공개하는 것이 어렵죠? 심사 결과에 떳떳하지 못한 건가요? 심사 과정에 떳떳하지 못한 건가요? 심사 다 끝나서 면접 심사표 다 없앴나요? 사업 결과보고서 쓰는데 필요하지 않나요? 공개해주세요. 알 권리가 있습니다."

 

  '이제 와서 말하면 뭘 하나. 달라질 것도 없는데.'


   M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대표의 '교육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 담당자, M 모두 다 솔직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손님'과 '사회적의적기업'이 나눈 이야기에서 발견한 것,

  평가와 관련된 사항에 대한 고유 권한과 평가위원회 및 평가결과 등은 공개할 의무가 없다.


  '아, 그렇구나. 이런 것도 있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싶던 순간이었다.

   



   '사회의적기업'님은 다소 음...... 뭐랄까...... 좀 격한 반응이셨다.




 * '이상한 사회적기업, 이상한 사회적경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를 접하며 '이상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들은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인지,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가 이상한 것인지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03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거짓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