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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적기업 불나방 Jun 02. 2020

05 과분한 꿀

사회적기업 프로보노를 하면 이런 선물을 그냥 받을 수 있습니다.



1


  "꿀이네! 이거 어디서 났어?"

  "누가 줬어. 왜 줬는지 모르겠지만. 엄마 먹으라고 갖고 왔어. 아, 유통 기한 봐봐. 지났을지도 몰라."


  얼마 전 J는 시킨 적 없는 택배를 받았다.


  '프로보노로 활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꿀이네. 2개나 들었네. 왜 줬지. 나한테 왜 줬지. 그때도 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과하네.'  


  J는 재능나눔은행의 프로보노 활동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경험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던 J는 20XX년 2월, 재능나눔은행 프로보노 신청을 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재능나눔은행으로부터 프로보노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라는 문자를 받았다. 참가하겠다는 답장을 보내고 J는 일주일 남은 오리엔테이션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프로보노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J는 행복했다.

  

  J는 오랜만에 옷을 차려입고 오리엔테이션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음식들이 있었다. 몇 가지 음식을 챙겨 자리에 앉았다. J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프로보노 000'이라는 명찰을 목에 걸었다. 책임감과 긴장감을 느꼈다. J는 오리엔테이션 참석자 중에 가장 열심히 참여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진행자의 말을 필기하는 사람은 J 밖에 없었다. 오리엔테이션 내내 J는 생각했다.


  '내게 재능 나눔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있는 재능 없는 재능 다 긁어모아서 반드시 도움을 주겠어!'




2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2달이 흘렀다. 2달 동안 J를 찾는 사회적경제조직은 단 한 곳도 없었다. J는 수시로 재능나눔은행 홈페이지를 방문했지만 관련 활동에 대한 글을 보진 못했다. 다른 프로보노들의 활동 이야기도 없었다. 방에 걸려 있는 사회적기업 에코백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 에코백에는 선풍기, 다이어리, 볼펜이 들어있었다. 프로보노 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오리엔테이션이 끝나면서 받아온 것들이었다.

 

  재능나눔은행이 망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 J는 문자를 받았다.


  '재능나눔은행 네트워킹 데이 안내. 한 해 동안 본 사업에 많은 도움을 주셨던 분들을 모시고......'


  재능나눔은행 사업 성과 공유, 프로보노 활동 사례 공유, 우수 프로보노 시상 등 행사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J는 가지 않았다. J는 프로보노 활동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기에, 괜히 참석해서 그때처럼 공짜 음식을 먹고 (혹시나 있었을지도 모를) 공짜 선물 공짜 박수 받고 싶지 않았다.  


  또 2달이 흘렀다. 2달 동안 J를 찾는 사회적경제조직은 역시 단 한 곳도 없었다. J는 그동안에도 수시로 재능나눔은행 홈페이지를 방문했지만 관련 활동에 대한 글을 보진 못했다. 다른 프로보노들의 활동 이야기도 본 적이 없다. J는 또다시 단 한 번도 프로보노 활동도 하지 못했다.


  재능나눔은행이 진짜 망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 J에게 과분한 택배 온 것이었다.  


  '재능나눔은행 프로보노로 활동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꿀을 선물로......'    


  J는 자신에게 왜 꿀이 왔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J는 프로보노로 활동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J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꿀이었다. 오리엔테이션 때 참석했던 사람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과분한 꿀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J도 받았으니까.


  '도대체 꿀 값으로 얼마가 쓰인 걸까.'


  그 해 기후가 좋아 아카시아꽃이 만발해 꿀이 풍년이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사회적경제 분야에서는 종종 이렇게 사회적기업에서 만든 선물을 나눠 갖는다는 이야기는 있었다.








  과분한 꿀, 저기 어딘가에 있다.






 * '이상한 사회적기업, 이상한 사회적경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를 접하며 '이상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들은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인지,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가 이상한 것인지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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