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회적기업 불나방 Jun 03. 2020

06 속인 걸까 속은 걸까

이런 이상한 사회적기업가를 봤나.


1


  당신은 사람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당신은 사회적기업 관련 교육 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당신은 월급을 차근차근 올려주겠다고 했다.

  당신은 편히 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했다.

  당신은 하고 싶은 것이 있거든 무엇이든지 하라고 했다.

  당신은 자신의 뒤를 이어 여기를 맡아도 좋다고 했다.

  당신은 더 좋은 곳이 있다면 언제든지 가도 좋다고 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었다.

  나에게 사회적기업을 교육하는 것은 꿈이었다.  

  나에게 차근차근 올라갈 월급은 희망이었다.

  나에게 자리가 주어진다는 것은 일을 잘하고 싶게 만드는 힘이었다.

  나에게 무엇이든지 하라는 말은 일을 하고 싶게 만드는 의욕이었다.

  나에게 여기를 맡아도 좋다는 말은 마음의 불안감을 해소시켜주는 것이었다.

  나에게 언제든지 좋은 곳으로 가도 된다는 말은 이곳을 좋게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이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A는 생각했다.


    '나는 당신한테 속았다.'

  



2


  A는 아버지가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으로 회사 근처에 전셋집을 마련했다. 계약 기간은 2년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고향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는 곳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A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대표는 A에게 함께 꿈을 이루자고 했다. 대표는 A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A는 약속을 믿었다. 대표는 A에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A는 그런 대표를 믿었다.


  "자네도 알다시피 요즘 회사 매출이 예전 같지 않아. 내가 이런 말 하는 건 처음인데...... 회사를 나가줬으면 좋겠어. 다음 달까지만 나와."

  "네, 알겠습니다."


  A는 일한 지 9개월 만에 대표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A는 이직할 때 경력이라도 삼을 수 있도록 2달 더 일하게 해달라고 대표에게 부탁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1년을 채우면 퇴직금을 줘야 하니, 대표가 그런 일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겪어 본 바 대표는 이런 것을 허락할 사람이 아니었다. 회사가 어렵다는 것도 거짓말이라는 걸 A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별 다른 말 없이 대표의 해고 통보를 받아들였다. 대표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1달 후 A는 회사를 나왔다.


  "아예 내려가시는 거에요?"

  "네, 회사 때문에 올라왔는데 잘렸으니 내려가서 살려고요."


  고향으로 내려가는 용달차를 타고 가며 A는 대표에 대해 생각했다.

  

  너는 사람을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중요시했다. 이익에 따라 사람을 쓰고 버렸다.

  너는 사회적기업 관련 교육을 혼자 했다. 나에게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 설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너는 월급을 올려 줄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1년 후에 월급을 올려주겠다 하고 10개월 만에 해고했다.

  너는 아주 더운 곳에 내 자리를 만들어줬다. 나는 네가 불렀을 때만 시원한 바람을 쐴 수 있었다.

  너는 나 같으면 그런 건 하지 않겠다는 말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할 때마다 그랬다.

  너는 자신의 자리는 힘든 곳이라고 여긴 미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미래도 없는 회사를 다닌 것이었다.

  너는 더 좋은 곳이 없었던 나에게 1달 후에 나가라고 통보했다. '더 좋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가도 좋다'는 말이 이렇게 쓰일 줄 다.


  '내가 완벽히 속았군.'




3


  A는 깽판을 치고 회사를 나오고 싶었지만 속은 자신이 바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 대신 속으로 백번, 천번 대표 욕을 했다.


  'XXX, XXX. XXX, XXX. XXX, XXX.'


  뜨거웠던 가슴속 온도가 조금, 아주 조금 내려갔다. A는 이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시는 바보같이 속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10개월 간의 타지 생활에서 A에게 일어난 좋았던 일은 집주인에게 전세 보증금을 쉽게 돌려받은 후 고향으로 내려온 것이었다. 힘들게 택시 운전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A의 아버지 은행에 돈을 빨리 갚게 되어 이자라는 생돈을 더 이상 쓰지 않게 되었다.


  A에게 일어난 좋았던 일은 이 일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진짜 이 일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난다.    






 * '이상한 사회적기업, 이상한 사회적경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를 접하며 '이상한데.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분들은 연락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이상한 것인지, 사회적기업과 사회적경제가 이상한 것인지 함께 이야기 나눠봅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05 과분한 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