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자립할 수 있었는데...
대표님, 김재훈입니다. 대표님의 얼굴을 보면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부디 양해 바랍니다.
제가 예비사회적기업 일자리 창출사업으로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지도 다음 달이면 벌써 2년 째군요. 시간 참 빠릅니다.
처음 이곳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어디에 취직했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회사 이름을 말하면 예비사회적기업이 뭐냐, 거기가 어디 있는 곳이냐, 무슨 일을 하는 곳이냐, 비전은 있는 곳이냐, 월급은 제때 나오냐 등 이어지는 질문으로 마음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사회에 의미 있는 일, 사회에 좋은 일을 하는 회사에 다닌다는 점이 참 좋았습니다. 알아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지만 저와 회사가 알고 있으니까 괜찮았습니다.
입사한 후 한동안 명함도 없었고 사무를 볼 때 필요한 용품들도 제때 지급되지 않았고 사무 관련 일을 하는 것으로 계약을 했지만 현장의 일도 할 수밖에 없었고 연장 및 야근 수당도 없었고 연봉 협상도 없었고 조직의 체계도 없었고 심지어 월급이 제때 들어오지 않은 적도 있었지만... 다 함께 열심히 한다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버텼습니다.
대표님, 제가 맡은 일은 주로 서류를 쓰는 것이었지요. 사회적기업 사업개발비 지원사업, 일자리 창출사업 관련 서류와 회사의 성장에 도움을 줄 다양한 지원 사업의 서류들을 써왔지요. 돌아보니 2022년에는 액셀러레이팅 지원사업, 펀딩 지원사업, 지역 특화 제품 지원사업, 로컬크리에이터 지원사업, 인프라지원사업, 전문인력 지원사업, 경영 컨설팅 지원사업, 우수 예비사회적기업 지원사업 등 30개 정도의 지원사업 서류를 작성했고 2023년에는 지역 특화 지원사업, 메이커스 지원사업, 유통지원센터 지원사업, 우수 제품 박람회 지원사업, 소상공인 새 바람 지원사업, 세일 페스타 지원사업, ESG 지원사업, 기술 특허 지원사업, 강한 소상공인 지원사업, 청년 대표 육성 지원사업 등 35개 정도의 지원사업 서류를 작성했었더라고요. 2024년은 벌써 9개를 썼고요.
굵직한 것들, 합격한 것들의 수가 이 정도고... 쓰다가 포기한 것들, 떨어진 것들, 소소한 것들까지 합하면 약 2년 간의 근무 동안 100개 이상의 지원사업 서류를 작성한 것 같습니다.
저 참 열심히 한 것 같네요.
그런데 대표님. 우리 회사가 이렇게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지원사업 서류를 쓸 때 매출 숫자는 커져만 갔는데... 왜 우리는 아니 저는 나아진 것이 없죠?
저는 분명히 지원사업 관련 서류만 담당하기로 했는데... 홍보 및 마케팅, 인사 노무, 유통 업무까지 제게 넘어오고... 심지어 회사 일이 아닌 것까지 요청이 들어오고... 해야 하는 일들은 점점 늘어나고... 다음 달 월급은 제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가고... 왜 이런 것이죠?
그리고 사회적기업 일자리 창출사업이 곧 종료되는데... 저는 여기서 계속 일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일을 하면 월급은 받을 수 있는 건가요? 우리가 작은 회사이다 보니... 저희들은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사업의 인건비 지원이 끊기면... 당장 저희에게 줄 월급이 없다는 것을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대책이 있으신가요.
대표님의 솔직한 생각과 마음도 듣고 싶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이 더 듣고 싶습니다. 대표님께서 저희를 어떻게 하실 것인지 말씀해 주시면 우리도 덜 불안할 것입니다. 대표님께서 계획을 말씀해 주셔야 저희가 앞날에 대해 대비할 수 있으니... 저희는 지금보다는 덜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의 계획을 꼭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대표님의 답장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근로자 김재훈 배상.
어쩔 수 없었지...
하면서 살다보면
본래의 선에서 크게 엇나가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난 잘못이 없어...라며
혼자만의 판단으로 살다보면
항상 제 자리에서 걷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변화를 원하지만
그 변화의 동력을
과거의 자신에게서 빌려온 사람은...
뒤로 가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끼 / 윤태호>
사회적경제조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지인을 떠올리며 쓴 이 글.
이 글을 다 쓰고 나니...
2013년 1월 14일 12시 35분에 남겼던 위 내용의 메모가 떠올랐다.
나는 뒤로 가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