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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May 11. 2022

다정한 며느리는 아니라서

다정한 사람이 아니다. 가까운 가족에게는 무심하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 편이다.


언젠가 어머니는 내게 "너는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의도에서 한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긍정의 평가는 아니었다. 그 말은 나에게 상처가 되었다. 어머니 말대로 나는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그것은 내 감정으로 인해 상대가 소란해지는 것을 염려하는 마음에서였고, 의사가 된 이후로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훈련받았기 때문이었다. 슬픈데 덤덤한척하고, 울고 싶은데 울음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은 맞지만, 차가운 사람은 아니다. 얼굴이 희고 손발이 차가워 늘 추워 보이지만, 오히려 마음은 쉽게 요동치는 사람이다.


아버님의 장례식이 끝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시어머니가 코로나에 감염되었다. 어머니는 기저질환자, 면역 저하. 게다가 백신 미접종자였다. 백신에 대한 공포심과 아버님을 간병하느라 백신 접종 시기를 놓쳤던 것이다. 어머님의 치명률을 계산해 보니, 같은 연령대에 비해 15배나 위험했다. 나는 두려웠다. 아버님에 이어 어머니까지. 이렇게 헤어질 수는 없었다.


확진과 동시에 병실이 배정되었다. 홀로 계실 어머니에게 연락을 취했다. 내가 품었던 두려운 마음을 감추고 최대한 평안하고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행동했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고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평가 내릴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다정함을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것은 매일 문자 하기였다.


- 어머니 괜찮으세요?

- 어머니 간밤 잘 주무셨나요?

- 잠자리 불편하셨을 텐데, 많이 주무시고 좋은 생각만 하세요.

- 어머니 좀 어떠세요. 옆에 있어 드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속상하네요. 힘드시면 참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간호사실에 말씀하세요.

- 어머니, 아침 식사하셨어요? 여긴 미세먼지가 심합니다. 건조할 텐데 따뜻한 물 많이 드세요.

- 어머니, 입맛 없으셔도 식사 제때 잘하시고 물 충분하게 드세요.

- 잘 먹고, 잘 자는 것. 이 두 개만 신경 쓰세요.

- 어머니, 바깥은 오늘부터 한파랍니다.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모두 잘 드세요.


내친김에 하트♡까지 보내버렸다. 푹 주무세요~ ♡라고.

남편한테조차 보내지 않고 아껴 두었던 하트다.


아마 놀라셨을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차가운 며느리인 줄 알았던 내가 이런 문자를 보내다니 말이다. 어머니로부터 답장을 받지 못하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상관없었다.


나의 과감한 하트는 아버님에게 미처 보내지 못했던 아쉬움에서 나왔다. 가깝지만 먼 당신. 아버님에게 나는 다정한 며느리가 아니었다. 마음은 아니었는데, 표현하지 않고 감추고 살았다. 의식없이 돌아가시기 직전에야 겨우 손을 잡아드렸을 뿐이다. 어머니에게만큼은 이번이 나의 다정함을 어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입원 기간 동안 매일 다정함을 보냈다. 더욱이 입원 초 적극적인 치료에도 차도를 보이지 않아 나의 다정함에 힘이 실렸다. 입원 나흘째부터 치료제가 효과를 나타나기 시작했다. 열흘이 지나 어머니는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어머니로부터 입원 후기를 들었다. 입원 기간 동안 입맛이 없어도 '네 말 듣고 밥을 잘 먹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의사가 절대로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이 '환자의 입맛 없음'이다. 병환 중에 있는 환자는 입맛이 없고, 입맛이 없으면 식사를 소홀하게 되고, 다시 또 병의 회복이 더디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환자의 회복은 밥을 잘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렇기에 나는 어머니에게 밥을 잘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여러 번 말하곤 했었다. 밥 잘 먹으라는 나의 다정함이 어머니의 회복에 한몫했을 것이다. 나는 의사가 처방했던 약뿐 아니라 나의 다정함도 유효했다고 믿는다.    


다시 또. 나는 여전히 다정한 며느리는 아니다. 어머니는 어렵다. 다만, 기회가 왔을 때 다정함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기로 했다. 다정함을 아끼지 않기로. 이제는 며느리 역할에 한정되지 않는다.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기쁨과 염려, 애정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내 메신저 창에 하트가 늘었다. 그건 '나 감정 없는 사람 아니고, 이렇게 사랑 충만한 뜨거운 사람이야.'라는 뜻인 것이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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