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때문에 삶이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by 닥터 키드니

초등학교 4학년 겨울, 그날의 시작이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이렇게 피곤한 일인 줄 몰랐다.


‘이런 건 또 왜 날 닮아서 빨리한다니.’


엄마는 한숨 비슷한 걸 쉬었다. 이른 초경이었다. 또래에 비해 여성으로 사는 고단함을 일찍 깨달아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남동생과 같은 길을 갈 수 없게 되었다. 천방지축이었던 내가 조심성을 길렀다. ‘설마’ 하는 생각에 뒤를 염려하는 버릇이 생겼다. 둔했던 내가 예민해졌다. 과식을 하는 것 같아 달력을 보면 꼭 그날이었다. 여행지에서 1순위로 챙겨가야 할 품목이 생겼다. 여행은 언제나 주기의 정 중앙에 와 있었다. 여행 가방 한가득 나의 뒤를 책임져줄 그것을 채우는 것으로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꽉 차 있던 가방이 비워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월경, 문 데이라 부르는 그날은 일반적으로 28일을 주기로 한다. 여성의 자궁에서 주기적으로 출혈과 통증이 일어나는 생리 현상이다. 임신이 가능한 여성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 몸이 된 축복과 동시에 귀찮은 일이 기도 하다. 그날은 잊지도 않고 찾아온다.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시험 기간에는 꼭 그날이 겹치기 마련이다. 컨디션 조절이란 그날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지만, 그런 행운은 자주 오지 않았다. 이런 피곤함은 40년 동안이나 계속된다. 여성으로 태어났다면, 인생의 반을 그날을 염두에 두고 산다.


주기에 따라 변하는, 나는 다중이


여성의 기분은 주기에 따라 좌우되기도 한다.


"왜 짜증이야? (그날이야?)"

그날이면 아랫배에서 시작한 통증이 허리까지 올라온다. 자주 화장실에 가야 한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렵다. 효율도 떨어진다. 세상은 나만 빼고 잘 돌아간다.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기분 좋아 보이네. (그날 끝났나 보네)"

그날이 끝나면 월례 대행사를 마친 기분이다. 컨디션이 최상이다.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일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친절함도 장착하게 된다.


"다시 또 왜 그래? 뭘 이렇게 샀어? "

하지만 다시 또 그날이 돌아온다. 생리 시작 4~10일 전, 생리 직전은 폭풍전야다. 생리 전 증후군이다. 두통, 허리 통증, 유방이 찌릿찌릿 거리며 우울하고 불안하다. 이러한 감정 기복이 충동구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월경 주기가 23일로 짧은 나는 한 달 내내 호르몬의 노예다. 특히 통증이 나를 못살게 군다. 그날이 오기 2주 전 배란통, 일주일 전부터는 월경 전 증후군, 일주일간의 월경. 다시 또 배란통이 시작된다. 온전히 가뿐한 몸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고작 며칠 되지 않는다. 그날이 있음으로 해서 나는 내 의지대로 조절되지 않는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월경을 하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끝을 기다린다. 월경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면에서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앞으로 이런 귀찮음이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이 왔던 것처럼 그날도 반드시 오고야 만다.


그날이 오면 좋을까?


월경은 내과적으로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심장 혈관을 보호한다. 혈관을 이완하고 나쁜 콜레스테롤을 감소시키고, 좋은 콜레스테롤 수치는 상승시킨다. 혈관뿐 아니라, 뼈를 튼튼하게 한다. 그날은 삶에 활력을 제공한다. 한 식탁에서 같이 밥 먹고 운동해도 아내가 남편보다는 건강한 이유 중 하나가 여성의 월경 때문이다.


50세 전후로 여성의 월경은 멈춘다. 폐경이다. 폐경기의 엄마를 기억한다. 짜증이 늘었고, 불면에 시달렸다. 많은 순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거렸다.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폐경 이후 여성들은 쉽게 피로감을 호소하고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낀다. 건강이 나빠졌다고 말한다. 폐경은 고지혈증, 골다공증, 관상동맥질환 각종 질환의 원인 중 중요한 요소로 손꼽힌다. WHO(세계 보건기구)에 따르면, 50세 이상 여성이 사망하는 가장 큰 원인은 심장 혈관 질환이다. 폐경 이후 여성 호르몬이 고갈되면 심장 혈관 질환의 위험도 역시 급격하게 증가한다. 혈관을 확장시키는 작용을 하던 여성 호르몬이 줄어들어 혈관이 수축한다. 혈압이 증가하고, 혈관 손상 위험도 높아진다.


폐경기 여성들은 골다공증에 걸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들이다. 뼈의 생성과 소멸에 관여하는 세포들이 균형을 잃는다. 뼈에 구멍이 생기는 골 소실이 골다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골다공증은 소리 없는 뼈 도둑으로 골절이 발생하기 쉽다. 고령 여성에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골다공증이다.


나는 폐경 전후 여성에게 몸 관리를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노화에 더해 여성 호르몬의 부재까지 막으려면 몸을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폐경 후 여성에게 호르몬제 복용을 권하기도 한다. 삶의 질을 상승시킨다. 안면홍조, 발한, 피로감, 두통 등 폐경기 증상을 완화하고 골다공증 및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한다


그날 때문에 삶이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로 인해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그날로 인해 감정의 변화를 또렷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건강에 대한 이로운 효과를 덤으로 얻었다. 그날만큼은 몸을 보호하고 쉬기로 한다. 어쩌면 그날이어서가 아니라, 삶 자체가 피로한 건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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