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아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의사가 되어 처음으로 부모님께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였다. 1년 내내 차가운 온도를 유지하는 병원에서 계절의 바뀜을 느끼게 해주는 건 병원 중식당의 계절 특선 메뉴였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그곳은 내가 병원에서 유일하게 대접받았던 곳이다. 선배들은 고생한다며 가끔씩 나를 데리고 갔다. 푸짐한 해물과 살얼음이 살짝 끼어있는 중식 냉면을 골랐다. 고급진 음식을 먹으며 불현듯 부모님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는 이런 음식을 먹어보긴 하셨을까. 부모님을 모시고 싶
었다. 부모만큼이나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였다. 여름의 월급날, 내가 먹었던 고급 음식을 부모님에게 대접하기로 했다.
근무복 위에 하얀 가운을 입었다. 병원 로비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부모님을 만났다. 루주까지 바른 엄마를 보니 신경 써서 나온 모양이다. 나의 하얀 가운과 엄마의 루주. 서로가 서로에게 이런 모습이 처음이라 어색했다. 그곳에서 식사를 앞두고 있었다.
단란한 가족의 평화를 깬 것은 아빠의 다름 아닌 술타령이었다. 식당이기는 하지만 병원 안의 식당이다. 주류를 판매할 리 없었다. 아빠는 중국집인데 왜 술을 팔지 않느냐며 종업원을 다그쳤다. 기어코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 오겠다고 했다. 자존심이 상하면 그만큼의 고집을 부려야 직성이 풀리는 아빠였다. 얼굴을 익히 아는 선배 몇몇과 그들의 후배가 우리 쪽을 힐끔거렸다.
“아빠. 그만하세요.”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아빠의 그것을 꺾어야만 했다. 자존심이 꺾인 아빠는 입술을 깨물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부모님께 식사 한 끼 대접하겠다는 딸의 바람은 깡그리 사라졌다. 술이 대체 뭐길래. 딸의 직장에 와서까지 술타령인지. 그때의 그 일은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빠가 이해되기 시작한 건 최근에서다.
부정하고 있었지만 자꾸만 내 안에서 아빠가 보였다. 아빠와 나는 많이 닮았다.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선다. 말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평생 한 직장에서 다녔을 정도로 성실하다. 슬퍼도 기뻐도 늘 한결같다.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리고 술을 좋아한다.
우리 집에서 술 하면 아빠가 빠질 수 없듯이, 나도 친구들 사이에서 술이라면 빠지지 않았다. 아빠로부터 술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아빠와 나는 술에 진 적 없었고,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성실함을 잃은 적 없었다. 나는 밤새 술을 먹고도 수업 시간에, 아빠는 회사에 지각 한 번 하지 않았다. 기쁜 자리에서는 술부터 찾았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많을 때에는 술에 의지하기도 했다.
술만 먹으면 수다쟁이, 애교꾼, 울보가 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차가웠던 심장, 손과 발은 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순환이 되기 시작했다. 내 몸에 쌓여가는 알코올 도수만큼 몸의 온도가 올라가고, 마침내 가슴이 뜨거워졌다. 알코올은 닫고만 살았던 감정의 문을 여는 문지기였다. 문을 열고 온 알코올은 감정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좋은 기분은 더 신나게, 슬픈 감정은 더 서럽게. 그 힘을 빌려 나는 술에 취해 떠드는 수다쟁이가 될 수 있었다. 의외의 모습에 다들 나를 신기해했고, 좋아해 주었다. 가끔은 서럽게 울기도 했다. 또렷한 기억에 부끄러웠지만, 핑계 대기 좋았다. 그저 술 때문이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내가 무척이나 무안했던 그때. 의사로서 가운을 입고 일하는 딸의 모습을 처음 본 아빠는 내가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아빠는 그 기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늘 하던 대로 술의 힘에 빌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 내가 술의 기운을 빌렸던 것처럼. 아빠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서야 아빠가 이해되었다.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이해되지 않아 속상했던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 부녀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먼저 변한 건 내 쪽이다. 엄마가 된 나는 아이 앞에서 자주 웃고 수다쟁이가 된다. 처음에는 영 어색했지만, 한 번이 어려웠지 점차 자연스러워졌다. 이 모든 걸 술의 기운을 빌리지 않고 한다. 무표정만 지었던 아빠도 변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아빠의 얼굴엔 주름이 잔뜩 늘었다. 술 한잔 없이도 자주 웃는다. 나의 딸. 내가 낳은 손녀를 보면서부터다. 웃음이 저리 헤펐던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아빠의 얼굴엔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아빠는 여전히 기쁜 자리, 어색한 자리에서 술부터 찾는다. 그래도 술 없이도 자신의 행복을 표현하는 아빠는 많이 변했다. 내가 아빠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아빠도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