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셔도 나타나는 반응은 제각각이다. 술에 진 적이 없는 나는 아무리 술을 먹어도 말짱하다. 늘 처음처럼이다. 오히려 술을 먹을수록 얼굴이 더 새하얗게 변하고는 한다. 반면 술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붉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타고나길 술 약한 사람들, 이건 기분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독을 권하는 것과 같다.
술먹고 괴로운 이유
우리 몸에 들어온 알콜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생
우리 몸에 들어온 알코올은 두 차례의 분해과정을 거친다. 최종적으로는 무독성, 휘발성 물질로 변하여 몸 밖으로 배출된다. 간에서 흡수된 알코올은 1차로 알코올 분해 효소ADH에 의해 아세트 알데하이드로 분해된다. 이 아세트 알데하이드는 독성 물질이다. 술 마시고 나타나는 괴로움, 숙취의 근원이다. 얼굴이 불콰하게 물들고, 두통, 두근거림, 졸림, 구역, 구토 등 이 일어난다.
아세트 알데하이드는 ALDH(아세트 알데하이드 분해 효소)에 의해 무독성인 아세트산(빙초산)으로 분해된다. 이후 물이 되어 소변으로 배설되고, 이산화탄소로 휘발된다. 이것이 두 번째 분해 과정이다. 이때 ALDH(아세트 알데하이드 분해 효소)의 활성도에 따라 독성 물질인 아세트 알데하이드가 얼마나 빨리 분해되는지가 결정된다. 정상적으로 이를 분해할 수 있는 능력, 빨리 분해하는 사람은 술이 세다고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술이 약한 사람이 된다.
술이 센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알코올 분해 효소 능력 차이
유전자 변이 때문
분해 효소 능력은 사람마다 유전적 차이가 존재한다. 유전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술만 먹으면 얼굴이 붉어지게 된다. 이들에게 알코올이 들어오면 아세트 알데하이드는 분해되지 못하고 몸에 쌓인다. 독성물질이 쌓인 결과로 쉽게 얼굴이 붉어지고 숙취가 심하게 나타난다. 더불어 불쾌한 기분이 계속되어 술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한국인 10명 중 3명에서 유전자에 변이가 있다. 한국인의 30%, 중국인의 35%, 일본인의 44%에서 이런 유전 변이가 나타난다. 반면 서양인들에게는 유전 변이가 거의 없다. 이들은 정상 활성형의 아세트 알데하이드 분해 효소를 가진다. 유전적 변이는 대물림되어 다음 세대에 전달된다. 서양인들이 대체로 술을 잘 먹는 것은 유전적 차이로 인해 타고난 것이다. 서양인과 동양인이 술 대결을 하면 서양인이 이길 확률이 높다.
술먹고 얼굴이 붉어진다면 당신은 동양인
술 먹고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은 동양인에게 빈번하게 관찰된다. 동양인은 83%로 매우 높게 나타나지만 서양인에서는 6%에 불과하다. 이를 아시안 플러시asian flush syndrome(아시아 홍조 증후군)라고 부른다.
술먹고 얼굴이 붉어지는 건 경고 신호
문제는 이것이 단순하게 술 먹을 때 얼굴만 붉히고 마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몸에 쌓이는 아세트 알데하이드는 1급 발암 물질이다. 간, 심장, 중추 신경계 등 신체 여러 부위에 독성물질로 작용한다. 장기간 노출 시 식도암, 후두암 등의 위험도가 증가한다. 일본 남성을 대상으로 한 연구1)에서는 술먹고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 적은 양의 알코올에서 식도암의 발병 확률이 6배 이상 높았다. 술을 많이 마실수록 식도암의 발병 확률은 현저하게 증가한다. 여러 연구에서도 얼굴이 붉어지는 아시안 플러시가 나타나는 경우 두경부암, 식도암의 발생 위험이 증가한다는 일관된 결과를 도출한다.
암 뿐만이 아니다. 2012년도에는 국내 성인을 대상으로 안면 홍조가 대사증후군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밝힌 논문이 있다. 술먹고도 말짱한 경우, 주당 4병 이상을 섭취하였을 때 대사 증후군의 위험도 높았다. 반면 얼굴이 붉어지는 홍조군에서는 주당 소주 1병이라는 적정 음주를 하였음에도 대사 증후군의 위험이 유의하게 증가하였다. 대사 증후군은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만성 질환의 뿌리다. 술 먹고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 남들보다 비교적 적은 양, 적정량을 먹어도 질병이 발생하는 억울한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술먹어도 얼굴 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
술 먹으면 얼굴색이 변함없다고 안심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술을 마시면 아세트알데하이드를 빠르게 무독성의 물질로 해독한다. 지치지 않고, 더 많은 양의 술을 마실 수 있다. 술을 잘 마시면 많이 마시게 된다. 이런 이유로 서양인에게 알코올 의존 빈도가 동양인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술 먹고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우리 몸에서 보내는 경고등 이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져 독성 물질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술 먹고도 말짱한 분들은 과도한 음주로 알코올 의존도가 높다. 술은 권해서는 안되고, 스스로도 적당량 마시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참고 문헌
1) Tetsuji Yokoyama et al. (2003) Alcohol flushing, alcohol and aldehyde dehydrogenase genotypes, and risk for esophageal squamous cell carcinoma in Japanese men. Cancer Epidemiol Biomarkers Prev. 12(11 Pt 1):1227-33.
2) Jin-Gyu Jung et al. (2012) Relationships among alcohol consumption, facial flushing response, and metabolic syndrome in healthy men. Annals of Epidemilogy. 480-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