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술 한 잔 하는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불안이 나를 엄습할 때

by 닥터 키드니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출간을 앞두고 불안이 끝도 없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원고 작업을 하면서도 나의 일상은 변함없이 굴러갔다. 병원에 출근을 해서 환자를 보고, 퇴근을 해서는 아이를 돌봐야 했다. 어쩌면 하루 종일 내 원고만 들여다보면 오히려 속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일상 속에 원고를 손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부족한 시간은 불안을 불러왔고 나를 떠날 줄 몰랐다. 환자를 보면서도 아이와 노는 중에도, 친구들, 남편하고 수다를 떠는 중에도 불안이 가시질 않았다. 이에 대한 증거로 불면과 발모벽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그만 뽑고 일상을 살아가고 틈틈이 원고를 손봐야 했다. 당장 미쳐 날뛰는 불안을 잠재울 필요가 있었다. 내가 불안을 극복했던 방법들이다.


술 즉각적이면서도 가장 강력한 한방


어이없게도 가장 즉각적이면서도 강력한 방법은 술이었다. 매일 맥주 한 캔씩을 마셨다. 여름이기도 하고, 시원한 맥주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술을 마시면 마법처럼 현실의 감각이 흐려지며 불안이 사라졌다. 맥주 한 캔을 위장에 털어 넣으며, 불안을 달랬다. 아빠 생각이 많이 났다. 술을 그만 마시라고 했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했다. 아빠는 퇴직 후 소주를 한 궤짝씩 사다 놓으셨다. 그때 아빠는 무엇이 불안하고, 힘들었던 걸까. 퇴직 후 남은 인생은 무얼 하며 보내야 할까라는 불안, 아직 자리 잡지 못한 동생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매일 맥주를 마시며 매일 술을 마셨던 아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긴장 완화, 친목 도모라는 술의 사회적 기능을 무시한 채 알코올은 1급 발암 물질이라며 술을 먹지 말라고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이렇게 간단하게 술 한 잔으로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을. 술의 한쪽 면만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얼마나 우둔한 사람인가.

오전에 환자에게 술 좀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하면서 저녁에는 맥주 한 캔에 위로를 받는 나. 이중적인 내 모습을 누가 알기나 할까. 그나마 내가 아빠보다 나아서 다행이다. 아빠는 소주를 한 상자씩 사다 놓았지만, 나는 기껏해야 편의점에서 사는 만 원에 4캔을 준다는 맥주 묶음이었다. 사두었던 맥주 번들이 없어질 때까지만, 불안을 잠재울 목적으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더 이상의 맥주 셔틀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술로 불안을 해결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해왔다. 말과 행동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내과 의사의 이중적인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산책 걷기와 달리기
몸과 정신의 건강, 창의적 생각 얻기

걷기는 즉각적으로 우울했던 기분을 좋게 했다. 답답함을 느낄 때는 속도를 내어 심장이 터지려 할 때까지 달렸다. 들숨과 날숨이 많을수록 불안함은 옅어져 갔다. 걷기와 달리기는 돈 한 푼 들이지 않는 방법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정신뿐 아니라 몸도 건강해졌다. 부가적으로 창의적인 생각과 문장들도 얻을 수 있었다.


책 독서
세상에 나만 겪은 유일한 일은 없다

세상에서 나만 겪은 일은 하나도 없다. 누군가는 반드시 나와 비슷한, 아니 어쩌면 거의 똑같은 일을 겪었을 확률이 높다. 단지 내가 모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불안도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출간을 스무 권이나 넘게 하고도 여전히 책을 낼 때마다 불안해하고 걱정을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은 실로 위로가 되었다.

샤워

샤워를 더 자주, 오래 했다. 샤워를 하면 바들바들 떨고 있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따뜻한 물은 긴장으로 팽팽했던 나를 이완시켜주었다. 평상시에 쓰지 않고 아껴두었던 샤워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오늘 새벽에는 상큼한 레몬향이었다. 잠시라도 먼 곳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샤워는 아침저녁으로 할 때마다 달랐다. 새벽의 샤워는 새로운 것을 생각하는 힘을 제공해주고, 저녁의 샤워는 불면증을 해결해주었다.


쓰기

나의 불안을 들여다보았다. 불안하면 있는 그대로 써보았다. 우리의 두뇌는 같은 시간에 오직 하나만 생각해 낼 수 있다. 걱정을 하면서 동시에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없다. 걱정할 시간에 글을 쓴다면, 오직 걱정에 대한 생산적인 일, 그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 뿐이다. 글을 쓰는 활동이 걱정을 물리쳤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여전히 걱정만 하고 있을 것이다. 양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행위는 발모벽을 행했던 두 손을 묶어두는 일이기도 했다. 글을 쓰며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다. 발모벽과도 멀어질 수 있게 되었다.



뜨개질

오랜만에 코바늘에 실을 걸었다. 엉킨 실타래를 푸르고 다시 뜨는 과정을 반복했다. 풀다가 매듭이 지어질 때면 실을 끊어내기도 했다. 실이 가방으로 완성되어가는 걸 보면서 불안하고 흔들렸던 나의 마음이 단단해졌다. 마음이 복잡하면 어때, 끝내 실을 풀었던 것처럼 마음 역시 풀면 풀린다는 것을 믿는다. 마음이 풀리지 않고 매듭이 생겨도 괜찮다. 정 안되면 실을 끊어내고 다시 이으면 되니까 상관없었다. 결국 가방을 완성했던 것처럼 내 마음 역시 온전해질 것을 알고 있다.


불안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그때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생각해 본다. 잘 보이기 위함이었고, 잘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내려놓아야 한다. 출판이라는 첫 무대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나머지는 관객들의 몫이다. 내가 할 일은 없다.


이제는 별로 불안하지 않다. 세상에서 시간이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은 없다. 불안 역시 그렇다.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내가 했던 것들을 적어보며 깨달았다. 모두 시간이 필요해서 했던 일이었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술이 필요했던 거고 산책과 독서, 쓰기와 뜨개질을 했던 거다.

불안이 언제가 다시 나를 찾아올 것이다. 불안이 나를 엄습할 때 그때 나는 또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까. 불안할 때에는 불안감에 떨기보다 당장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기로 한다. 그것이 불안과 멀어지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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