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기분, 운동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까?

by 닥터 키드니

어제 분명히 기분이 좋았는데 오늘 아침은 별로였다. 눈을 뜨자마자 보게 된 뉴스 때문일까. 출간한 책에 대한 걱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키보드를 한참 두드려 내 안의 감정을 풀어보았다. 잠시 잠잠해졌지만 또다시 마음이 종잇장처럼 구겨지기 시작했다. 우울하다. 우울은 근심스럽거나 답답하여 활기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뭘 해도 마음이 풀어지지 않았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 걸었다. 기분이 조금은 풀어지는 것 같다.


새벽 운동길에 본 하늘은 꽤나 환상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산호색의 하늘이었다. 아침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았다면, 해가 뜨려는 건지 지려는 건지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하늘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달 떴다.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에 더 넓은 곳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금세 사라졌다. 설레었던 기분도 시들해졌다. 어제 기분이 하늘 끝까지 올라갈 정도로 좋았는데, 오늘 아침 기분이 갑자기 지하실 밑 구석에 처박혀 있는 것처럼.


기분은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이다. 기분은 하늘과 비슷하다. 하늘이 변화무쌍한 것처럼 기분도 시시때때로 변한다. 좋았던 하늘과 기분이었는데 순식간에 나빠지기도 한다. 하늘과 기분이 변하는 데에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언제나 제멋대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영문 없는 하늘, 기분은 없다. 날이 좋아서 하늘과 기분이 좋았다. 폭풍이 몰아칠 예정이라 하늘이 별로였고, 걱정할 일이 있어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우리 머리 위엔 늘 하늘이 있고, 가슴속엔 마음이 존재한다. 하지만 가끔은 하늘과 기분이 없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하늘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마음을 쳐다볼 여유가 없을 때가 그렇다.


울적한 기분이 조금은 지워졌다. 병원으로 출근해 첫 환자로 숙자 씨를 만났다. 숙자 씨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녀는 당뇨와 고혈압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내게 오는 분이다. 맨 처음 진료실에 들어오던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원래 그녀는 눈물 단지였다. 진료실에서 나를 볼 때마다 울었다. 그녀의 남편은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는 환자였다. 폐렴이 악화되어 큰 병원으로 전원 되었지만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남편을 하늘로 보내고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방문한 병원 문 앞에 들어설 때마다 남편 생각이 났다. 남편을 간병하느라 힘들었지만 그때가 좋았다고, 다시는 볼 수 없는 남편을 떠올리곤 했다. 더 잘해주지 못해서, 마지막까지 힘들게만 해서 미안하다고. 남편이 없는 것 빼고 모두 그대로인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어했다. 그 슬픔은 병원에 올 때마다 커졌다. 나는 휴지를 건넸고 그녀의 서러움을 들어주었다. 진료실에서 곡소리가 멈추지 않자 나는 우울증 치료를 권했다. 정신과 약을 먹으니 속이 불편했던 숙자 씨는 한동안 내과를 더 자주 들락거렸다. 꽤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지만 좀처럼 우울은 가실 줄 몰랐다.


매일 울면서 진료실에 들어오던 숙자 씨는 2년 전부터 더 이상 울지 않는다. 울고 웃기를 반복하던 그녀의 스위치가 완전히 웃기만 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정신과도 방문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났기도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것에 푹 빠진 듯했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부터 시작한 걷기 때문이다. 진료실에 들어와 내게 자랑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만보 이상을 걷는다고 한다. 그녀의 자랑은 나를 자극한다. 새벽에 걷다 만 걸음수를 저녁에 부지런히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운동을 하면 우울한 기분이 사라진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입증된 것이다. 2016년도에 우울증이 있을 때 운동의 효과에 대한 여러 연구를 분석한 결과가 발표되었다.1) 우울증 환자들이 운동을 한 경우 우울한 증상이 더 많이 감소되었다. 이때 적당한 강도, 유산소 운동, 운동 전문가가 감독을 한 경우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운동이 항우울제나 인지 행동 치료과 비슷한 효과를 나타낸다고 하였다. 이런 이유로 우울증 환자에서 운동이 치료로 권고된다.


운동은 미래에 발생 가능한 우울증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 노르웨이에서는 3만여 명의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운동을 했을 때 우울 및 불안 증상의 발생에 관해 11년간 추적 관찰했다.2) 걷기, 수영 등 유산소 운동을 주당 1시간 이상씩 꾸준히 한 경우 향후 우울증 발생의 12%를 감소시킬 것으로 추정한다. 운동을 한 시간이 많을수록 우울증의 발생 위험비는 감소했다. 이때 운동의 강도는 상관없었다. 땀을 많이 흘리고 숨을 헐떡이지 않아도 된다. 꾸준한 걷기 만으로도 우울증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의지대로 하늘을 움직일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기분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숙자 씨와 내가 했던 행동이 그 시작이 된다고 믿는다.


나도 모르게 울적한 기분이 들 때면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걷는다. 어제 좋았던 하늘과 기분을 찾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걷고 달렸다. 걷고 뛰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가 많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가운데 기가 막힌 멋진 장면을 포착하기도 한다. 걷는다고 해서 기분이 완벽히 바뀌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울을 향해가는 뱃머리는 틀 수 있다. 인생이라는 먼 여정에 방향을 1도만 틀어도 최종 도착지는 전혀 다른 곳이 될 수 있다. 운동은 몸을 튼튼하게 할 뿐 아니라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리는 건강한 치료제이다. 아무리 무리를 해도 근육통이라는 기분 좋은 부작용, 뿌듯함만 남길뿐이다.


※ 참고 문헌

1) Schuch FB, et al. (2016) Exercise as a treatment for depression: a meta-analysis adjusting for publication bias. J Psychiatr Res 77:42-51.

2) SB. Harvey, et al. (2018) Exercise and the Prevention of Depression: Results of the HUNT Cohort Study. Am J Psychiatry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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