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 찾기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무런 도구 없이 내 두 다리만 있으면 달릴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달린다”라는 건 달릴 수 있는 체력과 달리고픈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멈추지 않고 달리는 것으로 건강에 대한 나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웠던 손과 발이 따뜻해지고 심장 박동이 거세게 느껴진다. 나 건강하게 살아있다는 소리였다. 날마다 달린 덕에 몸의 군살이 정리되었다. 이렇게 좋은 달리기라니! 너무 늦게 달리기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언젠가부터 달리기만 하면 무릎과 발목이 아파왔다. 신발을 바꾸고 발목과 무릎에 테이핑을 하기도 했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다. 통증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달리지 않는 것이었다. 달리지 않고 속도를 줄일 때만 통증이 가라앉았다. 마음은 시속 8킬로미터를 향하는데 몸은 시속 3킬로미터쯤 달려야 편안했다. 나를 제치고 달리는 사람을 보고 초조했다. 나도 빨리 달리고 싶은데 몸이 따라 주지 않아 답답했다. 그를 쫓기 위해 무리해서 달려보기도 했지만 어김없이 통증이 반복되었다.
달리면 왜 아플까?
달리기와 걷기의 차이는 땅바닥에서 두 발이 떨어지는가의 유무이다. 걷기는 반드시 한쪽 발이 땅에 붙어 있다. 반면 달리기는 아주 잠깐이지만 땅에서 두 발이 공중 부양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걷기는 체중의 약 20~50% 정도의 충격이 가해지지만 달릴 때에는 자신의 몸무게에 속도가 붙어 더 많은 힘이 가중된다. 그만큼의 충격이 복강 내의 장기, 무릎, 발바닥으로 전달된다. 그에 따라 크고 작은 아픔을 경험한다.
우리 몸속의 장기들은 문제가 생길 때에서야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달릴 때마다 그들의 존재가 확인된다. 배가 아프고, 무릎이 쑤시며, 발바닥은 불이 난다. 달리기는 고통이라고 했지만, 고통 뒤에 따르는 질병은 그냥 넘길 애교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나만 겪는 유난한 일이 아니다. 러너의 복통, 러너의 무릎, 러너의 방광, 러너의 발바닥. 러너들이 가지는 질병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다들 이렇게 고생하며 달리고 있었다.
달리기를 하면 발생하는 문제들
운동 관련 일과성 복통
달릴 때 옆구리 통증이 발생한다. 운동 관련 일과성 복통이다. 달리기 뿐 아니라 수영, 에어로빅 등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 주로 운동의 강도가 높을 때 발생한다. 걸을 때 보다 달리기를 하면 통증의 발생이 3.5배 증가한다.
방광염
달리기 속도를 올려 달린 날마다 방광염이 뒤따랐다. 달리면서 발생하는 탈수, 반복적인 마찰, 휴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달리면 면역 체계가 손상되어 방광염이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된다.
무릎 통증
달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무릎 통증은 슬개골 관절 부위가 아픈 것을 말한다. 슬개골 연골이 닳거나 찢어지거나, 힘줄이 변형된 경우도 있다. 과도한 운동, 부족한 스트레칭, 과체중, 평발, 맞지 않는 운동화, 불량한 자세, 약한 코어 근육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무릎 통증은 진통제를 복용하면 좋아진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무릎을 위해 달리지 않는 것이다.
발바닥 통증
땅을 내디딜 때마다 찌릿한 통증을 경험하기도 한다. 발바닥에 있는 족저 근막이라고 하는 조직에 염증이 생겨 통증이 발생한다. 발을 너무 많이 사용할 때, 평발이 심하거나 발의 변형이 있는 경우, 발의 피로를 제때 풀어주지 것이 원인이다.
운동 유발 혈뇨
나는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달리기 후 붉은 소변이 나오기도 한다. 운동 유발 혈뇨는 위험하지 않은 것에서 심각한 것이 이르기까지 예후가 다양하다. 몸속 수분 상태와 운동 강도, 기간과 관련이 있다. 길고 격렬한 운동은 혈뇨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운동 유발 혈뇨는 특별한 치료 없이 휴식으로 자연 치유된다. 대개 운동 중단 후 3일 이내 정상으로 돌아온다. 혈뇨가 지속된다면 정밀 검사를 받아야 한다.
나는 달리기만 하면 아파오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달렸을 때의 통증은 달리는 강도를 낮추면 좋아지곤 했다. 더 이상 달리지 않기로 했다. 달리는 속도를 줄이면 걷기가 된다. 걸으면서 나만의 속도를 찾는다.
나만의 속도 찾기
이제는 많은 순간 빨리 걷는다. 등에 땀이 맺히기 시작하고 손과 발이 따뜻해지기 시작한다. 나의 속도는 노래를 부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평범한 노래가 한 맺힌 노래가 될 정도로 호흡이 가빠온다. 푸른 하늘 은하수가 푸우른 하아늘 으은하아수가 된다. 호흡이 가빠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고 싶어졌다. 끝내 마스크를 벗어 오른쪽 손목에 걸었다. 무엇보다 몸 어디에도 통증이 없다. 아프지 않으면서도 호흡을 방해할 정도의 빠른 걸음이 내게 맞는 속도다.
나만의 속도로 걷기
근육질의 외국인이 나를 제치고 앞으로 치고 나갔다. 하지만 예전처럼 불안 초조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는 중이다. 나의 속도로 걸으면서 나는 오래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부지런히 걸어서 잡담하며 터덜터덜 걷고 있는 한 무리를 제칠 뿐이다.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그동안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기만 해서 놓친 순간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풀벌레 소리를 듣지 않았고 나무가 만드는 그늘을 오래 즐기지 못했다. 이제는 걸으면서 주변의 경관을 즐긴다. 무심결에 스쳐 지나칠 법한 곳을 오래 즐기고 가끔은 멈추기도 한다. 좋은 풍경이 있을 때에는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찍기도 한다. 달리지 않아서 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오늘은 빨리 걷지 않았는데도 뺨에 바람이 스친다. 어쩌면 자연이 물어다 주는 바람일지도 모른다. 내가 바람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생의 감각을 느끼는 것, 이것이 진정 나만의 속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