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해진 이유를 환자는 왜 모를까.

진료실에서 못다한 건강한 잔소리

by 닥터 키드니

한 달 만에 본 그녀는 본인의 건강이 예전보다 좋아졌다고 했다. 고지혈증, 고혈압으로 1달에 한 번씩 약을 받아가는 분이다. 지난달 체중이 72kg이었는데, 이번 달에는 70kg으로 체중도 빠지고 몸이 가벼워졌다고 으쓰댔다. 지난달에 진료를 보며 체중을 감량해야 함을 설명했는데, 한 달 만에 2kg을 뱄다니.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문제이기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고 물어보았다. 환자는 자신만 알고 있는 비법이 있다는 듯이, 내게 그 이유를 말해 주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그녀는 최근 지인의 소개로 한의원에 다니고 있었다. 한의원에서 본인은 "무" 체질이기 야채도 무 위주로 먹어야 하며 돼지고기는 먹지 말고, 소고기만을 먹어야 한단다. 그 한의원에서는 사람마다 '무, 상추, 깻잎'으로 체질을 나누고 그에 따라먹어야 할 음식과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교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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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한의사의 조언에 따라서 이번 김장철에는 배추김치보다 깍두기, 총각김치, 알타리를 더 많이 담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한의원에 가서 몸의 여러 군데에 침을 맞고 있었다. 그곳은 엄기준처럼 생긴 잘 생긴 한의사들이 자상하게 침도 놔주기 때문에 할머니 환자들이 끊임없이 오는 곳이란다. 한의사들의 따뜻한 손길에 그곳의 환자는 건강해진 몸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이렇게 내게 와서 한의원의 영험함을 고백한다. 그녀에게 있어 체중도 빠지고 몸이 가뿐해진 것은 모두 다 한의원 덕분이었다.


문득 나는 나에게 오는 우리 환자들을 떠올려본다. 내게 몇 년을 다녔어도, 혈압, 혈당이 잘 조절되어도 이게 다 의사 덕이라고 기뻐하는 환자는 본 적이 없다. 엄기준처럼 생겼을 한의사를 떠올리며, 그가 한없이 부러웠다. 내가 만약 이영애 외모를 가진 의사였다면, 환자들이 조금은 알아줬을까. 씁쓸한 마음을 달래며 환자를 추궁했다. 환자 말대로라면, 한의원에서 한 것이라고는 침을 맞는 것 밖에는 없는데 한 달도 되지 않아서 효과가 나타났다니. 그런 실력이 없는 나는 내 의사면허증을 반납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한 달 전쯤 장애아 학생들을 도와주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일자리 없이 지내다 다시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하루에 만보쯤은 걷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회생활하며 규칙적인 생활로 인해 예전에 빼먹고 먹었던 혈압, 고지혈증 약도 잘 먹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어렵게 딴 내 의사면허증을 반납하지 않아도 되겠다.


환자가 느낀 건강함은 본인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하루 이천 보도 걷지 않았던 그녀가 만보를 걷다니. 게다가 흰쌀 밥에서 현미밥으로 밥상을 바꾸고, 채식 위주로 식탁을 꾸렸으니 (물론 '무' 위주로) 체중이 빠지고 건강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환자가 걸었다던 일일 '만 보'는 미국 심장 학회에서 심장질환 예방을 위해 권장하는 수치이다. 눈으로 보았을때 체중이 빠진 것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심장도 더 튼튼해졌을 것이다.


나는 환자의 건강에 있어 한의사의 공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한의사의 동기부여 및 침 시술이 한몫했을 터이다. 그리고 체중을 감량해보자고 조언한 나와 내가 처방한 약들도 그녀의 건강에 조금은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 조언들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 식탁을 바꾸고 활동량을 늘린 것은 환자 자신이다. 그렇기에 모든 공은 환자에게 돌아가야 한다.


환자에게 공을 돌렸더니, 그는 부끄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는 갸름해진 얼굴을 자랑하고 싶지만,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남들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아쉬워하며 진료실 문을 나섰다. 그런데 그가 진정 더 자랑스러워야 할 것은 마스크를 벗어도 남들은 절대 모른다. 그것은 건강해진 심장혈관이다. 그렇게 나의 건강은 남들은 결코 모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긴 남들이 알든 모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건강에 대한 책임과 공은 본인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많은 환자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나의 건강은 의사가 처방하는 알약이 아니라, 하루하루 내가 쌓아가는 건강한 습관들 덕분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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