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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Dec 30. 2020

진료실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진료 거부로 신고를 당했다. 

2018년도 1월 서울 한복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누군가 종로 장 여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다. 사고로 장흥에 살던 두 딸과 어머니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들은 방학을 맞아 전국을 여행하던 중이었다. 종로 여관 방화 사건은 성매매 여성을 요구했던 방화범이 주인과 말다툼 끝에 벌인 우발적인 범행이었다. 범행이 일어나기 1시간 전, 방화범은 이미 112에 신고를 했었다. 여관 주인이 숙박을 거절한다는 이유였다. 숙박 거부로 인해 벌어진 처참한 비극이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서울 장 여관 화재 사건


같은 해에 나에게도 여관 주인과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말기 콩팥병 환자에게 혈액 투석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혈액투석을 받지 못하면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기에 병원은 특정 요일, 시간에 투석을 받을 수 있도록 약속한다. 환자의 권리이자 의무인 셈이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혈액투석을 받는 환자다. 서로 정해진 날, 약속된 시간에 내원한다는 약속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스케줄도 멋대로 바꾸고, 투석을 하다가도 종료해달라기 일쑤였다. 환자로서의 의무는 버린 채, 치료받을 권리만 요구하고 있었다.


그날은 투석을 위한 바늘을 꽂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투석실에서 큰 소리가 오갔다. 막무가내로 투석 바늘을 빼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유가 없었다. 치료를 더 진행해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환자는 혈액 투석 바늘을 잡아 뽑아 버리겠다고 소리쳤다. 침대가 빨간 피로 물들고, 그걸 수습할 걸 생각하니 아찔했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환자는 오늘 투석을 받지 못했으니, 대신 내일 투석을 받겠다고 했다. 모든 자리는 예약되어 있기 때문에, 멋대로의 스케줄 변경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흥분을 하기 시작했다.


" 어쩌라는 거야. 지금 나 진료 거부하는 거야? "

" 환자분. 이곳은 다른 여러분의 환자들이 같이 치료를 받고 있는 곳이에요. 목소리를 낮춰주세요."


화가 난 그는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투석실 환자는 모두 각자 침대에 누워, 혈관에 굵은 바늘을 꽂고 있다. 난동을 부리고 있는 환자를 제지할 수도 없고 그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리를 뜰 수도 없다. 모든 환자들이 그 상황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싸움 구경은 결코 신나는 일이 아니다. 싸움을 구경한 그들의 맥박과 혈압은 언제나 급격하게 올라가는 걸 보면, 분명 괴로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나를 포함한 모두의 맥박과 혈압이 뛰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공간에서 불을 끌 수 있는 건, 책임자인 나뿐이었다. 행동은 감정을 지배한다.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 단호하고 큰 목소리를 내었다.


" 나가주세요. 지금 너무 흥분해 계시고, 다른 환자분들이 치료를 받아야 하니깐 나가주세요."

" 나보고 나가라고? 너네 지금 진료 거부하는 거지. 내가 곱게 그냥 나갈 줄 알아? 이 병원 내가 시너 뿌리고 다 불태울 거야. 다 죽여버릴 거야."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다. 누군가와 큰 소리로 싸운 적도 없고, 이런 협박을 받아 본적도 처음이었다. 


을 지른다는 그의 표현에 얼마 전 발생했던 종로 여관 사건이 떠올랐다. 분노로 가득 찬 그는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가만히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간호사에게 환자를 진료 방해 혐의로 112 경찰에 신고할 것을 지시했다. 경찰 출동 소식에 환자는 짐을 싸고 자리를 떠나려 했다. 병원에서 나가 달라고 외쳤던 나는 떠나는 환자를 붙잡아 둘 수가 없었다. 한발 늦은 경찰의 출동 덕에 환자는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환자는 노골적으로 협박을 하기 시작했다. 고성은 기본이고 간호사의 머리를 지갑으로 내리치기도 했다. 수간호사는 한 밤중에도 그의 전화를 받아 밤을 설쳐야 했다. 


더 이상 우리와의 인연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의료진에 대한 증오 가득한 곳에서 치료가 제대로 이루어 질리 만무했다. 환자는 우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를 받을 병원이 정해지기 전까지만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그는 옮길 병원을 알아보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치료실내 언어폭력은 그대로 유지한 채. 그가 병원에 오늘날이면 모두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나 역시 며칠째 잠못이루는 나날들이 이어졌고, 병원으로 출근은 지옥길이 되어 있었다. 


그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이번 주까지라고 기한을 못 박았다.


그는 분하다는 얼굴이었다.


잠시 후 진료실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가 나를 진료 거부하는 의사로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며칠 전 진료 방해로 신고했을 때는 한발 늦더니, 경찰의 기동력이 빠른 날이었다. 진료실을 오가는 소란한 경찰들의 발걸음에 나는 위축되었다. 다행인 건지 출동한 경찰은 난처함을 표했다. 진료 거부 신고는 보건소 관할이기 때문에 경찰이 할 일은 없었다. 환자가 번지수를 잘못짚었다. 


그의 분노가 어디로 향할지 두려웠다. 더 이상은 얼굴 조차 마주하기 힘들었다. 


그의 발걸음을 거절하고 싶었다.  


나는 일주일간 간호사와 내가 받았던 모든 피해에 대해 정리했다. CCTV, 문자, 전화 기록, 동영상을 확인했다. 진료 방해죄, 협박죄, 폭행죄, 모욕죄로 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던 환자들도 증인을 서주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우리의 정당한 진료 거부 행위는 입증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다음날 보건소에서 전화가 왔다.


" OO 구 보건소인데요. 진료거부로 신고가 들어와서요. 환자분이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진료를 거부하고 계시다고. "


번지수를 제대로 찾은 환자가 정식으로 나를 보건소에 신고했다. 


" 진료실에서 그 환자분이 난동을 부려서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상황입니다."

"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환자라면서요. 웬만하면 그쪽 병원에서 해주시죠. "


아프고 힘든 환자, 절대 약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보호받아야 한다. 보건소 공무원은 절대 약자를 보호한다는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를 보호해 주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서러움에 목소리가 떨렸다.


" 두렵습니다. 환자에게 받은 충격으로 제대로 된 진료를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부탁드릴게요. 환자가 편한 곳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병원을 알아봐 주세요. "


보건소 공무원에게 읍소했다. 부디 환자를 품을 수 있는 병원을 알아봐 주기를. 긴 통화 끝에 공무원은 나를 이해하겠다고 했다. 다음날 환자는 보건소에서 알선해준 병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 병원을 떠났다. 경찰서에 접수한 고소장으로 인해 그는 벌금을 받았다고 전해 들었다. 그는 병원으로 간간히 나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 '밤길 조심하라고.' 


그 병원과 멀리 떠나길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3년이 다 되어 가는 환자와의 그 일은 아직도 생생하다. 주머니에 손을 꺼내면 얼어버리는 강추위. 겨울이면 한 번씩 벌어지는 방화사건이 날 때마다 생각난다. 당시 나는 환자가 정말 병원에 불을 지르지는 않을지, 내 뒤를 밟아서 해코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앙심을 품은 이가 어떤 복수의 칼날을 들이댈지. 이제 갓 돌 지난 아이를 두고 내가 잘못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불면의 밤을 보내야만 했다.


여관 주인의 숙박 거부권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끝내 비극을 만들어낸 방화범. 의사의 진료 거부에 분노를 참지 못해 환자가 어떤 비극을 끌어낼지 모를 일이었다.


환자가 그토록 외치는 의료진의 진료 거부는 현행 의료법 15조 1항을 말한다.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진료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


그러나 의료인이 정당하게 진료를 거부할 수 도 있다. 환자가 의료인에 대해 모욕죄, 명예훼손죄, 폭행죄, 업무 방해죄에 해당될 수 있는 상황을 형성하여 의료인이 정상적인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한 경우가 그것이다.


진료실에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를 막을 방법은 없다. 환자를 가려서 받을 수도 없다. 그건 마땅히 해서도 안될 일이다. 그러나 때때로 의사는 두렵다. 당신은 나를 알지만,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당신이 누군지 나는 모른다.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할까 봐, 원한을 품는 대상이 될까 봐 몸은 자꾸만 움츠러든다. 두려운 순간이 와도 태연한 척할 수밖에 없다.  3평 진료실. 이곳에는 도망갈 수 있는 비상구가 없다. 용기 내어 큰 목소리를 낸다.


나가주세요. 진료를 거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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