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는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긴다. 의사에게도.
처음이었다. 내과의사인 내가 정신과 문을 두드린 건. 그 환자 때문에. 그리고 나조차 이해되지 않는 내 말과 행동 때문에.
칼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그리고 과일을 깎아먹을 수도 있다. 깡마른 몸에 까만 피부, 짧게 자른 머리. 환자는 왼쪽 팔에는 굵은 바늘을 꽂고 혈액투석을 받으며, 오른손으로 칼을 들고 사과를 깎아 먹고 있었다. 붉은 혈액이 거침없이 돌아가는 투석 기계를 바로 옆에 두고. 칼과 피. 그 둘은 너무 가까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의사인 내가 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몸의 잔털은 곤두섰고, 가슴은 쿵쾅쿵쾅 거리며 요동치고 있었다. 분노 조절장애가 있어 정신과와 경찰서를 들락거린다고 스스로 떠들고 다니는 그가 아니었던가. 간호사들은 멀어지고 싶은 마음만큼 멀리 떨어져 있다. 그에게 말을 걸 사람은 나 밖에 없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쿵쾅 거리는 내 심장 소리를 환자에게 들키면 안 된다. 칼의 사용은 자제해 달라고 친근하면서도 정중하게 부탁했다. 다행히 그는 샐쭉한 표정뿐이다. 그의 분노가 폭발하지 않았다.
올것이 왔다. 며칠 뒤 그는 나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와의 면담은 한두 번 있는 일이 아니다. 옆자리 환자, 간호사의 말투, 병원의 환기 시스템, 병상의 간격까지. 모두가 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것 투성이다. 이번 힐난 대상은 예상 밖이었다. 이번에 그의 불만은 옆 옆자리 환자였다. 그는 돌연 그 옆 옆자리 환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지만, 그는 언제나 이유가 명확했다. 옆 옆자리 환자의 목소리가 크다는 게 그 이유다. 선생님에게 짝꿍의 비리를 고자질하는 학생처럼 보였다. 아니 학생이라고 하기엔 섬뜻했다. 그는 분노를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려 했다. 타인에게 분노를 폭발해야만 하는. 그는 그것을 참을 수 없는 환자였으니까.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다행히 핸드폰이다. 핸드폰에서 사진 하나를 찾아 보여준다. 날이 서슬 퍼런 도끼다. 그는 내게 최신상 도끼라며 자랑해 보였다. 은도끼, 금도끼, 나무도끼 등 나도 도끼라면 많이 봐왔지만. 실물 그대로 날것의 도끼는 처음이었다.
병원의 관리 책임자는 내가 맞지만, 환자 입을 막을 권한 같은 건 내게 없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고, 그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내심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그동안 자신에게 내려졌던 금지된 것들에 대해 불만을 쏟아낸다. 사용을 지적받았던 과도, 진료실내 음식 섭취 등 그를 둘러싼 모든 금지된 것들에 대해. 왜 다들 그렇게 금지된 것들만 하고 싶은 건지.
공격적인 말투에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고성이 오갔다. "왜 다 안된다는 거예요? 원장님은 착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내게 능력 없음을 확인한 그는 스스로 여기저기 독기를 뿜고 다녔다. 본인의 치료가 종료되어 집으로 귀가해야 함에도, 병원 앞 골목에서 다른 환자들을 기다렸다 한참을 노려보곤 했다.
"선생님, 환자 체온이 38.3도 예요." 누군가 열이 났다. 중무장을 하고 나갔다. 그였다. 코로나 시대에 열이 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곧 격리를 의미한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병원에서 혈액투석을 받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해지는 환자다. 우리는 그 환자만을 위한 시간과 공간을 따로 마련해야 했다. 모두가 떠난 시간에 별도의 치료를 준비했다.
특별 학생에게 제공되는 방과 후 수업 같은 거다. 텅 빈 투석실에 그 환자 하나를 위해 한 명의 간호사와 내가 남았다.말썽쟁이 학생은 언제나 지각이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는 약속한 시간 2시간을 훌쩍 넘기고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나와 함께 남은 간호사는 화가 잔뜩이다. 나는 애써 태연 한척했다. 내 본문은 의사고, 환자의 치료가 제일 중요하니까. 지금 화가 난 것을 눈앞에 있는 환자에게 표현하는 건 성숙한 의사의 모습이 아니니까. 그렇게 평소보다 한참 늦어진 퇴근을 하면서도 뭐가 잘 못된지도 몰랐다.
" 애인한테 얘기하는 줄 알았대요."
다음날. 어제 나와 함께 남았던 간호사. 전날 내가 환자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본 그녀의 증언이다. 내 모습이 그렇게 비쳤다고? 말도 안 돼. 얼굴이 뜨거워졌다. 그 환자에게 했던 내 말과 행동이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한 애인에게 투정 부리는 모습이었다니. 얼마나 어색하고 우스웠을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해되지 않는 내 행동을 나는 성숙한 의사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애인. 사랑하는 사이. 내가 그를 사랑해서 기다렸던 건가. 아니다. 나는 그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내 감정은 사랑이라는 단어와 가장 먼. 정 반대의 그 무엇이었다.
내 행동에 대한 제삼자의 증언을 듣고 보니, 나도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공식적인 애인 남편에게조차 부드럽게 얘기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닌가.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온갖 모진 말과 무뚝뚝한 표현을 그렇게 잘하면서. 애인에게나 할 법한 그런 말과 행동을 했을까.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능력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아무 잘못도 없이 극복해야 할 상처가 생겼다. 애인 사이에도 상처 받은 마음을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상처가 아물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만나도 너무 자주 만났다. 치료를 위해 일주일에 세 번은 얼굴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틀 뒤에 그 환자를 또 만나야 했다. 도망갈 곳이 없었다. 걱정 끝에 두려움. 두려움 끝에 불안이 꼬리를 무는 상황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내 가치는 도무지 올라올 기미가 없었다. 걱정, 불안, 두려움, 공포가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내가 일어서지 못하도록. 마스크로 이미 얼굴의 반 이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부족했다. 나의 흔들리는 눈빛과 떨리는 말투가 행여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다. 환자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마땅히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로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치료는 내가 필요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정신과 진료실에 문을 두드렸다.
건장한 체격의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정신과 선생님은 남자였다. 보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내가 저기 앉아 있는 저 선생님처럼 남자 의사였다면. 내가 힘이 센 남자였다면 이렇게 나약함을 드러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러움이 쏟아져 나왔다.
피, 도끼, 칼. 한 환자에게 그 모든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내가 있었다.
나에게 보여준 도끼, 늘 가방에 소지하고 다녔을 칼. 그 도끼가 나를 위한 것은 아닐까라는 끔찍한 상상. 내가 가진 것은 사랑하는 남편과 딸 그리고 내 목숨뿐인데. 내게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을 도끼와 칼이 빼앗아 갈 것만 같았다. 나 없이 남겨질 두 사람이 가여워서 어쩔 줄 몰랐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입 밖으로 꺼냈다가 그 모든 것이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될 것 같아서 함부로 꺼내지 못했다.
한번 터진 눈물은 모든 걸 자백하게 만들었다. 말하면 모든 게 무너질 줄 알았는데, 반대였다. 나를 짓누르던 것들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저 내 얘기를 했을 뿐인데도 이미 절반은 해결된 것 같았다. 나머지 절반은 정신과 선생님이 해결해 주시길 바라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왜 혼자서만 그 짐들을 다 지고 가려고 하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리고 남자들도 그런 상황에서는 공포를 느껴요. 아프지 않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이니까."
평생 간직하고 싶은 말 몇 개와 알약 몇 개를 같이 받았다. 내가 여자 의사이기 때문에 유난히 그를 두려워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남자도 신체적 폭력에 대해 두려움이 있다. 내 앞에 있는 남자 선생님도 폭력은 두렵다니' 실로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쿵쾅쿵쾅. '나만 이렇게 겁나는 건 아니야. 내가 여자라서, 내가 나약해서가 아니야. 지금 내가 겁나는 건 내 심장이 뛰기 때문이지, 내가 겁나서가 아니야.' 다짐해도 소용없는, 속절없이 쿵쾅거리는 심장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알약 하나를 집어삼켰다.
몇 년간 쳐다보지도 않았던 정신과 책을 들춰봤다. 두려웠던 환자. 그런 그에게 했던 따뜻한 이해되지 않을 말과 행동들. 그리고 책에서 나를 발견했다. 나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었다. 반동 형성이라는 방어기제. 반동 형성은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 또는 성향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게 하는 정신기제다. '화를 내를 내야 할 상황'에서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환자에게 생긴 공포의 감정을 나는 정 반대로 '애인에게나 할 법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를 보호하고, 충동들을 타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수단이다. 내 행동의 이유를 알고 나니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환자는 아픈 사람이다. 몇몇은 자신의 아픔을 감추기 위해 그곳에 가시를 심어놓는다. 뾰족한 가시를 보며 '만지면 아프겠지'라는 생각을 한다. 상처를 입을걸 알면서도 그들에게 손이 간다. 그들은 아픈 환자고, 그것들을 만지는 건 의사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니까. 가시투성이인 그들은 살짝만 건드려도 쉽게 상처를 낸다. 상처는 깊고 아프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받은 상처를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다. 그들은 언제나 보호받아야 할 환자고, 의사인 나는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가시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가시 돋은 환자의 말이 들린다.
"나는 아픈 환자야. 나는 과거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지금 이럴 수밖에 없어. 그러니까 당신들은 나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어떤 것이든 다 받아줘야 해. 나는 언제든 분노를 폭발할 수 있는 환자니까."
내 몸을 더듬어 본다. 상처를 찾아보기 위해서다. 아야. 날이 선 말투, 까칠한 표정, 무의미한 대답. 아뿔싸. 이건 상처가 아니라 가시다. 내가 받은 상처, 아픔을 감추기 위해 나 역시 가시를 만들고 있었다. 언제 생긴 거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안에 가시는 이미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내 안의 가시를 다시 만져본다.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은 없고, 그 가시를 만질 사람은 나뿐이다. 뾰족한 가시도 계속 만지면 무뎌지니까. 내 안의 가시들이 닳고 닳아 무뎌지길 바란다.
내 안의 가시, 그들의 가시. 가시는 누구에게나 상처를 남긴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다. 쿵쾅쿵쾅. 이건 내가 여자라서 나에게만 일어나는 유난한 소리가 아니다. 제멋대로 날뛰는 불안한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높아진 혈압을 낮추기 위해 내과 의사가 필요하듯,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는 정신과 의사가 필요하다. 그 도움을 받는데 필요한 건 용기다.
오늘도 가시 만질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근할 채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