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간 나를 괴롭힌 방광염이었다. 어르신들이 오줌소태라고 말하는 방광염은 갑자기 소변이 잘 나오지 않고, 타는 듯한 작열감을 주 증상으로 한다. 나의 경우 방광염이 오는 경우는 몇 가지로 추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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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시간이 부족한 경우다. 최소한 8시간은 자야 하는데 그보다 수면이 부족하면 몸은 쉬이 피로를 느꼈다. 이는 곧바로 방광염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하나는 소변을 참는 경우였다. 환자와 상담이 길어지거나 나를 기다리는 환자가 있을 때. 특히 해야 할 일의 마감은 화장실 가기 전에 집중도가 최고였다. 집중력에 욕심이 나서 화장실 가는 것을 자주 참았다. 신기하게도 참으니깐 참아지는 게 소변이었다. 늘 참기만 하던 방광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방광은 성을 내기 시작했다. 방광염으로 자신의 인내심을 드러냈다.
지난 토요일. 남편의 생일을 앞두고 외식을 하기로 했다. 병원에 출근해 오전 외래 진료를 마치고 곧장 남편과의 약속 장소로 출발했다. 가는 길 내내 나는 분명히 나의 건강을 확인했었다. 지하철 두 정거장이 되는 거리를 내리 걸으면서 만보를 채운 것이다. 푹푹 찌는 여름철의 날씨에도 언덕을 오르며 하나도 힘들지 않은 나의 체력이 뿌듯했다. 뒤늦게 고백하건대 만보를 채우는 동안 마음 한 구석에 미심쩍은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가늘게 들리는 방광의 비명을 무시한 것이다. 방광의 화장실 가라는 신호를 듣고도 못 들은 척 만보 채우기에만 여념이 없었다.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본격적인 아랫배의 통증이 시작되었다. 뒤늦게 화장실에 가보았지만 소변은 나오지 않았다. 방광의 비명을 무시한 대가는 영락없는 방광염으로 이어졌다. 콩팥 전문가인 나에게 이런 환자가 온다면, 버럭 화를 냈을 것이다. 만보 걷는 거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화장실을 가지 않고 무리를 하느냐고. 그리고 방광염에 즉효인 항생제를 처방할 것이다. 나는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방광염에 대응하기 위해 항생제를 포함한 상비약을 지니고 다녔다. 스스로를 꾸짖더라도 치료는 해야 하기에 항생제를 바로 꺼내 삼켰다. 항생제와 함께 진통제를 넘기며 성이 난 방광을 살살 달래었다. 다회 간 스스로를 관찰한 결과 항생제와 진통제를 삼킨 후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내에 증상이 좋아졌었다. 허리를 움츠려 통증이 완화되길 기대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이지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악화되어만 갔다. 아이와 친정 엄마, 남편이 모두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가는데도 나는 정신이 없었다. 나의 정신은 오직 아랫배에 집중되어 있었다.
‘약을 먹었으니 제발 좀 아프지 말아라.’
달래고 달래도 방광의 화는 풀릴 줄 몰랐다. 나 홀로 고요한 곳에서 심신의 안정을 취하고 싶었다. 모두가 밥을 먹는 동안, 쇼핑몰의 벤치에 앉아 통증이 잠잠해 지길 기다렸다. 아랫배의 통증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점입가경으로 통증은 멈출 줄 모르고 오른쪽 옆구리로 진행되었다.
방광염이 지속되면 콩팥으로 염증이 진행될 수 있다. 신우신염이다. 통증의 위치상 콩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배를 꾹꾹 눌러보고 주먹으로 옆구리를 쳐봐도 확실하지가 않았다. 내 몸이라 아플까 봐 살살 쳐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통증이 이렇게 계속될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내 증상에 대한 진단이 잘못되어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는 않은지 불안해졌다. 얼마 전 간헐적인 옆구리 통증으로 내원한 젊은 여자가 요관암을 진단받았다.
'혹시 나 돌팔이 의사 아니야? '
통증이 2시간이 넘어가자 나에 대한 의심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가벼운 방광염이라고 생각했는데 중한 병은 아닌지 확인이 필요했다. 정확하게는 나의 오른쪽 옆구리의 통증이 악성 질환은 아닌지 말이다. 무엇보다 아프고 싶지 않았다. 통증을 가라 앉히는 강력한 진통제가 필요했다.
토요일 오후에 문 여는 곳. 대학병원의 응급실이었다. 주말의 응급실은 번잡하고 복잡하며 오랜 대기 시간이 예상되지만, 통증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를 두고 내가 몸 쓸 병에 걸린 건 아닌지 불안도 해결해야 했다.
“아랫배랑 오른쪽 옆구리가 아파요. 사실 저 내과의사인데요, 방광염이 자주 오는 편이라서. 이번에도 방광염인 줄 알고 항생제랑 진통제를 먹었는데도 통증이 계속되어서 왔어요.”
소변 참다가 방광염에 걸린 내과의사라니. 신분을 밝히기 부끄러웠지만,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의사임을 밝혔다. 환자 입에서 나온 의사라는 말에 응급의학과 의사가 나를 다시 쳐다본다. 의사에 의한 의사의 진찰이 시작되었다. 오른쪽 옆구리를 주먹으로 퉁퉁 치고는 울림 통증을 확인한다. 신우신염 환자의 경우 이런 이학적 검사에서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 전형적이다. 나는 통증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했다. 이렇게 애매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는 의사에게 찜찜함을 안긴다. 응급의학과 의사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그 찜찜함을 다시 나에게 전달한다. 환자이지만 내과 의사이기도 하니 검사를 할지 말지를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럼 선생님, 피검사랑 소변 검사 좀 할까요? 너무 아프시니깐 진통제는 바로 놔드릴게요.”
‘네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지요.’ 강한 동의의 의미로 ‘네네’ 거렸다.
혈액검사를 하고 몇 가지 영상 검사를 안내받고서야 침상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방광염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소변 검사다. 소변 검사 결과가 한시라도 빨리 나와야 응급실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방광염의 주 증상 중 하나는 소변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화가 잔뜩 난 방광은 아직도 토라져 있었다. 그 증거로 방광은 소변 한 방울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 나를 닮아 정말 독한 녀석이다.
수액으로 살살 방광을 달래며 소변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요의가 느껴졌다. 그제야 방광의 마음이 풀어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받았다. 방광의 독한 기운을 품고 잇는 첫 소변은 버리고 중간 소변부터 모았다. 소변에 거품이 잔뜩인 것이 방광이 성이 잔뜩 난 모양임을 말해주었다.
방광아. 미안해. 정말. 다음부터는 절대로 참지 않을게.
소변 검사 결과 실제로 다량의 단백뇨와 함께 백혈구, 혈뇨가 나오고 있었다. 요로 결석 및 다른 질환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CT 상 신우신염으로 진행하고 있었다. 주사 항생제를 맞고서야 통증은 진정되었다.
결국엔 방광염이었고, 요로계 감염이 맞았던 걸로 봐서 나는 나의 진료에 확신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이를 적극 홍보하여 환자 유치에 나서고 싶다.
'보셨죠? 저 돌팔이 아니에요.잘해드릴게, 제게 오세요.'
급성 방광염은 내과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기에 오롯이 내 몫이었다. 하지만 스스로에 대해 객관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증상의 무게를 측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팠지만, 견뎌지기도 하는 통증이었다. 통증은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순간에 나는 여러 번 지옥을 드나들었다. 가벼운 질환이 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모질고 사나운 질병은 모두 내 것일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이때 다른 의사의 진찰과 객관적인 검사 결과는 이를 해결해 주는 열쇠가 되어 준다. 나의 예후가 걱정되는 심각한 질병. 나보다 더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필요한 질병에서 나는 다른 의사와 그 무게를 나눠 가진다. 스스로 머리를 갂을 수 있는. 제 아무리 내과 의사라 할지라도 뒷 머리를 깎을 때는 타인의 손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지금도 자신이 어떤 질병 일지 인터넷을 찾고 걱정을 하고 있다면, 어서 그 짐을 의사에게 던져버리길 바란다. 그 무게를 혼자 오롯이 지고 있으려니 온 몸이 다 아프고 더 힘든 것이다. 모든 걸 다 아는 내과 의사도 다른 의사를 찾아가서 무게를 나눠지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