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인생을 산 결과 의사가 되었고, 동시에 환자가 되었다.
어쩌다 보니 의대에 왔고, 어쩌다 보니 의사가 되었다는 이들이 있다. 우연히, 뜻밖에 생긴 일을 우리는 '어쩌다'라고 표현한다. 크게 원하지 않았는데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그들. 나는 한없이 그들이 부러웠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내가 매 순간 애쓰며 최선을 다한 결과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최대치가 100이라면, 100을 다해도 겨우 80점을 받는 나였다. 그런 나에게 우연을 가장한 '어쩌다'라는 행운은 온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의사라는 직업을 소개해 준 주변인은 없었다. 아버지는 한 회사에서만 30년을 일하셨고, 어머니는 각종 부업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바빴다. 의사의 꿈을 키운 건 TV 속 배우로부터였다. 평생 남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그들의 인생이 멋져 보였다.
무언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싹틀 무렵, 아버지의 잦은 발령으로 2년마다 거주지를 옮겨 다녔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전학생이 되어야 했다. 모든 것이 평범한 전학생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서 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공부였다. 낯선 그곳에서 시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뛰어난 성적표를 받아 내 이름이 불리는 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칼을 갈았다.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건 여러 번의 전학 끝에 터득한 나만의 생존전략이었다. 핵인싸가 되고 싶어 했던 어린 소녀에게 공부는 유일한 해결책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나의 꿈. 의사가 되는 길에 더 가까이 가는 길이기도 했다. 외모뿐 아니라 두뇌까지 평범했던 내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뿐이었다. 남들보다 월등하게 많은 시간을 시험을 준비하는데 보내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다. 여러 번 전학을 다니면서 알게 된 공부 잘하는 비법이었다. 나는 그걸 알았기에 매 순간, 매 시험 최선의 노력을 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면 된다'라는 집안의 가훈처럼 나는 무조건 열심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쌓았던 성적은 결국 나를 의대에 진학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서울 강북에 위치한 여고에서 재학생이 의대에 간 것은 몇 년 만이었다. 비록 지방에 있는 의대이긴 했지만, 그건 어린 시절부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였다.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끊임없이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뛰어난 이해력도 암기력도 없는 나였다.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그 말이 맞다. 그 덕에 내 오른손은 성할 날이 없었다. 꾹꾹 눌러 암기하는 버릇으로 생긴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의 굳은살,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오른손은 언제나 너덜너덜했다.
매일을 치열하게 살았던 증거는 지금도 남아 있다.
오른 손가락의 변형.
유난히 말려있는 오른 어깨.
그리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그 질병.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그동안 치열한 삶을 살아온 결과다.
치열함의 결과로 나는 의사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게 되었지만, 동시에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가 되었다.
어쩌다 환자가 된 것이다. 처음에는 억울하기만 했다. 뛰어난 머리도, 화려한 배경도 없는 내가 의사가 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몸을 던지는 것 밖에 없었다. 행운을 바라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 이것이라니, 인정할 수 없었다.
의사가 되고, 환자가 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깨달았다. '어쩌다'는 결코 우연히 얻어진 행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어쩌다'라는 말은 오히려 우연히 행운을 얻은 사람들보다 환자들에게 더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원하지 않았는데 얻게 된 뜻밖의 일은 환자들에게 더 자주 일어났다.
모두 어쩌다 환자가 된 사람들이다.
원해서 환자가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건 의사이자 동시에 환자로 살며 어쩌다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