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휴가 : 출산은 맞고 휴가는 틀리다

누가 출산휴가라고 했는가

by 닥터 키드니

출산 휴가로 3개월간 자리를 비웠던 A 선배가 돌아왔다. A 선배의 표정이 밝았다. 전공의 시절 임신이 되지 않아 출산휴가 한번 받아보고 싶은 마음에 A 선배가 마냥 부러웠다.


선배들보다 한참 늦어졌지만, 드디어 나도 출산휴가를 받았다. 90일간의 출산휴가. 90일이라니.. 그동안 나의 휴가는 길어야 일주일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있는 내게 선배는 말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출산휴가? 너 1년 차 때 섰던 에브리 데이 당직 기억나지? 딱 그거야.


공포의 에브리데이 당직.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과 1년 차의 첫 시작이었다. 100일 동안 매일 당직을 섰다. 4년의 수련기간 중 가장 힘들었던 때였다.


밤이다. 전화가 울린다. 낮이다. 전화가 울린다. 100일간 밤낮 가릴 것 없이 병동 전화를 받고 이를 해결했다. 100일 당직은 내과 의국의 오랜 전통이었다. 병원 생활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동기들끼리 함께 당직을 서며 일을 배우라는 선배들의 배려였다. '그런 배려.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았는데.' 스무여섯살의 나는 잘 버텼다. 하지만 젊음으로 버티던 몸은 100일 당직이 풀리던 무렵 무너지고 말았다. 100일동안 먹고 자는 일이 제대로 될리 없었다. 100일 당직으로 인해 나의 질병이 다시 시작되고 말았다.


에브리 데이 당직을 섰던 그때보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세월이 젊음이라는 무기를 앗아갔다. 대신 모성의 힘으로 당직을 서야 했다.


밤이다. 아기가 운다. 낮이다. 아기가 운다. 아기는 정확히 세 시간마다 울어재꼈다. 밤낮 가리지 않았다. 3시간마다 모유를 먹이고, 트림을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다시 재웠다. 아기가 잠을 자는 사이 잠깐이라도 눈을 붙여야 마땅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육아카페를 들락거리다 겨우 눈을 붙였다. 어느새 3시간이 지나 있고, 영락없이 울기 시작했다.


모성은 난생처음 가져보는 무기였다. 사람들은 모성은 강하다고들 했다. 하지만 내게 모성은 젊음보다 강하지 못했다. 내과 1년 차 때는 100일 가까이 견뎠던 몸이었지만, 7년이 지나 젊음이 증발된 내 몸은 이전보다 더 쉽게 신호를 보내왔다.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병이 재발했다. 밤 중 절반은 아이와 또 다른 절반은 복통으로 허우적 거렸다. 외래 예약 날짜를 앞당겨 교수님을 만났다.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다시 또 스테로이드 치료가 시작되었다.


내과 1년 차의 100일 당직은 기간이 정해져 있어 버틸 수 있었지만, 아기 돌보는 일은 기약 없는 일이었다. 길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녹초가 되어 녹아버린 몸으로 그 끝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는데, 아직도 두 달이나 더 버텨야 한다니. 그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100일이 다가올 무렵부터 밤새 통잠을 자기 시작한다는 이른바 100일의 기적이다. 100일의 기적이 오기만을 바랬다. 이변이 일어나 아기는 50일 무렵부터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기는 본능적으로 제 엄마 몸이 아프다는 걸 알았던 건지도 모른다. 아기의 통잠으로 충분한 수면을 할 수 있게 되자 내 건강도 서서히 회복되었다.


통잠을 자는 통에 야간 당직은 끝이 났지만, 여전히 낮시간의 노동은 남아 있었다. 그때 부터 나는 달력을 의식적으로 자주 보게 되었다. 남은 출산휴가 일수를 계산하며 출산 휴가가 끝나기만을 바랐다.


90일간 받았던 출산 휴가가 끝났다. 병원으로 출근하는 발걸음이 꽤나 가벼웠다. 아기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던 건지, 병원으로 출근이 설렜던 건지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직원들의 인사에 나도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들에게 비치는 나의 미소는 그때 그 출산 휴가를 다녀온 선배의 환한 웃음과 비슷할 것이다.


그때 그 선배의 표정이 그토록 밝았던 것은 드디어 힘든 육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출산휴가의 문자 그대로 나는 선배들이 출산하고 휴가를 보내다 올 줄 알았다.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그때는 몰랐다. 선배들은 3개월의 출산 휴가 기간 동안 출산을 하고 매일 낮과 밤 당직을 섰던 것이다.


출산휴가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는지. 출산이라는 단어와 휴가라는 단어는 같이 붙어 다녀서는 안 될 말이다. 출산 휴가 중에 출산은 맞고, 휴가는 틀리다.


출근하여 책상 위에 커피 한잔을 올려놓는다.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이며 환자를 기다린다. 진정한 휴가는 여기 이곳. 나의 직장 병원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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