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운전 탈출기 : 시내의 모든 운전자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이든 미리 준비하는 성격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3학년 대학 입학이 결정되자마자 그해에 바로로 얻은 운전면허증. 13년간 내 운전면허증은 신분을 보증하는 징표였지, 운전 가능함을 뜻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 수련이 끝난 뒤 구한 첫 직장은 대중교통으로 1시간, 자동차로는 30분에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반드시 운전을 해야 했다.
마침 16년 된 중고 쏘렌토를 물려받았고 나의 첫 운전이 시작되었다. 누구나 하는 운전 나도 못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스스로 척척 헤쳐가던 나 아니었던가.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수학을 가장 잘했던 나였다. 수학 문제의 답들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구하고자 하면 얻어지는 값이었다. 하지만 나는 운전자 석에 앉아서 아무것도 구하지 못했다. 다른 차와 나 사이의 거리는 가늠할 수 없었다. 충분한 너비에도 차가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았고, 꽤 가까이 있었는데도 각도를 잘못 틀어 부딪힐뻔하는 아슬아슬한 상황을 만들었다. 수학 문제집 위의 정답은 잘 맞히면서 현실의 각도는 늘 오답이었다.
빵빵. 운전할 때는 공복감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도로에서 내가 먹은 빵만 해도 한 트럭이다. 끼어들기할 때마다 운전자들은 나에게 빵을 던졌다. 지나치게 소심하거나 때론 너무 과감한 사람. 모두 나였다. 상대차 보다 가속을 해야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인데 부딪힐 것 같아 되레 속도를 늦추거나, 속력을 내어 달려오는 차 앞으로 과감하게 끼어들기도 했다. 가끔씩은 내게 던진 빵도 아니었는데, 내 것인 줄 알고 뜨끔하며 받기도 했다. 도로 위 빵들은 모두 내 차지였다.
밤하늘이 어두워지면 어두움과 보호색을 띠는 검은색 차들이 생겼다. 주행 중의 검은색 차량은 라이트를 켰기 때문에 인지할 수 있었지만, 주차되어있는 차들은 아니었다. 도로와 신호등에 집중해야 하는 내 눈에 검은색 차들은 완벽히 밤에 동화되어 좀처럼 찾을 수가 없었다.
늦은 밤. 멀쩡히 주차되어 있는 검은색 차의 후미를 들이받은 것이 내 첫 교통사고였다. 주차되어 있던 차라 인명사고는 없었지만, 사고는 꽤 큰 것이라 50만 원의 수리비가 청구되었다. 상대 차량의 수리비에 더해 내 차에도 큰 상처가 났다. 내 차의 첫 상처였고, 그게 시작이었다.
두 번째 사고는 어이없게 남편과 주차 보조 요원이 모두 지켜보는 곳에서 발생했다. 주차를 돕겠다고 두 사내가 내게 수신호를 보냈는데, 그 어떤 용기가 생겼는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각도를 틀었다. 주차하려던 곳 옆 차량의 앞 번호판을 지긋이 찌그러뜨렸다. '아니 왜 그리로 가.' 나도 남편도 주차 보조 요원도 어이없었다.
가만히 있던 주차장 벽에 차를 들이 박기도 했다. 벽도 나도 멀쩡했지만, 자동차엔 회갈색의 선명한 스크래치가 더해졌다. 매달 한두 건의 주차장 사고, 도로 위의 천덕꾸러기.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도로 위 모든 운전자들이 대단해 보였다. 수학을 잘한다고 공간에 대한 감각이나, 운전에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포자가 왜 생기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운 포자. 나 정말 운전을 포기하고 싶었다.
운전을 멈추고 버스 출퇴근이 시작되었다. 대중교통이용은 몸을 불편하지만 마음은 편한 일이었다. 버스를 탈 때마다 버스 기사님 바로 뒤에 앉았다. 그의 주행을 관찰했다. 복잡한 서울 시내에서 큰 버스를 운행하는 운전실력에 감탄했다. 버스 크기의 3분에 1에 불과한 내 자동차. 내가 그 차를 영영 운전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매일이 출퇴근이었고, 햇볕 쨍쨍한 여름날에 그 긴 거리를 버스를 타고 걸어가는 수고를 이제는 그만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어 운전을 다시 시작했다. 대신 조금의 뻔뻔함을 장착했다. 가기 힘든 좁은 길이 나오면 무작정 내려온 몸으로 길의 폭을 가늠했다. 넉넉한 거리가 확보되었을 때만 전진했다. 마주오는 차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면 고개를 숙여 운전을 부탁했다. 초보운전임을 밝히고 상대차 차주에게 운전을 대신 부탁해 빠져나오기도 했다. 끼어들기를 할 때면 섬섬옥수를. 때로는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뒷좌석에 큼지막하게 쓰인 초보운전 글씨와 사방의 스크레치는 내 차의 문신이 되어 주었다. 문신한 아저씨들을 보면 사람들은 피해 다니듯 내 차도 그랬다. 내 차의 문신을 보고 사람들은 나의 운전 실력을 가늠했다. 언제 어디서든 내가 주차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차로는 오지 않도록 내 차의 후미를 봐주었다.
여러 번 사고가 난 차량임에도 수리는 받지 않았던 것은 앞으로 얼마나 더 사고가 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미래에 발생할 사고까지 한꺼번에 모았다가 수리를 맡길 작정이었다. 그렇게 내 첫차는 상처가 지워지지 않고 더해져만 갔다. 그렇게 16년 된 중고차는 폐차 직전의 차가 되었다. 내 손을 거치면 뭐든 쉽게 부서지고 망가졌는데 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광의 상처와 더불어 어느덧 나는 운전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고백하건대 나의 운전 실력은 순전히 나 스스로 일군 것이 아니었다. 좁은 골목에서 나 대신 내 차를 빼주던 이름 모를 택배 기사, 자신의 외제차를 박을까 봐 후미를 봐주던 아주머니, 주차장에서 늘 내 차의 뒤를 봐주던 주차 아저씨들, 무엇보다 어설픈 끼어들기에도 빵 한 번으로 나를 따끔하게 가르치던 서울 시내 모든 운전자들이 내가 운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숨은 공로자들이다.
도움을 요청하면 사람들은 기꺼이 친절을 베푼다. 차 창밖으로 섬섬옥수를 내밀었을 때 대부분이 자신의 길을 멈추고 자리를 내주었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도움의 손길을 잡아준다. 이때 약간의 용기와 뻔뻔함이 필요하다. 차장 밖으로 손을 내미는 건 초보 운전자들에겐 필수인 몸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