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 우연하게 만나 인연이 되고, 우연히 사건이 발생한다. 뜻밖의 우연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우연이 운명이 된다.
송 할아버지는 20년 전 직장암 수술 이후 앓고 있던 고혈압 합병증으로 콩팥이 망가졌다. 직장암 수술 후 4년 뒤에 암이 간에 전이되어 왼쪽 간을 절제하는 수술도 받았다. 암은 사라졌지만 망가진 콩팥은 돌아오지 못했다. 투석실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가 혈액투석실에서 보낸 시간은 의사로 근무하는 나의 경력보다 길었다. 그는 진저리 쳐질법한 긴 병원생활에도 인상 한번 쓰는 법이 없었다. 때때로 의료진의 노고를 알아주기도 하고, 투석 병상 생활이 얼마 되지 않는 새로운 신입 환자에게는 위로의 말도 건네는 그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 그랬던 그가 작년부터 투석치료받는 동안 끙끙 거리기 시작했다. 투석 받는 혈관이 문제였다. 그 고통은 일주일에 세 번, 혈액투석을 받는 4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예정되어 있는 고통은 두렵기만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병원도 여러 군데. 정형외과, 신경과 등 협진 받은 과도 여러 과였다. 어느 곳에서도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가 도움을 요청하지 못한 병원 한곳만 빼놓고.
그곳은 투석 환자의 혈관을 손보는데 유명한 S 병원이다. 전국적으로 워낙 이름이 알려진 곳이라 예약하기가 쉽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진료 예약에 성공했고, 대기 끝에 투석 혈관을 손보기 위해 입원을 했다. 보통의 혈관수술이 그렇듯. 모두가 길게 잡아야 2박 3일의 입원을 예상했다. 수술은 생각보다 복잡했지만 성공적이었다. 수술 직후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 진작에 수술할 걸 그랬다며, 만족스러워했다. 다만, 두 번의 수술과 결과를 확인하느라 입원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2주간 입원하고 퇴원을 앞두고 있었다. 골칫덩어리였던 통증도 사라졌겠다, 이제는 원래의 병원으로 돌아올 일만 남은 그였다. 퇴원을 앞두고 투석 스케줄을 확인하기 위해 연락이 왔다. 그가 오겠다는 토요일은 여분의 자리가 없는 날로, 역시나 다른 환자들의 투석 스케줄로 마감되었다. 하는 수 없이 S 병원에서 하루만 더 입원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그런데 주말 사이 S 병원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터졌다. 6인실을 사용했던 송 할아버지 병실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 증상은 없었지만, 같은 공간에서 생활했기에 그도 코로나 검사를 진행했다. 결과는 COVID 19 양성. 증상은 없었다. 무증상 코로나 양성이었다. 코로나 양성 소견을 우리에게 전하면서 할아버지는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며 농담과 진담이 섞인 말을 했다. 나는 ‘증상이 없으니 격리 기간만 잘 지키면 괜찮을 거’라고 그를 다독였다. 2주간의 격리 기간 동안 틈틈이 연락이 왔다. 우울했던 기분은 좋아지고 있었고, 더 이상 새로운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예정된 2주의 격리가 끝나고 만날 일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퇴원을 하기로 했던 날, 그에게 약간의 기침이 생겼다. 예정되어 있던 퇴원을 보류하고 완벽하게 좋아지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일주일 동안 환자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에게 연락이 왔다. 기침이 발생하고 5일째 되던 달, 폐렴이 급속하게 진행했고 결국 나흘 만에 떠났다고. 코로나 19 감염으로 인한 폐렴. 믿기 힘든 현실에 남겨진 사람들 모두가 코로나 블루에 빠졌다.
세상에는 나쁜 우연과 좋은 우연이 있다. 전자는 믿기 힘든 현실이고, 후자는 믿고 싶은 기적이다. 우리 주변에는 기적이라고 부르는 좋은 우연보다는 나쁜 우연이 더 많다. 환자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필연이 아닌, 우연히 일어난 나쁜 일이다.
그에게 발생한 일은 역시 우연이었다. S 병원에 입원한 것도, 퇴원 기간이 길어진 것도, 같은 병실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것도. 우연이었다. 우연이 운명이 되는 현실이 덧없게만 느껴졌다. 그의 운명에 더해진 수많은 우연 중 하나만 빠졌어도 그의 운명은 달라졌을 것이다.
믿기 힘든 현실에 ‘만약에’를 붙여본다. 만약에 병실에 코로나 확진자만 나오지 않았다면. 만약에 제때 퇴원했었더라면. 만약에 S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매 순간 아쉬웠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만약은 없다.
믿기 힘든 현실은 부정하고만 싶다. 현실에서 병을 진단받을 때나,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을 앞두고 있을 때. 과거를 되짚으며 잔혹한 운명에 만약에를 붙이고 올라간다. 만약에를 붙이며 후회와 한탄을 한다. 그렇게 만약에를 붙이다 보면 종국에는 우리 존재 자체가 부정될지도 모른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 어떤 고통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우연이듯. 세상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고, 우연이 운명이 된다. 그러니 우연히 일어난 일에 후회하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
송 할아버지와 나. 당신과 나. 우리의 소중한 인연도 우연히 가져다준 선물이다. 여전히 비워진 할아버지 자리를 볼 때마다 그의 미소가 그립다. 고통 없는 그곳에서 웃고 있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남겨진 사람들은 코로나 블루를 이겨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