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 신환이예요. 이식 대기 중이시래요.
9개월전 그날. 내게는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아침회진 시간이었다.
새로왔다는 그는 첫번째 침대에 누워있었다. 젊은 여자다. 젊은 여자가 투석실 침대에 누워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마스크 너머로 확인된 얼굴은 두눈뿐이었다. 보라색 아이 쉐도우와 또렷한 아이라인.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꽤나 정성스럽게 그린 눈이었다. 차트를 넘겨 이름을 확인했다. 이름과 눈빛이 낯설지가 않다. 혹시 내가 알고 있던 고등학교 동창 그…녀?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재빨리 차트를 뒤적여 생년월일을 확인했다. 나와 같은 년도에 태어났다. 그럼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K는 너무 흔한 이름이었다. 무엇보다 K는 남편과 외국으로 이주해 스시집을 운영해 살고 있다고 했다. 이곳에 이렇게 누워있는 모습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혹시 실수를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싶었다. 환자의 투석 치료가 끝나고 내방 진료실에서 K를 다시 만났다.
서로 마스크를 써야 하는 덕에 그쪽에서는 나에 대해 의심조차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혹시 저 알지 않으세요?” 마스크를 벗고서야 서로에 대해 확인 할 수 있었다. 20여년만에 여고동창을 만났다. 각자 의사, 환자가 되어있었다. “그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거야?” 친구이자 의사로서의 궁금증이었다. K의 인생을 받아 적었다. 타인의 인생을 듣고 적는 것이 내가 만날 하는 환자파악이다.
20살 무렵부터 고혈압이 있었던 K는 7년전 사구체 신염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학병원에서는 입원하여 조직검사를 할 것을 권유했지만 진행하지 않았다. 결혼한 직후였고 호주로의 이주를 앞두고 있었기에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시 콩팥 기능이 절반 정도 남아 있다고 했으나, 그게 얼마나 심각한 이야기 인줄은 몰랐다. 호주로 이주한 이후 가열찬 이민자의 삶이 시작되었다. 콩팥은 참을성이 강하다. 콩팥기능이 10%남을때까지 별다른 증상이 없다. 먹고 살기 바빴기 때문에 언제나 몸은 뒷전이었다. 콩팥 기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관리되지 않았던 콩팥은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늘 피곤했고, 체중이 나날이 불어갔다. 폐에 물이 차 숨이 찼다. 응급실에 실려가 응급 투석을 하게 되었다. 혈액투석을 시작한지 1달째. 30대의 젊은 나이라 K는 콩팥 이식이 간절했다. 호주 의료진은 콩팥 이식을 위해 한국행으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호주에서의 이식 수술은 기약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K는 콩팥 이식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9개월 동안 투석을 하며 이식 준비가 진행되었다. K는 남편의 콩팥을 받기로 했다. 이식을 위해 입원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투석을 진행했다. K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500 ml 짜리 텀블러 두개.
K는 9개월간 혈액투석을 하며 체중 조절을 위해 수분 섭취를 제한해야 했다. K에게 텀블러는 콩팥 이식 후 마시고 싶은 물 실컷 마시라는 뜻이다. K의 남편에게도 같은 텀블러를 준비했다. K에게 콩팥을 주고, 콩팥이 하나 밖에 없을 K의 남편에게 콩팥 보호하는 방법은 역시 물이다. 충분한 수분섭취가 필요하다. K에게 작별인사를 전한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 이렇게 병원에서 환자와 의사 사이로는 말이야. 그대신 친구와 친구 사이로 병원에서 만나자. ”
K의 성공적인 콩팥 이식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