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온 전학생의 비밀

바꿀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키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인다.

by 닥터 키드니

또 전학이다.


중학교 1학년. 봄이었다. 입학식 다음날 나는 교실 문을 두드렸다. 어제 자른 단발머리가 아직은 어색하다. 곱슬이 길들여지지 않아 삼각 김밥 머리를 하고 교실 앞에 섰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이전의 전학과는 달리 이번에는 떨리지 않았다. 오후에는 저들이 입고 있는 교복을 맞추고, 저녁에는 자장면을 먹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 나만 쳐다 보고 있다. 이제는 이들의 시선이 두렵지 않다. 이 시선은 잠깐 뿐이고, 심지어 이 중 몇몇은 나를 아예 쳐다 보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유가 느껴지는 나는, 프로 전학러다.


세번째 전학이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때까지 2년마다 전학을 다녔다. 아버지의 발령, 전세 계약의 만료 등이 그 이유였다. 세번의 전학 끝에, 프로 전학러는 알 게 된 것이 몇가지 있었다.


첫째. 전학생으로 불리는 이 신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전학생이 된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것이 아니다. 전학이 그토록 싫었던건 익숙했던 것과의 이별때문이었다. 나를 봐주던 익숙하고 따뜻했던 시선은 전학생이 되면 순식간에 차갑고 무관심한 시선으로 바뀌었다. 무관심한 시선이 하루 라도 빨리 다시 따뜻해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나는 더이상 조급해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이 모든건 다시 익숙해 진다. 어느덧 무관심한 시선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전학생은 반장이 될 수 없다.

전학생이 반장이 되는 일은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반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던건 따뜻한 시선을 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전학생으로 낯선 지금의 내 이름이 익숙해 지기를 바라며 반장이 그렇게 하고 싶었던 거다.


※ 전편 참조

https://brunch.co.kr/@kongjjak/45


우리집 가훈인 '하면 된다.' 이 문장은 어린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진 말이었다. 우리집 가훈인 '하면 된다'를 늘 새기고 다녔다. 정말로 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반장도 그랬다. 노력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게 반장은 '하면 부반장 되는 일'이었다. 반장은 내가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할수 있는건 투표 용지에 내이름을 적는것. 자선표 1표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전학생은 반장이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였다.


셋째. 진정한 가훈의 의미를 깨달았다.

프로 전학러는 우리집 가훈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했다. '하면 된다'는 주어와 목적어를 교묘하게 되는 빼버린 이 문장. 아빠가 그토록 외치던 '하면 된다'의 진정한 의미를. 시작이 중요했다. 그 시작은 '하면 되는 일'을 찾는 것이었다.


찾았다. 그거. 하면 되는 일.

반장은 남들의 손에 의해 이름을 날리는 것이었다. 내 손으로 내 이름을 날릴 수있는 방법을 찾았다. 공부. 평범한 외모, 이렇다할 특기 없는 내게 공부는 내 이름을 익숙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전학생은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조용히 칼을 갈았다. 시험 치루기 만을 기다렸다. 게다가 나는 남다른 성적을 받는 비법을 알고 있었다. 전학생이 재학생이 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듯. 공부 잘하는 것도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시간을 공부하는데 쓰면 돌아오는 것은 좋은 성적과 '쟤, 공부 쫌 한대.' 라는 풍문이었다. 그렇게 나는 공부 좀 하는 애로 이름을 날렸다.


새학년 새학기에도 유효했다. 낯선 교실에서 내 이름 석자는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더이상 나는 전학생이 아니었고, 굳이 반장을 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시작부터 따뜻한 시선을 받고 있었다. 반장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는데도, 중학교 2학년부터 고등학교 3년 내내 학급 반장을 맡게 되었다. 그토록 원했을때는 한번도 해보지 못했는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서 내 이름이 가장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다가올 서울 시장 선거도 누가 될지 알것 같다. 지금 이름이 거론되는 많은 후보들 중에서 가장 익숙한 이름. 그 이름이 서울 시장이 될 것이다.




나는 '하면 된다'는 우리집 교훈을 아직도 새기고 다닌다. 주어와 목적어를 뺀 이 문장이 마음에 든다.


지금도 나는 내가 하면 되는 일을 찾는다.

'브런치 구독자 100명' 만들기 같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애 쓰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해줄지 안해줄지 모르겠다. 그건 내가 친구들의 손에 의해 반장에 당선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이거다.


브런치에 정성들여 글 100개 쓰기.

매 글마다 수정과 퇴고 5번 이상하기.

올해엔 브런치 북 만들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고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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