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님도 삐뽀 삐뽀 보세요?

내과 의사의 딸은 아프면 어떻게 할까 ?

by 닥터 키드니
원장님도 삐뽀 삐뽀 보세요?

나는 삐뽀삐뽀의 수많은 독자 가운데 조금은 특별하다. 이미 소아에 대해 한번 훑은 이력이 있는 나였다. 본과 2학년 무렵 아기의 발달을 외우고, 굵직한 질병에 대해서도 공부했었다. 소아과에 대해 이론과 실습 모두 한번에 통과했다. 당시 소아과 학점이 A-였으니 소아에 대한 이해는 평균 이상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어디 그 뿐인가. 소아과 실습과 인턴도 했으니 다른 독자들 보다는 경험이 있는 셈이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배운 즉시 확인했어야 할 소아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10여 년 후에야 시작되었다. 나의 소아에 대한 실습이 이뤄진 첫날. 나의 무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카트에 실려온 아기를 어떻게 안아야 하는지 몰랐다. 몸통, 팔과 다리가 모두 있음에도 만지기만 하면 부서질 것 같았다. 내 아기에 대한 실습이 시작되었지만 나는 아기를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변명을 하자면 소아과 교과서 어디에도 ‘아기 다루는 방법’ 같은 건 없었다.

나의 소아에 대한 이해도가 제로에 가까웠다. 의과대학에서 소아에 대해 배웠지만, 그것은 수박 겉 핥기 정도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저 수박을 바라보기만 한 것이다.


그래도 아이가 아플때 만큼은 내과 의사엄마의 소아과 지식이 도움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삐뽀 삐뽀 119까지 탐독하고 있으니 완벽한 의사 엄마의 역할을 다 해낼 것이라 믿었다.


돌 무렵이었다. 가벼운 콧물로 시작한 감기가 며칠째 고열로 이어졌다. 내과 의사인 나의 주 고객 어른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어떤 때는 감기인 것 같다며 자신의 진단명까지 들고 왔다. 내가 낳았지만 말 못 하는 아기는 제게 어떤 증상이 있는지 표현하지 못했다. 자신의 질병에 대한 힌트 하나를 주지 않았다. 그저 우유를 덜먹고 칭얼거릴 뿐이었다.


삐뽀삐뽀 책에서는 열이 날 때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체온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했다. 해열제를 먹였지만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미지근한 물로 밤새 아이 몸을 닦았다. 30분 간격으로 아이의 이마를 만지고 체온계로 온도를 확인했다. 그 과정을 반복한 덕에 나는 인간 체온계가 되었다. 체온계를 대지 않고 손의 느낌만으로도 아기의 체온을 가늠할 수 있었다. 거의 정확했다.


“엄마, 나 열나는지 좀 봐줘,”

어린 시절의 열이 나는 것 같았을 때 제 이마에 아무리 손을 가져다 대도 나는 내 몸의 온도를 몰랐었다. 나의 체온을 확인받는 건 엄마 손이었다. 밤새 아기를 돌보며 왜 그렇게 엄마 손 온도가 정확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수많은 밤을 거쳐 엄마도 어린아이였던 나의 체온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 세월을 거쳐 엄마의 손 온도계는 정확해졌다.


밤중에는 걱정과 염려가 밤의 색깔만큼 진해졌다. 책에서 봤던 열이 발생하는 수많은 원인 들 중 나는 가장 심각하고 나쁜 것들을 우선 떠올렸다. 폐렴이나 바이러스 뇌염과 같은 것들. 행운은 늘 다른이들에게만 가고, 나에게는 불운한 일들만 올거라고 염려했다.

그와 동시에 지난 일주일간 나의 어떤 무지가 아이를 아프게 했는지 되짚었다. 며칠 전 야외로 외출했던 것이 잘못이었는지, 같이 놀던 또래 아기로부터 옮은 건지. 모든 환자 보호자들이 한다는 '만약에' 놀이를 시전했다. 만약에 그날 놀러 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그때 무리하지 않았더라면. 이런저런 잡념으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날이 밝자마자 일요일 아침에도 문을 여는 소아과를 찾아갔다. 일찍 도착한 덕에 세 번째로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소아과 의사에게 목과 코를 보고 청진기로 숨소리를 확인받았다. 목이 부어있지만 괜찮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몇 가지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지속된 고열은 5일째 갑자기 사라졌다. 열이 사라진 자리에 장밋빛의 발진이 나타났다. 돌 발진이었다. 괜찮을 거라는 소아과 의사의 말이 옳았다.


삐뽀 삐뽀 책으로 소아에 대한 지식을 더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1000페이지나 되는 책의 내용 전부를 저장할 수가 없었다. 설사 책을 통해 소아에 대한 이해를 모두 했다고 하더라도, 내 아이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사의 객관적이고 정확한 진단은 차가운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 차가운 마음은 수 많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자식에 대한 차가운 마음은. 아무리 내과 의사라도 내가 낳은 유일한 아이. 케이스 1례로는 얻어 낼 수 없는 것이었다.


소아과 의사는 말 못 하는 아기를 보고 진단 및 치료를 이끌어낸다. 가벼운 질환에서부터 중한 질병에 이르기 까지. 4년의 수련과정에 더해 소아과 전문의로 수없이 많이 보았던 아이들로부터 온 것이다. 그것은 진단명에 치료법까지 꿰고 오는 말 잘하는 어른 환자를 주로 보는 내과 의사인 내가 봤을 때 영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소아과 의사의 영험함을 믿기에 아이가 아프면 고민 없이 소아과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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