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차 한 명이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끝내 수련을 포기했다. 8명이었던 1년 차 전공의가 7명으로 줄었다. 수련을 포기하고 나간 녀석보다 더 걱정되는 건 남겨진 7명이다. 애써 웃음 짓는 그들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처져 보였다. 의국을 나간 건 1명이었는데, 남겨진 이들의 어깨는 한 명의 몫보다 훨씬 더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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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포기. 나 역시 수련 과정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면 된다'라는 정신으로 버텨왔던 나지만, 내 몸을 희생해가면서까지 내과 전문의 자격증을 얻어야 하는 것인지. 잦은 재발은 중도 포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수련을 그만두었을 때 당장 편해질 내 몸과 내가 빠진 뒤 나를 대신할 동료들의 고통의 무게를 잴 수밖에 없었다.
1년 차부터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신입생 환영회, 의국 회의, 병원 내 코드 블루 소리가 들리는 곳. 그곳에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지쳐 쓰러져 잠드는 사이 밤새 울리는 진동 벨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한 명만 일을 제대로 못해도 모두 당직을 서야 했던 운명 공동체였다. 그곳은 각자가 참을 수 있는 만큼은 참아줘야만 돌아가는 노동 환경이었다. 엄살도 생색도 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여러 번의 재발을 겪었고, 동료는 루푸스를 진단받았다. 또 다른 동료는 하늘나라로 아버지를 보내면서 임종의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루푸스로 뇌졸중이 온 동료 앞에서, 아버지를 잃고 한순간에 가장이 된 동료 앞에서. 어느 누구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서로의 상처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운명 공동체로써 서로에게 기대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남극에서 황제펭귄이 한 겨울의 혹한을 이기는 방법은 서로의 체온을 맞대고 온기를 나누고, 돌아가며 바깥쪽과 안쪽을 교환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세대를 거듭해 살아남는다. 우리도 남극의 황제펭귄처럼. 서로가 힘들 때는 당직을 교환하며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살아냈다. 그 바탕엔 그때 우리 모두가 의사로서의 삶 중 가장 젊은 날이었던 것도 한몫했다. 젊음이란 그 어떤 것으로도 가릴 수 없으며, 경력, 지력, 요령보다 앞선다.
내가 빠진 자리를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어냈던 동료가 대신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고개가 저어졌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 젊으니까 버터 보자고 다짐하니 가능하기도 할 것 같았다.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이엔 암묵적인 합의가 있었다. ‘중도 포기는 안된다.’ 서로의 아픔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한 명의 낙오자라도 발생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함께 버터야 했다. 매일 서로에게 굿 럭을 빌었다. '네가 버텨내야 나도 버틸 수 있다.' 각자 마음속에 아픔을 품고 밤에는 함께 치킨을 뜯으며 병원을 지켰다.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4년의 시간을 버텼고 같은 해에 8명 모두 내과 전문의가 되었다. 마지막까지의 완주는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했지만, 타인을 위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의 생존을 위한 조건부 이타심이었다. 생존하기 위해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끝까지 해내고, 각자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젊은 날의 우리. 모두 함께 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