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 키드니 Oct 11. 2021

서울에 집 사자고 했더니, 미국에서 살자고 했다

싸우자. 남편의 아메리칸드림과

집주인이 이 집을 사지 않겠냐고 했다. 2년의 전세 만기를 앞두고 있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한 이유는 2년 전의 가격을 알았기 때문이고, 고점에 물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수억 원을 벌어 시세차익을 얻은 집주인이 털고 나가려는 것을 보고 이제 떨어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집주인은 우리가 살던 그 집을 보지도 않고 매수했다. 우리 대신 고점에 물린 새 집주인이 안타까웠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그러나 그해 겨울. 어제의 신고가는 오늘의 매수자가 원하는 적정 가격이 되어 있었다.


상황 파악이 된 나는 남편에게 집을 사자고 했다. 정착하고 싶었다.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삶이 나쁘지 않았으나, 아이가 생긴 이후 떠도는 삶은 더 이상 설레는 게 아니라 성가신 일 투성이었다.


천정 없이 뚫리는 집값을 보며 불안해하는 나에게 남편은 말했다. 모두 호가일 뿐이라고. 그럴 때마다 왜 한국에서 살 생각을 하냐고 나를 나무랐다.


여기서 살 생각하지 말고, 미국 가자. 


남편은 병에 걸렸다. 미국병이다. 그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꾼다. 가장 큰 영향은 미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은 큰 아주버님 때문이다. 아주버님은 십여 년 전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정착한 시민권자다. 형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고, 매일 듣고 있었던 남편은 미국에서의 삶이 그저 꿈이 아니라고 여겼다. 천의 자연과 여유로운 삶을 누리는 큰 아주버님의 삶을 동경했다. 더욱이 아이가 생기기 전 나와 함께 미국 여행을 했던 기억이 선명했으므로, 애쓰면 가닿을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의 아메리칸드림을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 직업. 의사라는 직업을 포기할 만큼 미국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 의사라는 삶을 포기할 수 없겠다 하니, 그러면 미국 의사의 삶을 시작해보라고 했다. ‘이 남자가 내 명줄을 단축시킬 작정이구나.’ 미국 의사의 삶은 한국에 비해 매우 할 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영어가 서툰 동양인에게 그 모든 게 쉬울 리 만무하다. 무엇보다 젊음이 빠진 수련 생활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의사의 삶뿐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환자로서의 삶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이곳에서 양질의 의료를 싼값에 이용하는 중이다. 평생 먹어야 하는 약과 정기적인 검사. 국가는 이를 산정특례라는 명목 하에 저렴하게 제공해 주고 있다. 자신이 만수르도 아니면서 이 모든 걸 어찌 다 해준다는 건지. 결국 나는 꿈 따먹는 남편에게 찬물을 끼얹고 기어코 싸움으로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남편이 왜 그토록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가 겪었던 미국은 친절했다. 그곳엔 완벽한 날씨와 공원, 휴일뿐 아니라 평일 저녁에도 넉넉한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는 친절한 사람들 속에서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연과 여유를 선망했다. 미국만 가면, 그 모든 걸 누릴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좋게 보았던 모든 것은 그가 여행자로서만 그곳을 누비고 다녔기 때문이다.


돈을 쓴 관광객이 아닌, 돈을 벌어야 하는 외국 노동자의 삶은 어떨지 그는 알지 못한다. 어디서든 돈 버는 일이 삶을 고단하게 만든다.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이 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얻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울지. 우리는 한국에서 일하는 타국 사람들의 삶으로 그저 유추할 뿐이다.


남편과 함께 3주간 큰 아주버님 댁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큰 아주버님의 미국 집에선 CNN이 아닌 1박 2일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한동안 보지 못했던 한국 예능을 미국에서 모조리 몰아봤다. 여가 시간이 많은 큰 형의 삶에서 남편은 여유를 보았지만, 나는 향수를 느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우리 집에서 마지막으로 본 드라마는 프리즌 브레이크였는데. 한국에서는 미국의 삶을 동경하고, 미국에서는 한국을 그리워한다. 서로의 천국을 상상하며 엿본다.


현실은 피곤하고 고달프다. 서로의 삶은 현실이 아니기 때문에 그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한다. 천국이라고 여겼던 삶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곳은 더 이상 천국이 아니다. 천국이 현실이 되는 순간 우리는 또 다른 천국을 꿈꾼다.


남편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 있었던 이유. 여행자로서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만약 우리가 현실에서 여행자로서의 삶을 살 수 있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자의 삶과 생활인의 삶의 차이는 정해진 기간의 유무다. 여행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다. 하루 뒤, 일주일 뒤, 1년 뒤, 2년 뒤 여행의 기간이 정해지고, 그 끝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경험하는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여행지에서는 흔한 하늘의 구름만 쳐다봐도 근사하다.


반면 생활인들의 삶은 기한이 없다. 현실에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이 생활이 무한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삶은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라는 것을. 다만 지금 당장 그 끝을 알 수 없을 뿐이다. 의사로 살며 수많은 이들이 불시에 세상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세상에 남겨진 한때 함껴였던 여행자들과 마지막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말이다. 


어쩌면 나의 삶이 기간이 정해져 있음을 알고 있다면, 세상을 여행자처럼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모든 것이 소중해진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사는 그곳이 어디든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천국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그걸 찾아내는 건 각자의 못이다.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나의 목적은 서울에 집 사는 것에 있었는데, 집 사자고 하면 '기승전미국' 타령하는 남편 때문에 남편의 아메리칸드림을 뭉개고 말았다. 아메리칸드림은 죄가 없다. 나 역시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여우의 신포도 일 것이다. 다만,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는 남편에게 말하고 싶다. 


'천국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의 천국은 당신과 나, 우리 아이가 함께 하는 여기 이곳이 아닐까. 우리의 천국이 있을지도 모르는 여기 이곳. 서울에 우리의 보금자리부터 마련해 보자'라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