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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Oct 20. 2021

여배우에겐 반사판이, 여의사에겐 하얀 가운이 있다

의사의 하얀 가운은 권위의 상징이다. 병원에만 오면 혈압이 높다고 불만인 환자들. 그것은 의사의 흰 가운 때문일 것이다. 의사가 입고 있는 하얀 가운만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긴장감이 발생하고 혈압이 높아지는 백의 고혈압은 전체 고혈압 환자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흔하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의사를 꿈꿔왔던 어린 시절. 의사 가운은 나에게 경외의 대상이자 꿈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할 날을 손꼽으며 밤을 지새워 공부할 수 있었다. 의대생이 되고 나서도 가운을 입는데 까지는 4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본과 3학년. 병원에서의 임상 실습이 되어서야 꿈에 그리던 의사 가운을 입을 수 있었다. 병원의 녹을 먹는 사람이 아닌 학생 신분임에도 가운만 걸치면 병원에선 더 이상 이방인으로 취급받지 않았다. 완벽히 병원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병원에서 본 것은 모두 흡수하고 싶었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했기에 양쪽 주머니엔 수첩이, 왼쪽 가슴에 붙은 호주머니 속에 펜라이트, 삼색 볼펜, 형관펜 등 각종 문구용품이 가득이었다. 날개같이 가벼웠던 가운은 금새 무거워졌다.


병원에는 가운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많았다. 처음 만난 호흡기 내과 치프. 그는 하얀 가운이 유난히 잘 어울렸던 사람이었다. 조막만한 하얀 얼굴에 검은 불테. 안경을 가득 채운 커다란 눈. 가운 소매 사이로 언뜻 보이는 고급 시계. 미목수려했던 그는 지성까지 겸비한 선배님이자 선생님이었다. 하얀 가운에 반했던 건지, 나 역시 내과에 입국해 그와 인연이 닿길 바랬다. 병실 회진을 돌때면 그의 뒤를 밟고, 눈을 반짝였다. 늘 뒤따르기만 나였는데, 그날은 어찌된 일인지 내가 그보다 앞서 걷게 되었다. 나의 뒷 모습을 보고 있을 그를 생각하면 뒷통수가 뜨거워졌다. 그나마 앞태보다는 나을 뒷태에 안심이었다. 너무 방심했던 건지 수작건 사람도 없었는데 나는 발걸음이 꼬여 제발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다. 왼쪽 호주머니에 있던 온갖 펜들이 병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같이 실습을 돌았던 동기들, 병실의 환자들이 키득거렸다. 지켜보고 있는 건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하얀 가운의 그가 내 뒤에 있었다. 순식간에 나의 가운은 가벼워졌지만, 마음은 무거워졌다. 허리를 굽혀 주섬주섬 펜을 수집하며 침대 밑에다 몸을 숨기고 싶었다. 쓰라린 기억이후 나는 그를 피해다녔다. 1년뒤 그는 같은 내과 의국 아랫년차와 결혼을 했다. 하얀 가운이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학생 가운을 졸업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유니폼을 입는 의사가 되자 나는 알게 되었다. 나 역시 가운이 꽤나 잘 어울리는 사람 중 하나였다. 여배우에게 반사판이 있다면, 여의사에겐 하얀 가운이 있다. 가운을 입었기에 남자 의사도 만날 수 있었다. 젊었던 것 외에 볼 것 없는 내게 관심을 보인 이들에게 이제서야 고백한다.


 ‘그거 다 하얀 가운 발 때문이었어.’


가운을 입는 자들 사이에서 패션 리더는 없었다. 2007년 하얀 거탑이나 2021년 슬의생의 주인공도 매한가지. 인턴과 전공의. 병원 안에서 만큼은 언제나 시대에 뒤쳐지지 않았다. 무엇을 입었든 걸치기만 하면 베스트 닥터 룩이 되었던 건 하얀 가운 덕분이었다.   


가운은 내가 감추고 싶은 전부를 품어주었다. 다들 나를 날씬이로만 기억하는 건 다름 아닌 나의 가운 덕분이다. 역 삼각형 얼굴에 대비되는 체형을 가지고 있는 나. 말린 좁은 어깨, 우람한 팔뚝, 후한 뱃살, 두꺼운 허벅지. 가운은 모든 것을 감추어주었다. 전공의 시절, 병의 재발로 스테로이드를 복용할 때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스테로이드를 먹을 때마다 사람들은 보기 좋다고 했다.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찍어 뚱뚱해졌음에도 보기 흉해진 뱃살은 가운이 감추어주고, 뾰족했던 얼굴은 살이 올라 볼이 통통해졌었다. 여러 번의 재발로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 때였음에도, 남들 눈에는 그저 좋아 보일 수 있도 있는 것이다.


가운은 나의 아이를 가려주기도 했다. 일부러 임신 사실을 숨긴 것은 아니나, 가운을 입으면 사람들은 나의 임신 사실을 좀처럼 알아채지 못했다. 가운은 남산만한 내 배를 가려줄 만큼 푸짐했다. 막달이 되어 단추를 잠그지 못하고 가운을 풀어헤치고 다닐 때서야 눈치 빠른 몇몇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출산을 위해 잠시 병원을 비워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전혀 몰랐다며 놀라는 환자도 여럿이었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여자 의사들이 출산 직전까지 병원에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가운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변신. 파워 레인저. 임신으로 몸이 천근만근 힘들어도 가운만 걸치면 힘이 솟아났다. 집에서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숨만 쉬는 만삭 임산부였음에도, 병원에서는 소리 꽥꽥 지르는 우악스러운 내과 의사로 변신할 수 있었다.


가운은 나와 나의 가족을 지켜 주기도 했다. 가운을 벗자마자 곧장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에게 가운은 병원 내의 혈액, 분비물 등 감염원을 막아 주는 역할을 했다. 가운이 막아준 건 오염원 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결례를 범하는 사람들. 내가 가운을 입지 않았다면, 내게 무례하게 굴었을 이들도 자세를 고쳐 최대한 순화된 말을 사용하곤 했다.


가운에는 방수 기능이 있다. 눈물이 않은 나는 가운만 입으면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가운은 내 눈물을 삼켰다. 환자와의 이별, 선배, 교수님으로부터의 질책. 슬픔이 많은 병원에서는 울만한 일들이 많았지만, 가운을 입고 있으면 울수가 없었다. 눈물샘에서 생성된 눈물은 눈동자에 맺히다 끝내 하얀 가운에 스며들었다. 안과 밖이 뒤바뀐 가운의 방수 기능. 그 성능으로 나는 모두가 기대하듯 차가운 의사. 찔러도 눈물한방울 나오지 않을 단단한 모습을 가질 수 있었다.


남들눈에 보이는 하얗게만 보이는 가운이 내게는 오색 차란함이다. 나의 희망, 사랑, 아픔, 기쁨과 슬픔을 품고 있다.  


보잘것없는 나를 빛나게 해주고, 나를 품어주고,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생계를 책임져 주고, 나의 자리를 지켜준 나의 하얀 가운이 고맙다. 이제는 가운을 입지 않은 내 모습을 본 환자들이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 할 정도다.


요즘 나의 가운은 꾹꾹 눌러 담았던 펜과 수첩을 덜어내 가벼워졌다.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던 배움은 그동안의 경험이 더해져 내 몸과 마음, 머리에 남아있다. 이젠 비교적 단촐해진 가운이 되었지만, 내 가운의 무게는 학생 때 처음 가운을 입었을때보다 무거워 졌다. 삶의 고단함을 느낄때마다 내가 의사의 가운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에게 많은 걸 주었던 하얀 가운은 그만큼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세계. 내가 책임져야 할 환자들의 삶. 내게 기대하는 전문성과 정확함. 모든 걸 품었던 것만큼 당당히 많은 걸 청구하는 하얀 가운이다. 하얀 가운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나는 나의 건강과 젊음을 희생해야 했다. 마땅히 해야할 나의 일. 가운이 주는 고마움을 누리기 위해 나는 무거운 가운의 무게를 버터야 한다. 가운을 벗기 전까지 계속될 일이다. 어디 의사의 하얀 가운 뿐이겠는가. 직업을 가진 모든 이들이 짊어질 무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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