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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 키드니 Oct 11. 2021

머리에 구멍이 났다.

발모광이었던 엄마가 발견한 아이의 탈모 

아이의 머리에 구멍이 났다. 있는 힘껏 동공을 확장해 다시 봐도 구멍이 맞다. 언제부터였을까. 딸의 묶음 머리는 평일엔 친정 엄마의 손에 이끌리고, 나에겐 일요일에서야 오게 되는 일이다. 친정 엄마에게 확인해 보니, 머리의 구멍이 생긴 지 며칠 되었단다. 괴로운 마음을 애써 감췄다. 제 자식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파악하지도 못하면서 누구를 보살핀다는 건지. 아침마다 제 머리에만 신경 쓰는 무심한 내 탓이다. 모두 내 잘못이다. 객관적으로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카메라를 들었다. 사진에서 보니 하얀 구멍이 더욱 확연해졌다. 원형 탈모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딸의 머리숱은 태어날 때부터 압도적이었다. 그 작은 머리통에 한치의 틈도 허용하지 않고 머리카락이 빽빽하게 들어 있었다. 친정 엄마가 묶으면 하루 종일, 손끝이 야무지지 못한 내 손을 거치면 3시간, 긴 머리카락을 잡는 손이 어색한 남편의 손에선 1시간 정도만 유지되는 대단한 머리숱이었다.


딸아이의 머리는 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어른들은 나의 머리숱에 감탄했다. 내 머리 묶기의 전담이었던 엄마는 아침마다 자신의 짧은 손가락을 타박했다. 간신히 묶음 머리가 완성된 후. 연신 손을 주무르며 자신의 손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내 머리 묶기가 더 수월했을 거라고 했다. 엄마의 수고는 내가 중학생 되며 사라졌다. 귀밑 3cm의 단발머리 규정 때문이었다.


빽빽하던 나의 머리숱은 그 무렵부터 흩어지기 시작했다. 시험을 앞두고, 친구들과의 풀리지 않는 관계들 속에 나는 나의 머리카락을 한두 개씩 뽑기 시작했다. 꽤 높은 절반의 확률이었다. 반 곱슬었던 내가 곱슬거리는 돼지털을 뽑는 것은. 머리카락을 뽑을 때의 통증보다 만족할 만한 돼지털을 낚아챌때 쾌감이 좋았다. 그렇게 내 책상 밑에는 돼지털 잔해들이 그득했다. 그것들을 모아 싸리 빗자루를 만들었어도 꽤 괜찮았을 것이다. 


머리카락을 뽑는 수고는 의대생이 되어서까지 계속되었다. 괴상한 취미는 많아진 학업량에 맞춰 더해질 뿐이었다. 언젠가부터 머리카락을 뽑아낼 때 그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건 쾌감뿐이었다. 대단했던 머리숱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수년에 걸쳐 시나브로 진행되었다. 손이 자주 닿았던 정수리 앞쪽이 휑해지기 시작하며 확실해졌다. 조명을 비추면 두피가 훤히 보이는 속알머리 없는 사람이 되었다. 탈모 센터를 방문해 두피 상태 진단과 비용을 상담을 받았다. 넉넉하지 않은 의대생 신분으로 내가 그 돈을 지불할리 만무했다. 그곳의 방문 목적은 그들이 홍보하던 무료로 두피 상태 진단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니터 화면에는 맨질해진 머리 바닥이 보였다. 그 많던 머리카락들은 어디로 갔을까.


무딘 감각의 소유자였던 나는 본과 3학년 정신과 교과서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탈모의 원인을. 나는 발모광이었다. 발모광은 강박장애의 일종이다. 머리카락을 뽑으려는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머리카락을 뽑기 전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뽑고 나면 만족감이나 긴장 완화를 경험한다. 잡아 뽑느라 약해진 두피는 더 이상 머리카락이 자라지 못하고 탈모가 진행되기도 한다. 정신과 교과서에서 이 부분을 읽고 또 읽었다. 그 단락을 반복해서 읽으며 나는 내 손을 머리카락 위에서 떼어 놓을 수 있었다. 그것을 읽기 직전까지도 내 손은 머리 위에 있었다.


나의 탈모의 원인은 발모광때문이었지만, 발모의 근본적 원인은 스트레스였다.


중고등학교 6년 의대생 6년. 공부는 언제나 버거웠다. 뛰어난 머리를 타고나지 못해, 내게 가해진 압력을 빼내려고 스스로 머리에 구멍을 만들었다. 오랜 기간 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책상을 벗어나지 못해 찾아낸 단 하나의 탈출구였다. 발모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나쁜 습관이 아닌 병적인 행동. 그로 인해 훤해진 정수리. 이제 발모는 그만해야 했다.


발모를 관두기 위해 머리카락에 손이 가지 않도록 했다. 두 손을 놀게 하지 않았다. 공부할 때는 머리가 아니라 손이 기억하게 하기 위해 쓰고 또 썼다. 쉴 때는 그림을 그렸다. TV를 볼 때에는 뜨개질을 했다. 멍하게 있으면 나의 손은 내 머리 틈을 헤집고 곱슬머리를 찾아댈 것이므로 손을 쉬게 할 수 없었다. 공부할 때나 쉴 때나 쉬지 못했던 손은 더욱 거칠어지고 험한 행색을 하게 되었다. 거칠어진 손 덕분에 팽팽했던 삶은 풀어지기 시작했다. 삶의 긴장도가 감소하며 머리카락을 잡아 뽑는 행동이 점차 사라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긴장되는 순간에는 머리카락에 손이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최근에는 글쓰기가 추가되었다. 양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글을 쓰는 것도 긴장 가득한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행동이 되었다.



5살 딸의 머리 구멍으로 소아과와 피부과를 방문했다. 부쩍 줄어든 딸의 머리숱에 속이 쓰린다. 그 무엇이 딸의 머리카락을 앗아 간 것인지 궁금하다.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자가면역 질환 때문일 수도 있다고 한다.


머리 구멍의 연고를 발라주며 혼잣말을 했다. "OO아,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 있는 거야 ?" 쭉쭉 팔다리 기지개를 켜며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 스트레칭은 한적 있는데?" 거실 바닥에 누워 천진난만하게 쭉쭉이를 한다. 아이는 스트레스와 스트레칭이 비슷한 것임을 몸소 보여준다.


스트레스가 뭔지 모르고 자신의 머리카락을 스스로 뽑아내지 않는 아이에게 생긴 구멍. 아이의 구멍을 뒤늦게 발견한 것처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건지도 모른다. 모든 건 내 탓이다. 아이의 머리 구멍만큼 내 마음이 뻥 뚫린다. 약을 발라도 메워지지 않는 구멍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든다. 또다시 나의 손은 머리카락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발모벽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뽑아 딸에게 붙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발모 대신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을 찾아야 했다.


다가올 연휴에 병원에 출근하려던 계획을 바꿔 휴가를 신청했다. 아이의 구멍을 뒤늦게 알아차린 시간을 만회하고 싶었다. 구멍을 메우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의 발모벽을 없애는 하나의 일이 되기도 할 것이다. 아이와 함께라면 나의 두 손은 늘 바빴다. 아이와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고 술래잡기를 하며 나의 두 손은 쉬지를 못했다. 아이와 나의 스트레스. 그 압력을 뚫어주기 위한 일을 제대로 찾은 것 같다.


나에게 아이의 구멍을 메워 줄 수 있는 묘약 같은 건 없다. 다만 연휴 내내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어 행복해하는 아이의 미소가 아이와 나의 구멍을 메워주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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