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25년 지기 친구들이 있다. 동네 보습학원에서 만난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함께 어울려 다녔지만 목표는 각자 달랐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을 간 친구부터 곧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기도 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친구들이다. 그럼에도 친구였으므로 만나면 반가웠고, 25년이 넘도록 꽤 오랫동안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나만 빼고.
(출간 준비중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미세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하기 시작한건 미래의 직업이 정해진 순간부터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지리적 거리가 생겼음에도 그들과 어울리고자 노력했다. 오랫동안 학생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두 달에 한 번이면 만나게 되는 그 모임의 기를 쓰고 참석했다. 학창 시절의 추억과 성인이 된 이후의 이야기가 쌓여가며 모임의 주제는 풍성해졌다. 그 속에서 나는 다양한 말을 했다. 그저 내 생활이었다.
해부학기에 포르말린 용액이 처리된 시신의 코를 박고 시신을 해부하고 그것으로 인해 얼굴이 상한 것. 6년 내내 몸과 마음을 무겁게 하는 시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수많은 시간들. 결국엔 몸이 망가져 병을 얻게 된 것. 월세집에서 신혼을 시작한 것.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무직으로 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들. 85일간의 짧은 출산휴가를 쓰고 비 자발적으로 다시 출근했던 것.
모든 상황은 달랐지만 나에게 돌아오는 말은 하나였다.
그래도 너는 의사가 될 거잖아. 혹은 의사잖아.
내 이야기가 아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육아용품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너는 의사니까."
어린 딸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돌아올 말은 뻔할 것이다. "네 딸은 의사 딸이니까."
말문이 막히는 마법의 힘을 지닌 그 문장 앞에서 나는 점차 말이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만나면 넘쳐나는 소란함 속에 입을 열수 없었다. 잘 지내느냐는 말에 ‘그냥’이라며 말 끝을 흐렸다. 그 어떤 말을 해도 돌아올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부족한것 하나 없는 사람이었다. 취업에 대한 고민, 미래에 대한 불안은 없으며, 힘들지 않아야 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모두 그런 척할 수밖에 없었다. 힘들지 않은 척.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 귀와 눈은 열어둔 채 입은 닫으며 나는 학생 시절로 돌아가 왕따가 된 것 같았다.
모든 건 내가 의사이기 때문이다. 고독은 의사라는 직업의 품위 유지 비용이다.
의사가 아닌 순간.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는 순간 나의 고독은 사라질 것이다.
나는 의사가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는 수다쟁이가 된다. 모두가 의사인 곳. ‘그래도 너는 의사’라는 말을 들을 필요 없는 친구들 사이에서다. 의사들 사이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곳에서 나는 말할 수 있다.
고민과 미래에 대해. 언제까지 병원에 출근할 수 있을지, 앞으로 더 쌓아야 할 스펙은 없을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지. 직업과 가정을 가진 이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25년 지기 친구들 앞에서는 함부로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이들 앞에서는 술술 나온다. 여기서는 괜찮은 척할 필요가 없다.
내게 남은 건 의사 친구들뿐이다.
우리는 평생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서로의 삶을 살아볼 기회가 없으니깐 당연한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그립다. 아무것도 아닌 시절. 서로를 응원하며 그 어떤 일상을 이야기해도 들어주었던 그때. 유년 시절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다정한 친구들과 다시 일상을 이야기하고 싶다.
새의 지저귐을 듣고 누구는 새가 운다고 하고 또 다른 이는 노래한다고 한다. 어쩌면 내가 떠들어 대던 모든 말이 그들에게 듣기 싫은 울음소리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잠시 친구들과 거리 두기를 하는 동안 나는 새의 노래를 배우고 있다. 나의 지저귐이 그저 울음소리로만 들리지 않길 바라며 내 이야기를 글로 풀어본다.
의사, 환자, 아니 그저 한 사람으로서 하는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나는 그들 앞에서 내 입을 열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아무도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만 늘어내고 있다면, 당분간 입은 닫아야 하겠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게 되기를 바라며 쓰고 또 고쳐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