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려고 의사 한 거지?
꿈은 이루어졌다. 꿈이었던 의사라는 직업은 이제 더 이상 내게 꿈이 아니다. 나의 꿈은 밥벌이가 되었다. 꿈이 밥벌이와 하나가 된 순간, 의사라는 직업은 나의 생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돈 많이 벌려고 의사한것 아니냐고. 애초에 돈 때문에 이 직업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꿈을 이룬 지금은 돈 때문에 그만두지 못한다.
꿈을 더듬어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그리던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삶은 어디로 갔는지.
오로지 타인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은 봉사일 것이다. 의과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남자 친구 만들기도 아닌 봉사였다.
의대에 입학해서 봉사 동아리부터 찾았다. 봉사라는 이름을 내건 동아리는 '로타리 클럽'이 유일했다. 그 동아리에 들어가겠다고 하자 선배들은 그 동아리는 '로타리 클럽'이 아닌 '술타리' 클럽이라고 했다. 봉사하러 가는 날이면 술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단단히 각오하라는 눈치였다. 술에 져본 적 없는 나였지만, 선배들과의 술 대결에서 이길 정도의 호기로운 신입생은 아니었다. 동아리 입학을 포기했다. 때맞춰 버거운 학업들이 이어지자 자연스럽게 봉사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의도치 않게 그렇게 원하던 봉사보다 남자 친구가 먼저 만들어졌다. 어쩌면 진심으로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봉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여유가 있는 방학 중에 봉사를 계획했다. 의대생, 한의대생, 간호대생으로 구성된 봉사 활동에 참가할 기회가 있었다. 의료 취약지로 갔던 그곳에서 간호대생은 혈압과 당뇨를 체크하고 한의대생은 뜸을 뜨고 침을 놨다. 의대생인 나는 밥을 날랐다. 한의대생은 가장 인기가 좋았다. 그들을 만나려고 어르신들은 오랜 시간 기다리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을 연신해댔다. 학생 신분인데도 할 줄 아는 게 많은 한의대생이 부러웠다. 나는 배운 것은 있어도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나도 의사 면허증만 받으면, 봉사하러 다니겠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의사가 되었지만, 봉사는 쉽지 않았다.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수련 병원에 봉사하느라 다른 곳에 봉사할 여유가 없었다. 내게도 봉사할 기회가 생겼다. 인턴을 마치고 전공의 선발에 탈락했다. 여유 있는 생활 속에 1년 동안 봉사 활동에 열심이었다.
주중엔 검진 의사로 생계를 이어가며, 주말마다 청량리 쪽방 촌을 다니며 독거노인의 집을 방문했다. 자원한 택시기사 한분과 한 팀이 되어 쪽방촌 길목들을 누비고 다녔다. 쪽방 방문 진료이라는 이름의 봉사 활동. 그곳에서 의사의 권한은 쪽방의 크기만큼이었다. 의사 가운을 입은 내가 한 일은 어르신들의 주름 가득한 손을 잡아 드리고, 쌓아두고 먹지 않는 약, 중복된 약을 정리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주말마다 방문해도 약들은 쌓이고 또 쌓였다.
지방으로 의료 봉사를 가기도 했다. 환자를 진찰하고 간단한 약들을 처방했다. 콧물, 기침을 대비해 비상약으로 약을 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에겐 이미 믿고 신뢰할만한 각자의 주치의가 있었다. 그곳은 시내로 나가는 교통이 불편하지만,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지 않았다. 의료 봉사가 간절히 필요한 경우는 아니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인도로 의료 봉사를 갔다. 비행기로 하루 꼬박 걸려 달려간 그곳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그들을 진찰했다. 병원 한번 가보지 않은 이들이 수두룩했다. 처음 발견된 높은 혈압으로 혈압약을 처방한 경우도 있었다. 평생 혈압약을 먹어야 하는 그에게 가지고 있는 약을 전부 다 내어 주고 싶었지만, 남겨진 봉사 일정을 고려해 최대 한 달치밖에 줄 수가 없었다. 그곳은 의료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지만, 이어질 수 없는 진료실이었다.
1년간 봉사하며 삶은 충만해졌지만, 동시에 공허함도 들었다. 건강이란 한순간에 결정되는 일이 아닌데, 그들에게 단 하루, 며칠의 진료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었다. 봉사라는 이름으로 처방한 알약이 그저 나를 위한 뿌듯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봉사는 의사라는 직업을 돈 때문에 택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내 본래의 꿈을 잃지 않는 일이었다.
여전히 봉사를 가슴에 품고 다니지만, 현재 내 삶은 타인을 위해 봉사할 여유가 없다. 일주일 중 하루 쉬는 일요일엔 아이를 위해 봉사하기에 급급하다. 하루가 다르게 연로해가시는 부모님들과도 시간을 보내야 한다.
현실에 묶여 당장은 봉사 현장에 뛰어가지 못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타인을 위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의학 정보가 넘치는 곳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잘 몰라서 병을 키우는 사람들도 많다.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몰라서 오는 그들은 애초에 의사를 찾지 않는다. 이들의 건강에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그동안 배운 지식을 어떻게 잘 전달할지 고민했다. 의료 취약지에서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위해 자료를 찾고 이해하기 쉬운 말을 고르고 적절한 그림을 첨부한다. 건강한 삶에 대해 지속 가능한 조언을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한다. 블로그 <내과 의사의 건강한 잔소리>와 유튜브는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곳에서 공감 표시와 의사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댓글을 받을 때, 봉사활동에서 알약을 처방했을 때 받았던 뿌듯함을 느낀다. 건강에 대한 글을 발행하며 나는 나의 오랜 꿈을 실현한다. 누군가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삶. 남을 위하여 힘을 바쳐 애쓰는 것. 그 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