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평지에 가까운 비탈길이었다. 지팡이를 짚고 선 중년의 여성은 한 발짝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내려가려는 것인지, 그 자리에 머물고 싶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얼핏 보니 오른쪽 다리가 불편해 보였다. 아마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한 것이리라. 나의 관심이 불편할까 봐 시선을 오래 둘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르는 척 두었다가 그대로 밤을 새워거나, 크게 다칠 것이 뻔했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디가 불편한지 물었다. 그는 50미터 앞의 전동차를 가리켰다.
- 저기까지만 가면 되는데, 경사 때문에 발이 떼어지지 않네요. 나는 그의 왼팔을 잡았다.
- 제 팔을 잡고 발을 떼보세요.
- 도와주니깐 이제야 땅에서 발이 떼어지네요.
위험한 길에 혼자 나오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니, 그는 평상시엔 활동 보조 도우미가 도와주는데 오늘은 휴일이기 때문에 혼자 나왔다고 했다. 그의 외출 목적은 운동이었다. 불편한 한쪽 다리를 위한 재활. 만날 쉬운 길만 가면 발전이 없어서, 오늘은 조금 힘든 길을 선택한 것뿐이라고.
한두 마디 나누는 사이, 어느새 비탈길은 끝나고 완연한 평지가 나왔다. 목표 지점이 20미터 안으로 좁혀졌다. 그는 여기부터는 혼자의 힘으로 가겠다고 했다. 운동하러 나왔는데 이렇게 도움만 받고 끝날 수는 없겠다며 그 누구보다 무거운 발걸음을 거스르고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약간은 가쁜 숨을 쉬며.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이 세상에는 달리는 사람, 달리지 않는 사람 그리고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달리는 사람은 20분 이상 달려도 무리가 되지 않는, 즉 달리기가 운동이 되는 사람이다.
달리지 않는 사람은 달릴 수 있는데 달리지 않는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달릴 수 없는 사람은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비탈길 위의 중년 여성은 분명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잘 달리는 사람이었다가 당분간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얼마전 달리기 앱을 이용하여 30분 동안 쉬지 않고 달리기에 성공했었다. 하지만 달리기가 완성되어 갈수록 나는 건강을 잃고 있었다.
달리기와 걷기의 차이는 땅바닥에서 두 발이 떨어지는가의 유무로 달리기는 땅에서 두 발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잠시라도 공중 부양했다 떨어지는 달리기는 그만큼의 충격을 몸에 전달한다. 복강 내의 장기, 무릎, 발바닥으로. 그것은 고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우리 몸속의 장기들은 문제가 생길 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달릴 때마다 그들은 존재를 확인시켜 주었다. 배가 아프고, 무릎이 쑤시며, 발바닥은 불이 났다. 달릴 때뿐만이 아니었다. 달리기 속도를 올려 달린 날마다 항상 방광염이 뒤따라 잦은 항생제 복용을 하고 있었다. 달리기는 고통이라고 했지만, 고통 뒤에 따르는 질병은 그냥 넘길 애교 수준이 아니었다. 이건 나만 겪는 유난한 일이 아니다. 러너의 복통, 러너의 무릎, 러너의 발바닥. 러너들이 가지는 질병 카테고리를 따로 분류하기도 한다.
달렸을 때의 통증은 강도를 낮추면 좋아지곤 했다. 달릴 수 있지만, 달리기를 포기하고 나는 달리기 대신 빠르게 걷기로 했다. 달리기를 하지 않았을 때에도, 운동을 단념하지 않았다. 달리는 대신 빠르게 걷고, 자전거를 타고, 수영을 하고, 집에서는 홈트레이닝을 했다. 달리기만 하면 아파오는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나의 목표는 건강한 삶이지 달리는 삶이 아니다.
운동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속도, 걸음수, 거리로 운동을 평가한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몇 보를 걸었으며 얼만큼 이동했는가를 확인한다. 비탈길 위의 중년 여성은 걷는것 보다 느렸다. 그의 운동은 단 100 보 정도의 걸음이었으며, 겨우 50 미터 정도만을 이동했을 뿐이다. 누군가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전혀 운동을 하지 않은 셈이 된다. 하지만 비탈길 위의 여성은 자신의 발걸음을 운동이라고 했다. 아마 그를 옆에서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가 운동하고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부축했던, 그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나는 그의 발걸음은 운동이었다고 확신한다. 대화를 했을때 바로 옆에 있는 사람만이 눈치 챌 수 있는 거친 숨소리가 그 증거였다. 그의 심장 역시 빠르게 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평상시에는 인식하지 못했던 심장, 폐의 움직임을 우리는 운동 할때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비탈길위의 중년의 여성처럼 숨이 차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일. 이것이 바로 운동일 것이다.
심장이 뛰는 것을 어떻게 확인하는가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과의사는 이를 확인 하는 방법으로 스마트 시계를 활용한다. 평상시 나의 심박수는 65 정도였다. 오늘 새벽 빠른 걸음으로 걷는 산책길에 내 심박수는 금새 120으로 뛰었다. 안경에는 김이 서렸다. 차가웠던 손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욕심내어 달리면 내 심장은 훌쩍 150으로 향하겠지만, 무리해서 달리지는 않는다. 추위를 막고자 입었던 두꺼웠던 외투는 부담스러워 벗고 싶어졌다. 등줄기에는 땀이 맺힌다. 숨이 차고 심장이 뛰는 것을 확인했다. 심장이 뛰기 시작했으니 오늘의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서 술래잡기를 했다. 5살 자기 꼬마 녀석을 피해 다니며 단 5분만에 심박수는 130이 되었다. 순식간에 턱끝까지 숨이 차올랐다. 까르륵 거리는 아이 웃음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를 들으며 심장은 힘차게 뛴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술래잡기는 고통 없는 행복한 뜀박질, 이것이 나의 주말 운동이었다.
운동하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운동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건강이란 눈에 보이지는 것이 아니지만, 운동 할때서야 나는 건강을 확인한다. 내 심장이 잘 뛰고 있는지, 들숨 날숨에는 문제가 없는지 살핀다.
모두 다 달릴 필요는 없다. 탈길 위의 중년의 여성처럼 내 심장이 뛰는 일은 무엇이든 운동이 된다.
운동을 방해하는 단 하나는 나 자신의 발걸음이다. 오늘도 무거운 발걸음을 이기고 무엇이든 내 심장이 뛰는 일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