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명대로 살다 간 환자는 없다

환자가 병원에 오지 않았다 2

by 닥터 키드니

병원 나이 94세인 김 할머니는 우리 병원에서 최고령이다.


(출간 준비중입니다.)


4년 전, 90세에 혈액 투석을 시작한 김 할머니는 늘 가쁜 숨을 쉬며, 딸에게 이끌려 병원에 왔다. 누구나 들고 나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지만, 할머니에게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었다. 푹 패인 얼굴, 앙상한 팔다리. 할머니에게는 축 처진 기저귀만이 유일한 굴곡이었다. 할머니는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는데, 그 의지는 보호자인 딸에 의해 더 단단해졌다. 평생을 어머니만 보고 살아온 딸 영숙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였다. 결혼도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삶의 목표이자, 일상의 전부였다. 딸이 쏟은 정성만큼 할머니의 수명은 늘어갔다.


할머니의 생명 연장을 방해한 것은 약해진 호흡 근육이었다. 콩팥 기능은 투석기계가, 손과 발은 딸이 대신할 수 있어도. 나약해진 호흡 근육을 대체할 기계는 없다. 호흡근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우리 몸에는 이산화탄소가 쌓인다. 체내 축적된 이산화탄소로 의식을 잃은 할머니는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후 몸에 쌓인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목적으로 양압기를 사용하게 되었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양압 마스크를 써도 얼굴에 살 한 점 없는 할머니에게는 한없이 헐거웠다. 양압기가 잘 적용되지 않으면 이산화탄소는 산적해 갔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정신을 잃었다. 할머니의 정신줄을 놓지 못하게 한 건 보호자인 딸이었다. 반쯤 의사가 된 딸은 위기의 순간마다 병원을 방문하여 적절한 치료를 가능하게 했다.


새해가 되고, 연세가 한해 추가된 직후였다. 그날따라 할머니는 유난히 혼미해 보였다. 최근 몇 주간, 할머니는 걸을 힘조차 없어 휠체어에 실려 병원에 끌려오고 있었다. 무의미하게 보이는 눈, 반쯤 풀린 동공, 축 처져 있는 팔다리. 할머니는 딸의 도움으로 그나마 가늘게 붙잡고 있던 정신줄을 자꾸만 놓으려 했다. 어느 때보다 기력은 떨어져 있었고, 그동안 보였던 삶에 대한 의지는 버린 것 같았다. 할머니의 모습을 본 나는 예감했다. ‘마지막이다.’ 모든 걸 놓으려는 김 할머니를 보며 보호자인 딸은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급하게 S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 할머니가 병원으로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김 할머니가 다시 이 위기를 넘겨 병원으로 돌아오지는 않을지. 또 한 번 기적을 보여주기를 바라며 할머니를 응원했다.


한 달 반 만에 할머니가 돌아왔다.


모든 것들이 이전보다 좋지 않았다. 양압기 사용으로 인해 코는 헐어 뼈의 일부가 괴사 되어 드러나있었다. 옷을 입지 않으면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몸의 근육은 사라졌다. 입원 기간 동안 쉼 없이 들어간 수액으로 발등과 손등은 퉁퉁 부어 있었다. 심장은 예전보다 더 약해져 맥박과 혈압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완전히 치유돼서 가 아니라 더 이상 해줄 게 없어서 이루어진 퇴원이었다. 퇴원을 하고 이루어진 첫 만남에서 모두가 알았다. 더 이상 다음을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그날 밤. 할머니는 응급실로 실려갔고, 그 길로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 삶의 목표, 생의 전부였던 엄마를 잃은 딸. 그녀는 늘 엄마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엄마가 없는 삶에 그녀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할머니의 장래를 마치고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그동안 그녀가 보인 김 할머니에 대한 정성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되는 행동이었다.


평균 수명보다 10년을 더 살다 94세에 떠난 김 할머니. 누구는 그 정도면 오래 사셨다고 말한다. 하지만 평생 김 할머니만 보고 살았던 딸에게 94세 엄마의 죽음은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제 명대로 살다가는 환자는 없다. 아무리 의학적으로 이해되는 죽음이라도 가족, 연인, 친구와 같이 개인적으로 얽히면 그 객관성은 잔혹하기만 하다. 누군가에게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헤어짐이고, 이해할 수 없는 잔인한 이별이다.


이 세상에 이별하지 않는 관계란 없다. 단지 저마다 이별이 오는 시간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누구도 영원히 이별을 피할 방법은 없다.


최근에 그녀가 정신과 상담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할머니의 94년 이승을 위해 평생 50년을 받쳤던 딸. 이 세상에 그녀 혼자 남은 게 아니다. 엄마를 잊지 않았다면, 그 이별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 묻은 엄마의 삶을 연장시키는 것은 자신이 이생을 사는 것이다. 엄마를 품에 안고, 엄마가 해보지 못한 것들을 대신해보는 삶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멀리서 그녀를 조용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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