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가 부지런한 이유

쉬어야 할 순간을 대비하기

by 닥터 키드니

아픈 것이 두렵다. 아파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것은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어떨 때는 한 달에 두 번씩 아랫배가 아프다.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예고도 없다. 명색이 내과 의사로 ‘배 아프면 나를 찾아와요.’라고 했던 말이 무색할 정도로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통증은 꽤 심각한 것이어서 작년에는 석 달 간 격으로 응급실을 두 번이나 방문했다. 소변, 혈액 검사에 CT까지 시행한 뒤 응급실 의사가 내린 결론은 급성 방광염이었다. 하지만 너무 자주 찾아오는 통증은 그 가벼운 진단에 의심을 가질 법했다.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봐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 나섰다. 비뇨기과 의사는 초음파를 보고, 방광경을 제안했다.


“아 아 아!”


양손을 마주 잡고 좁디좁은 길로 들어간 방광경으로 본 나의 방광은 허무하리만치 깨끗했다. 비뇨 요로계 쪽으로는 어떤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한 달에 한 번씩 아프다는 걸로 봐서는 산부인과 문제일 수도 있다는 비뇨기과 의사의 제안에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여러 검사를 진행한 산부인과 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부인과 쪽 문제는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 중 나의 통증에 대해 속시원히 해답을 제시해 준 사람은 없었다. 그중엔 신장 내과 의사인 나를 포함한다.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나의 통증에 심각한 이유는 없다. 하룻밤 푹 쉬고 나면 그 다음날에 통증은 거짓말처럼 완벽하게 사라졌다는 점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마음의 위안을 찾았지만, 통증은 잊지도 않고 꼬박꼬박 나를 찾아왔다. 통증이 시작될 때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한 번 시작하면 하루 종일 지속되는 통증으로 인해 내가 세웠던 계획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통증이 시작될 때면 마약성 진통제를 삼킨다. 통증과 함께 피로감이 몰려왔다. 환자를 보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운동조차 아프지 않고 건강할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아프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멈춰야 했다. 아프다는 것도 힘들지만, 통증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두려웠다.


이제는 통증이 찾아올때면 나는 스스로를 달래기 시작한다. 중한 질병은 아니니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생각한다. 핫팩을 배에 대고 몸을 웅크린다. 잠깐이라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한다.


대신 평상시에 조금 더 부지런해졌다. 내가 두려워했던 아프면 모든 것을 멈춰야 하는 상황을 대비한다. 아프지 않을때 내가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다. 현재를 뒤로 미루지 않는다. 무어라도 할 수 있는 지금에 집중한다. 현재의 삶에 열중하다 보니, 얻게 되는 부산물들이 많다. 매일 달려낸 거리들, 부지런히 읽어간 책들, 뼈를 깎아 쓴 글들,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들. 오늘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 습관 덕분에 쌓인 것들이 상당하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해낸 것들이라니, 스스로 놀라기도 여러 번이다. 쉬어야 하는 순간이 언제라도 올거라 인지하고 사는 사람의 삶은 이렇게 충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끔씩 한 달에 한 번이면 찾아오던 통증이 방문을 깜빡할 때면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한 달 동안 통증 없이 살아낸 사실에 감사하고, 내가 해낸 일들에 뿌듯함을 느낀다. 아프면 모든 걸 멈춰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삶을 몇 갑절 풍요롭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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