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신과 의사의 일기(1)
어디를 가든 의사라고 한다면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연봉이 어떻게 돼요?’이다. 무조건 의사라고 한다면 돈을 많이 벌 것 같은 구시대적인 사고가 아직까지 이어져오고 있어서 그런 듯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적게 벌거나 못 번다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대한민국 평균 연봉에 비하면 많은 금액을 받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자라고 할만큼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특히 많이들 오해하는 것이 의사 면허증을 따고 난 직후 인턴이나 전공의 생활을 할 때에도 돈을 많이 버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이 때는 생각보다 적게 버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내가 전공의를 할 때 대기업 초봉보다 더 적게 받으면서 5년간 일했었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는 조금 달라지기는 한다. 인턴, 레지던트 때보다는 그래도 많이 벌게 되는데 누군가 나에게 직접적으로 연봉이 얼마나 되냐고 물어본다면 ‘IT 업계에서 잘 받는 분들보다 조금 더 받아요’라고 대답한다. 나도 그들의 연봉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뉴스 기사나, 인터넷 등에 돌아다니는 연봉을 보면 실제로 그들과 비교하면 되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연봉이 그렇게 확 많이 올랐다고 내 행복도도 그만큼 올랐을까? 나는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대부분의 동기들도 이것에 공감을 하는 바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는 지루하고 교과서적인 얘기를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행복은 돈과 비례하지 않지만 어떤 행복들은 돈이 있어야만 이룰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이 ‘행복=돈’이라는 잘못된 믿음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2021년에 미국의 여론 조사 업체 퓨리서치센터가 17개국 성인에게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라는 질문을 했는데 유일하게 한국만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하지만 반대로 여러 연구들에 따르면 실제로 인간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에 돈은 굉장히 후순위에 있다. 또 돈이 줄 수 있는 행복의 정도는 어느 정도 이상이 되면 줄어든다는 여러 연구들이 있는데 이러한 결과들과는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나치게 돈의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돈에 대한 우상화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돈이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얻기 위해서라면 삶에 중요한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없으면 마치 지옥에나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이 것이 우상숭배와 다를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맹목적인 믿음은 대부분 한가지 이유 때문에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이 바로 무지함이다.
10대와 20대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를 많이 하는 집단에서 성장을 해온 사람으로서 그 많은 공부를 하는 와중에 나에게 돈에 대해 가르쳐준 곳은 단 곳도 없었다. 물론 학교에서 간단한 경제 상식을 배우기는 하지만 실제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굴러가지는지에 대해서는 스스로 알아가야만 했다. 그래도 공부를 꽤 해왔다고 자부한 나도 이 정도인데 대부분의 경우도 나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지하면 무서워하게 된다. 돈에 대해서 무지하면 돈이 가지는 힘을 더 무서워하게 되고 맹목적으로 따르게 된다. 무조건 많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어떤 일을 해서라도 가지려고 한다.
우리가 돈을 우상화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는 돈에 대해서 금기시하고 안 좋게 보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신과적으로 봐도 억압을 하면 항상 더 신봉하고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의 도파민을 자극 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효과가 더 드라마틱한데 술과 성관계가 그 대표적인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따지고 버는 것은 마치 잘못된 것이라고 교육을 받지만 성인이 되자마자 자본주의의 세계에 내던져져서 혹독한 방식으로 돈의 세계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두려움이 되고 여유를 뺏고 정신적으로도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며 다음 세대에까지 이어지게 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을 우상화 할 필요는 없다. 돈보다 중요한 인생의 가치들은 분명히 존재하고 그런 것들을 찾아나가는 것이 행복에 다가가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가 높아지는 세상이 될수록 돈에 대한 건강한 생각과 신념 그리고 적절한 지식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