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후회를 줄이는 법

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28)

by 정신과 의사 Dr MCT

‘10년 동안 일하다 번아웃이 왔는지 매일매일이 힘들어요. 우울하고 다른 직원들이랑 대화하기도 힘들어요. 다들 나에 대해서 안 좋게 생각하는 것 같고, 나를 비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일어나기가 싫고 출근하기도 싫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요.’


45세 남자 회사원 A 씨가 우울감을 주소로 병원에 내원했다. 추거적인 병력을 듣고 중증의 우울증으로 진단을 내렸다. 상담과 함께 일주일치 약물을 처방하고 다음 주에 다시 보기로 했다.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어요. 이렇게 회사를 다니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당장 그만두고 싶어요’


A 씨는 일주일 후에도 증상 호전이 더뎌 이번에는 아내도 함께 찾아왔다. A 씨가 당장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을 간신히 말리고 병원에 데리고 온 것이다. A 씨의 아내는 답답한 마음에 나에게 물었다.


‘휴직을 해도 되고 병가를 내도 되는데 남편은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제가 옆에서 아무리 얘기해도 듣지를 않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무리하게 한 행동, 실수를 하고 부끄러움에 오히려 화를 낸 행동, 부모님에게 화가 나서 속에도 없는 말을 한 경우처럼 모든 사람은 살면서 후회되는 행동을 한다. 그런 행동을 하는 찰나의 순간에는 우리 뇌가 그것이 최선이라고 결정한다. 하지만 그런 결정은 대부분 지나고서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하며 후회하게 만든다. A 씨도 힘들게 취직하여 10년 동안 일한 대기업에서 병가도 쓸 수 있고, 휴직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당장 퇴사하기를 원하는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려고 했다. 우리는 왜 후회할 것을 아는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스스로 납득하기 힘든 결정은 감정적일 때 일어난다. 그리고 무의식 속에서 일어난다. 평소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도 감정적이 되면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그래서 스포츠 경기에서 나보다 더 잘하는 실력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도발을 해서 감정적으로 변하게끔 한다. 이성적 판단을 못 내리는 상대는 훨씬 더 이기기 쉽기 때문이다.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결정은 관찰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고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스스로 이성적으로 판단을 내렸다고 착각하게끔 한다. 이러한 과정은 뇌과학적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평소의 이성적인 판단은 전두엽에서 담당한다. 이 뇌는 계획을 하고, 득실을 따지고, 여러 변수를 고려하는 뇌이다. 감정은 주로 편도체라는 뇌에서 담당한다. 신기한 점은 전두엽이 활성화될수록 편도체는 덜 활성화되고, 편도체가 더 활성화되면 전두엽이 덜 활성화된다는 점이다. 마치 시소와 같다. 그래서 우리는 감정적일 때 계획을 짜고, 득실을 따지고, 여러 변수를 고려하기 어려워진다. 편도체는 한번 활성화되면 다시 비활성화를 시키기 쉽지 않다.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만성적인 질환의 상태가 되면 더 오래 걸린다. 그래서 감정적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면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울증이 심한 상태에서는 IQ 점수가 평균적으로 10점이나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A씨도 극심한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절대로 회복할 수 없고, 회사를 그만둬야만 회복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발생했다. 그렇다고 영구적인 손상을 입어서 바보가 된 것은 아니다. 잠시 편도체의 기능에 전두엽의 기능이 가려진 것뿐이다. A 씨에게 필요한 것은 전두엽이 다시 통제를 되찾을 시간임을 알기 때문에 나는 A 씨를 설득하였다.


'지금 A 씨는 우울과 불안으로 평소와 같은 적절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당장 그만두고 싶다는 A 씨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만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지금 당장 그만두는 것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아니니 우울과 불안이 지금보다 호전되면 그때 다시 결정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그때도 지금과 같은 의견이라면 아내와 상의해서 그만두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충분한 설명과 상담 후 약간의 항불안제 및 항우울제의 도움으로 그가 2주 뒤 다시 내원했을 때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선생님 그때는 정말 제가 어떻게 잘못되는 것 같아서 극단적이었어요. 그때 저를 말려줘서 감사합니다. 그때는 아내의 말도 잘 들리지가 않더라고요. 약을 먹고 조금 진정해 보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됐어요’



우리는 감정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감정은 삶을 더 다채롭게 만들기도 하고 꼭 필요한 위험 경고를 보내주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다른 중요한 활동에 어려움을 끼친다. 자기 전 후회되는 결정이 자꾸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감정적일 때를 조심하자. 감정적인 순간이 오면 자리를 벗어나거나, 잠깐 다른 일을 하거나, 잠깐 눈을 붙여서 숨을 돌리자. 몇 초, 몇 분의 시간이 며칠, 몇 년의 후회를 방지할 수 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사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