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29)
30대 중반의 남성 A씨는 알콜 중독으로 입원했다. 그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들과 많이 어울리지 못한 소심한 성격이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학업과 졸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하고 싶은 일도 없었기 때문에 졸업 후 집에만 있었다. 간간히 부모의 권유에 못 이겨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날이 늘어났다. 자신의 무기력함을 혐오하면서도 뭔가를 시도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매일 소주를 세병씩 마시며 자신을 이렇게 만든 부모와 세상을 원망했다. A씨의 부모들은 그가 언젠가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10년 동안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알콜 중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부모에 의해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모든 종류의 중독은 한번 빠지면 극복하기가 정말 힘들다. 정신적으로 건강했던 사람이 명확한 동기를 가져야 중독에서 벗어날까 말까 한다. 우울증, 불안증, 불면증 등을 동반했다면 중독은 벗어나기 더욱 어렵다. 특히 10년 혹은 더 길게 20년 이상의 병력이 있다면 그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
중독이란 특정 물질이나 활동에 대한 신체적 혹은 정신적인 의존을 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전반적으로 중독은 몇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중독에 빠진 사람은 자기 조절 능력에 손상이 있고, 사회적인 활동에 손상이 있으며, 자신에게 해가 되도록 위험하게 물질 사용을 하고 금단이나 내성을 형성한다. 중독은 단순히 의지의 문제는 아니다. WHO에서 발표한 중독에 관한 자료에서는 ‘중독은 만성적이다. 중독은 환자의 뇌에 영향을 끼쳐 자신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게끔 만든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런 뇌 변화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어왔고 중독이 도파민과 뇌의 복측피개영역(Ventral tegmental area), 그리고 보상체계의 교란에 의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알콜 중독을 비롯한 중독의 치료가 한층 발전하였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알콜 중독자는 150만명을 넘는다. 그렇다면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음주를 시작하게 됐을까?
A씨의 아버지 B씨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성실한 기독교인인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늘 친절했다. 사업적으로도 꽤 큰 성공을 이뤄서 경제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내와도 관계가 좋아보였으며 가족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내면적으로 결핍이 많았다. B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의 어머니는 세 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고 B씨에게 적절한 애정을 주지 못했다. B씨는 애정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악착같이 살았으며 결국에는 사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의 성공도 그의 공허감을 채울 수는 없었다. 결혼 후 막내로 아들을 얻었을 때 비로소 그는 자신의 완성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성된 완벽한 가족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아들이 완벽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A씨가 어릴 때부터 어떠한 나쁜 일도 없도록 지켰다. 아들이 학교에서 싸우고 오면 학교까지 찾아가서 아이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아이의 성적이 안 좋으면 학원 선생님과 긴 시간 상담했다. A씨는 성장할수록 사사건건 간섭하는 아버지와 마찰이 생겼으나 아버지를 이길수는 없었다. 성인이 되도록 그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결국 그는 위축되어 집에서만 생활하였고 술이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으며 그 크기는 당사자 이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부모가 모든 것을 통제해서는 안된다. 아이의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는 일은 부모의 나르시스트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런 모습은 특히 아버지에서 많이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그들 자신의 어린 시절 결핍에서 기인한다. 아이를 공감적으로 대하는 태도는 매우 좋은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공감한다는 착각 속에 아이의 결정뿐만 아니라 감정까지도 통제하려는 부모들이 있다. 그들은 주위의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자신의 자아상에 흠집이 생기며 이것을 견디지 못한다. 통제당하는 아이는 아주 어린 시절에는 잘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진다. 결국 적절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한채 중독, 난잡한 성관계, 자해 등 스스로를 해치는 방식에 빠지게 된다. 그런 행동을 통해 빼앗긴 통제감을 되찾으려하기 때문이다.
A씨는 입원한지 3일 뒤 퇴원했다. 나로서는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다. A씨와 아버지 B씨 사이에는 불안정한 병적 융합이 형성돼있었고 둘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의 불안감을 이겨낼 정도로 자아가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연히 환자의 증상은 좋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더 퇴행되었다. 음주를 더 하게 되었고 결국 병원에 오는 일도 중단하였다. A씨는 살아있고 사지는 멀쩡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유아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사회적으로는 불구가 되었다.
아주 어린 아기에게는 슈퍼맨 같은 보호자가 필요하다. 부모는 모든 것을 다 해주고 아기에게 세상 그 자체가 되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할수록 적절한 좌절이 필요하며 부모는 울타리를 점점 낮춰야한다. 그것을 잘 하지 못하는 부모는 자신의 마음에 채우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인지해야한다. 아이는 부모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