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의 상실이 아니라 확장이다
'엄마'에서 벗어나 '나'를 찾아라?
요즘 엄마들에게 큰 공감을 얻고 있는 말이다.
한 아이를 길러내는 부모로서의 사명이 숭고하지만,
여성 경력을 발목 잡는 것도 사실이고,
지나치게 엄마 노릇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도 건강하지는 않으니까
그러한 억압들로부터 자유롭길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를 찾는다는 것, 나답게 산다는 것
과연 무슨 뜻일까?
"인간은 관계 맺는 존재다.
내 안에는 온전히 '나'라는 정체성 밖에 없는 것인가?
오히려 '나'와 관계 맺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내 속에 들어와서 '나'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장원섭, 장지현, 김민영, 2012)
의미 있는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그래서 독일의 교육학자 몰렌하우어는 '정체성은 허구'라고까지 했다. 미래를 향해 열려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개조된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에 대한 책임과 부담이 늘어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새로운 유의미한 관계 형성을 통해 정체성이 바뀜을 의미한다.
엄마가 되는 순간 이미 내가 변해버렸다.
그러니 '엄마'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나답다'는 말을
엄마가 되기 전의 내 정체성, 취향, 꿈, 욕구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의도로 사용하고 있다면
동의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새로운 나를 과거에 가두는 것일 뿐이다.
치열한 일상에서 각개전투하는 엄마들에게는 다소 무력감을 줄 수도 있다.
포기할 수 없는 엄마로서의 삶에 이미 '던져져'있는데, 어떻게 그와 무관한 '나'를 찾으란 말인가?
'나'를 찾으라는 말은,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었을 새로운 내 정체성을 탐색하고,
그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는 과정에 주도권을 놓지 말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게 더욱 정당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아이나 가족, 일터에 끌려다니지 않고, 내 정체성을 내가 개조하는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 주위의 평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헤매지 않으려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현재의 상황에서 내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놓는 것이 좋을까를 끊임없이 탐구해야 한다. 그래서 일의 속도와 방향을 정비하고, 가족관의 관계를 조율해야 한다.
그럼 '엄마가 되기 이전의 나'와 '엄마라는 이름의 나'가 만나 화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