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시장 환경이 변해가는 양상과 최신 경력 트렌드를 보면 가슴이 뛴다.
디지털 노마드, 포트폴리오 워커, N잡러, 긱 워커, 프리에이전트...
10년 전까지만 해도 생소했지만 최근 크게 각광받고 있는 일의 형태들이다.
이런 일의 방식들은 '주체성, 자율성, 유연성, 경력 탄력성' 같은 키워드들로 설명된다.
이미 SNS를 들어가 보면 많은 여성들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의 방식을 실험하며 그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일하는 엄마들의 '일-가정 양립' 문제에 관한 미래는 낙관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일중심적이었다는 진단이 보편적이다. 특히 산업화 시절을 생각해보면 일중심적이다 못해 일중독적인 사회였다. 우리 아버지들은 근면 성실하게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 할애했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의 삶의 질을 중요시하는 문화적 흐름 속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이 지속되면서 노동의 가치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가능하다면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다. 과학기술의 진보는 일터에 묶여있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대안적인 방법들을 제공해주었다.
이제는 모두가 당연히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일중심적 삶'이 그 보편성을 잃어가고 있다. 일의 세계가 점차 다원화되면서 개인마다 고용 형태나 근무 시간, 근무 장소 등에서 다양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제는 개인마다 자신의 필요나 상황에 맞게, 혹은 선호에 맞게 일하는 방식을 구성해갈 수 있다.
여전히 정규직, 전일제 근로의 비율이 높지만 주 3일제 근로의 실험, 유연근무제와 같은 제도들이 사회적 지지를 받고 실현 가능한 대안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는 AI와의 공생으로 하루에 4시간만 일할 수도 있게 되었고 그게 현명하고 똑똑한 삶의 방식으로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 누구도 게으름과 불성실을 문제 삼지 않는다. 개인의 행복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문화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당연시 여겨졌던 삶의 일중심성은 무너지고 있다.
학부모 모임에 가면, 예전에는 워킹맘과 전업맘의 경계가 비교적 뚜렷했다. 일하는 엄마를 소외시키는 전업맘들의 커뮤니티가 종종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일하는 엄마들의 비율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정규직, 전일제' 근로를 하지 않는 비율도 늘어났다.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도 등하원 시간에 맞춰 자기 일을 유지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일을 하는 듯 안 하는 듯, 애매한 부류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소득이 발생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더라도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생산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엄마들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재은 대표의 제안처럼 그녀들을 '경력단절여성'이 아니라 '경력보유여성'이라 부르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일을 통해서, 혹은 일 외의 다른 활동들을 통해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개발시켜나가는 엄마들이 있을 뿐이다.
출산 이전의 경력을 지속하거나, 잠시 숨을 고르고 복귀하거나, 새로운 경력을 준비하는 등 엄마들의 경력의 경로들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제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단어는 사라지지 않을까?
자신의 모성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주체적으로 유연하게 새로운 일의 방식을 개척해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포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사실, 맞벌이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맞돌봄의 정상화가 필수적이다. 이 말은, 일터에서의 양성평등을 위해서는 가정에서의 양성평등이 선행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행스럽게도 가정에서 남녀의 권력관계를 재생산했던 유교적 질서는 이제 버려지고 있다. 성별에 따라 발생하는 차별 문제들에 대한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철저하게 구분하던 의식은 이제 (극단적인 이념을 지지하는 소수를 제외하면) 이제 10대, 20대에서 별로 찾아보기 어렵다. 남녀 관계에서의 평등의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
자녀의 양육에 대해 무심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 아빠들은 높은 가족 중심성을 보이기도 한다. 스웨덴의 라테파파처럼 과감히 육아휴직을 내고 자녀 돌봄을 전담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아직 조직 분위기상 거기까지 실행을 못하더라도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변화는 분명히 보인다. 일에만 몰입하느라 가족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었던 아버지 세대와 달리, 요즘 아빠들은 부모역할과 경험을 충분히 누리고자 한다.
문화와 제도는 자전거의 페달처럼 함께 리듬을 맞춰 교차할 때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사회적 문화와 인식이 바뀌면서 그에 맞게 제도가 개편되고, 제도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인식이 확산된다. 이런 변화 속에서 우리 사회는 일터와 가정에서의 양성평등을 향해 가고 있다. 조금만 더 박차를 가하면 일하는 엄마들 뿐 아니라 모든 일하는 부모들의 일-가정 양립이 보장되는 세대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