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ctormom Oct 25. 2022

교육문제, 사실은 여성문제이다

과잉적인 교육 중심의 모성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이 자녀교육을 완성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된지도 10년이 훌쩍 지났다. 사실 대입을 통한 입신양명이 보장되었던 시대는 끝났다. 이런 미래학자들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많은 부모들은 여전히 대입을 향해 달린다. 지나친 입시과열이 식지 않고, 높은 사교육 의존도, 선행학습 경쟁이 유지되면서 '공교육의 정상화'가 이제는 뿌리 깊은 만성적인 난제가 되어버렸다. 


학업에 집착하는 한국 엄마들


70-80년대의 치맛바람 신드롬은 유구한 역사 속에 헬리콥터 맘, 캥거루 맘 등으로 진화했다. 자녀에 대한 집착적, 과보호적인 양상들이 발생하는 이유는 공교육의 한계 때문만은 아니다. 치열해지는 무한경쟁에 대한 불안과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도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과잉적인 자녀교육은 오히려 '엄마 역할을 통해 인정받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구'와 관련이 깊다. 


'나도 꽤 쓸모 있는 사람인데...' 성과지향적인 경쟁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 때문에 일을 떠난 여성들은 자신의 가치를 세상에 증명할 길이 사라졌다. 그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까지 졸업했는데, 그 결과를 제대로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자녀를 통해 자신의 생산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생산성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결과를 통해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 아이의 실력이나 인격 그 자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자녀교육이라함은 본디 '미래 사회에 대비하여 자녀가 역량을 갖추고 성숙한 성인으로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성적, 대입/취업 결과와 같은 객관적 지표에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자녀의 교육을 주도적으로 '시키는' 주체는 주로 엄마들이었다. 


그렇다면, 일하는 엄마들이 늘고 있으니 교육에 대한 집착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희한하게도 일하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과잉적 엄마 노릇은 별로 줄어들지 않았다. SNS, 온라인 커뮤니티, 유튜브 등과 같은 매체들이 발달하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엄마의 열정과 전문성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 거의 모든 엄마들이 준 전문가 수준이다. 이제는 전업맘, 워킹맘의 구분도 별로 없다. 넘쳐나는 사교육의 옵션들과 다양해지는 교육 정보들 속에서 내 아이에게 맞는 것을 선별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기본적인 학업 외에도 코딩, 인성과 교우관계, 취미와 여가, 독서, 경제교육, 성교육까지 가르쳐야 할 목록은 갈수록 늘어나기만 한다. 


아이에게 필요한 교육의 우선순위를 배열하고, 그에 맞게 학교/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하고, 공부시키고 아이의 이해를 확인하고 점검하는 엄마의 주도면밀한 실행력이 자녀의 성과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총감독과 연출은 엄마이고, 공부하는 당사자인 아이들은 배우일 뿐이다. 교육의 성과는 자녀의 것임과 동시에 엄마의 성취물로도 해석된다.

결국, '자녀교육'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는 엄마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하나의 중요한 통로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돌봄을 위한 사교육 의존


본격적인 입시경쟁이 시작되기 전의 더 어릴 때의 사교육 양상은 좀 달리 보아야 한다. 어린아이를 기르는 육아의 과정은 아이가 자라 감에 따라 교육으로 그 콘셉트가 바뀐다. 하지만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교육과 동시에 여전히 돌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하는 엄마들이 이런 아이들을 학원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중적이다. 태권도, 미술, 피아노, 영어 학원은 좋은 것을 배우고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서 아이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이다. 부모가 알아서 돌봄을 해결할 수 있는 부모 중심의 돌봄 지원도, 공공보육 인프라도 부족한 환경에서 다른 뾰족한 대안이 없다. 개인적인 비용을 감수하면서라도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정보 탐색과 의사결정의 과정은 대부분 엄마인 여성에게 위임된다. 


이런 모든 상황은, 굳이 교육열에 가담하고 싶지 않은 워킹맘들까지도 어쩔 수 없이 교육 과열의 흐름에 편승하게 한다. 그래서 한국의 교육열은 실제의 크기보다 더 커 보이는 착시현상을 낳는다. 이런 착시현상은 사교육 시장의 불안 마케팅과 합세하면서 지속적으로 사교육의 굴례에 머물게 한다. 한번 뛰어들면 빠져나오기란 어렵다. 한 아이의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오롯이 느끼며 엄마의 부담은 무겁기만 하다. 


부모 역할의 본질 회복하기


이렇듯, 한국 사회가 엄마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이미 정도에 지나침이 있다. 많은 여성들이 지나치게 엄마 역할에 매몰되어 있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우리 나라의 경제체계, 교육체계, 가족체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사회구조의 복잡한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개인 차원에서 추구해야 할 부모 역할에 대한 성찰은 필요하다. 

우선, 자녀교육에 있어 전인적 차원에서 접근해야지 지나치게 성적과 시험에만 과도하게 몰입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교육은 매우 중요한 부모의 책임이다. 의존적이고 불완전했던 존재인 아기가 점차 자립해나가는 성장의 과정에 기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뿌듯하고 즐겁다. 그 과정에서 부모도 함께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질 수 있다. 하지만, 자녀교육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엄마의 업적을 인정하는 도구가 되면 안 된다. 아이는 엄마의 성취를 위해 존재하는 구성물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인격체이다. 

따라서 자녀의 성장 과정에 따라 부모의 책임과 역할은 달라지고 점차 축소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금의 교육현실에서와 같이 초중고를 거치는 동안 오히려 온갖 입시, 교육정보에 휩쓸려 메니저와 비서 역할을 고수하는 것은 병리적이다. 요즘은 치맛바람 뿐 아니라 바짓바람 열풍까지 가세하여 자녀의 학업에 관심이 높아진 아빠들의 모습도 늘어났다. 아빠들이 자녀 교육에 동참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그 것이 학업적인 영역에 한정되는 것은 좋지 않다. 

자녀의 성장에 따라 부모도 자신의 일에 더욱 잘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반드시 돈을 버는 직업 활동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고유한 재능과 동기에 따라 자기개발, 사회봉사, 종교활동 등 자녀와 무관한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가꿀 수 있다. 자녀의 학업에 대한 과잉적인 몰입에 나도 모르게 편승하기 보다는 육아와 교육의 본질을 기억하자. 










이전 05화 일하기 싫은 세상에서 일하고 싶은 엄마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