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대를 막론하고 누구나
최대한 적게 일하고 많이 벌고 싶어 한다.
직장에서 더 성실하게 일하고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방법보다는
좋아하는 일을 최대한 덜 힘들게 하는 비법이나 빠르게 돈 버는 방법,
불노소득으로 노후에 대비하는 법에 더 관심이 많다.
이렇게 일하기 싫어하는 사회에서 유독 일에 집착하는 부류가 있다. 결혼을 하고 자녀를 출산한 엄마들, 혹은 예비 엄마들이다. 이들은 일을 못할까 봐 억울해하고 우울해한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면 감사한 것 아닌가?
전업주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외벌이가 가능함을 보여주는 일종의 권력이기도 하지 않은가?
가장인 남편과 달리 선택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도 어쩌면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겠는가?
여성들은 왜 그렇게 경력단절을 불안해하고, 결혼과 출산까지 포기하겠다는 것일까?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하기 싫은 세상'에서의 '일'은 돈을 벌기 위해 수고하고 땀 흘리는 노동으로서의 일이다.
우리 사회가 일하기 싫어한다는 말은, 힘들고 고된 돈벌이에 충성하기만 하면서 살기는 싫다는 의미이다.
YOLO(you only live once)와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에 열광하면서도 일에 대한 의미와 진정성, 진심과 마음이 회자되는 현상들이 이를 역설한다.
반면, '일하고 싶은 엄마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으로서의 일이 아니라 '경력'이다. 그들에게 일은 '정체성'이다.
그러니 엄마들이 일하고 싶은 마음은,
정체성 상실에 대한 강력한 불안과 거부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일하고 싶다는 말의 의미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다는 외침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적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버는 행위의 필요성도 있겠지만, 그 넘어 더 고차원적인 욕구도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일에 대한 의식에 경력개발과 자아실현의 욕구가 반영되는 것은 충분히 존중받아 마땅하다.
사실, 어떤 사람은 (그게 남편이든 아내이든) 육아와 가족 돌봄을 위해 자발적으로 일을 떠나기도 한다.
가정에서의 역할에서 충분히 가치를 발견하고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다면 가정주부로 살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와 반대로, 원치 않게 어쩔 수 없이 직업활동을 지속해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일은 자신을 빛내줄 '경력'이 아니라 '노동'으로 전락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일에서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더욱 불행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을 그만둘지, 지속할지, 바꿔할지에 대해 선택할 때, 주변의 상황과 시선, 어떤 암묵적인 강압이나 고정관념에 영향받기보다는 최대한 개인이 추구하는 욕구와 가치를 성찰하고 조금이라도 더 그에 충실하게 일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에 대한 엄마들의 복잡한 마음은 '일에 대한 소유'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삶에서의 존재'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