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겠습니다. 아이는 낳지 않겠습니다. 저는 소중하니까요."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는 꼭 낳고 싶은데 저도 소중해서... 어쩌면 좋죠?"
'가족으로부터 자유해지자.'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개인의 인권과 행복을 가족의 가치보다 앞세우는 최근의 여러 사조들이 서로 뒤섞여 여성 경력단절 담론과 합쳐지면서 결과적으로 가족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이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도록 했다. 개인의 행복과 경제적 성공이 우선시 되는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던지 가족과 보조를 맞추어 사는 것은 적절한 보상도 없고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 그래서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다. 실제로 그동안 출산과 육아 때문에 여성의 경력이 위협당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되고 있다.
그래서 당장 결혼, 출산, 육아라는 거대한 파도가 눈앞에 닥친 당사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일과 가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만 같은 곤란함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결혼과 출산을 선택한다고 해도, 일과 가족이 둘 다 내 삶에 비집고 들어오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서 둘 중 하나는 양보해야 할 것 같다. 내 삶에서 일과 가족이 어떻게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을지 막막하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문제가 되는 것은 가족 자체가 아니라 유교적 통념과 이기적 가족주의이다. 그렇다면 회피의 전략이 상책은 아니다. 가족을 정상화하는 방법부터 고민하는게 우선아닌가? 가족 안에서 부당했던 요소들을 줄이고 가족이 개인의 행복을 방해하는게 아니라 도울 수 있도록 끌고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일과 가족은 서로 대결하는 관계인가?
의외로, 만족스럽게 경력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많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족은 그 이상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과 가족이 서로 싸우기만 할 거라는 믿음은 작시 현상이라는 말이다.
알고 보면 일과 가족 그 자체의 존재의 문제가 아니다. 유교적 가부장성이 아니라 협력적인 관계의 질서가 작동하는 '가족'이라면, 그리고 단순히 돈벌이의 수단이 아닌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성숙시키는 '일'이라면, 그 둘은 공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