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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mom Oct 25. 2022

'엄마' 소멸의 시대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

가족을 이루며 사는 게 똑똑한 선택이 아니라는 인식이 커지면서 젊은 세대가 더욱더 결혼과 출산을 거부하고 있다. 예전에는 '당연히' 해야 했던 결혼이 이제는 개인의 선택이 되었고, 비혼을 외친다고 해서 굳이 결혼을 권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혼과 가족의 가치를 무시할만하다고 여기는 것은 정당하지는 않다. 새로운 삶의 방식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게 더 좋은 선택이고, 오래전부터 있어온 통념은 폐기해도 좋은 유물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잃어버릴 가족의 의미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 제시하는 가족의 사전적 의미는 '부부를 중심으로 하여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으로, 혼인ㆍ혈연ㆍ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되어 있다. 최근에는 법적으로 가족의 개념을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있지만 혼인에 의해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관계가 여전히 가장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이다. 

가족은 '개개인의 역할 수행이 쉽고, 서로 간의 지지도가 높고, 가족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가족 구성원 서로 간의 협동과 가족 내의 자원을 적절하게 이용할 수 있을 때' 그 기능을 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송성자, 2002). 즉 이상적인 가족은 구성원들 상호 간의 동반성장이 가능한 가족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가족의 잠재력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가족의 존재가 개인의 삶의 질을 훼손한다는 의식이 퍼지고 있다. 극심한 개인주의와 행복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삶이 가족 때문에 희생되는 꼴을 못 본다.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각자도생의 사회로 규정되면서 그 가족 중심성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모성애에 대한 두 가지 시선


이렇게 되면 함께 사라질 것이 '엄마'라는 상징성이다. 

엄마 냄새, 엄마품, 엄마 잔소리, 집밥...

듣기만 해도 따뜻하고 위로를 주는 단어들이다. 누군가에게 이런 치유적 가치를 제공하는 데는 다른 누군가의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모든 아이들은 믿을만한 어른의 아낌없는 돌봄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고,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돌봄과 수고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아낌 없이 내어주는 사랑을 경험해본 사람이 갖는 내적 힘은 단단하다. 엄마의 사랑은 우리의 일상에 강한 회복력과 치유능력을 갖는다. 


이렇게 자녀를 향한 본능적이고 무조건적인 애정을 '모성애'라 부른다. 하지만 누구는 모성이라는 게 지나치게 미화된 비현실적인 허상일 뿐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모성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엄마인 여성들한테만 가족 돌봄을 위임하고 그 역할에만 머물게 하려는 기득권(남성)의 계산에 의해 기획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그 계산이 통하기도 했었다. 그동안 우리의 엄마들은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을 기본값으로 장착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엄마라는 이름 뒤에 자신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가렸다. 아주 최근까지도 어머니 역할을 위해 많은 여성들은 경력의 단절을 감수했고,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자아실현으로 투영했다. 결과적으로 점차 더 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엄마 되기를 꺼리고 있다. 적어도 우리 엄마 같은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엄마라는 이름보다 내 이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교적 가부장제가 그런 사랑의 방식을 강요해서 엄마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었다면 이 것은 분명 무겁고 부당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부당함을 깨우쳤고 이제 유교적 모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엄마가 되더라도 '나'를 잃으면서까지, '나'를 양보하면서까지 그 자리에 몰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 되었다. 엄마라면 응당 그래야만 한다는 인식도 이미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모성의 가능성: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모성+부성


엄마에게만 일방적이고 희생적인 돌봄, '모성애'라고 미화된 그것을 요구하는 게 부당하다면, 그로부터 우리가 경험해왔던 회복적, 치유적 가치들을 우리는 어떻게 자녀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내 인생도 챙기면서 아이에게 '영혼의 안식처'와 같은 가족 경험, 엄마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의 상생(win-win) 가능성은 더 민주적이고 행복한 새로운 모성의 형태를 기대하게 해 준다. 어떤 한 사람에게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이지 않으면서 가족 모두가 서로를 단단하게 지지할 수 있는 새로운 부모관을 세우면 된다. 희생적인 모성을 강조하던 것에서 이제는 협력적인 모성과 부성의 방향을 모색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일하며 살아가는 존재로서 가족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유익들이 분명히 있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고 일과 가족에 기꺼이 나를 던지고 인생이 나를 어떻게 다듬어 갈지, 희망을 가져보아도 좋겠다. 그럼 '엄마'라는 단어에 들어있던 강력한 상징성은 부모, 혹은 가족으로 확대, 전이될 것이다. 그래서 가족의 의미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라는 따뜻한 힘은 이대로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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