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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ctormom Sep 02. 2022

치열한데 행복한 저, 비정상인가요?

일상에서 얻은 영감

여성, 일, 가족, 교육

이런 키워드에 둘러싸인 나에겐

일상의 매 순간이 영감을 준다.


일하는 존재이면서 엄마로서 살아가며 스스로 상기하는 미션은 두 가지이다. (내가 기억해야 할 삶의 태도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수도 있겠다.)

첫 번째는, 내 자리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양성평등의식을 전파하는 일이다.

이건 내 일(강의, 연구)을 통해서도, 일상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특히 남편이 제일 만만해서 은근슬쩍 말로 행동으로 계몽을 시도하는데, 비표적 안정적으로 잘 물들어가고 있다.

두 번째는, 내 자리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 안에서 최대한 주체성을 발휘하며 살아가는 일이다. 여기서 방점은 '인정'에 있다. 내가 가족을 위해 저녁상을 차리는 건 당연하지만,  남편이 일하는 나를 위해 어쩌다 한번 대신 저녁 상을 차려줄 때는 무한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현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비대칭은 남편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 사회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은 거니까...


일과 가족을 연구하다 보니

그나마 여성의 일에 대한 논의는 이미 방대해져가고 있는 것이 감지되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묻히고 과소평가되고 있는 가족의 의미에 내 이야기가 본의 아니게 기울어지기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나는 둘 중 무엇 하나를 우선시하고 싶지 않다.

'인생은 투 트랙'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일도 가족도 나에게는 우열을 가릴 수 없이 소중하다.


그런 나도...

사실은 강의하는 날을 제외한 일상이 아이들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알람 소리에 일어나면 나는 먹지도 않을 아침을 아이들을 위해 차려준다.

(감사히도 남편은 아침도 먹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출근한다 ㅎㅎ)

두 아이를 등교시키면 집정돈을 간단히 해놓고

컴퓨터 앞에 앉는다.

점심은 대충 때울 때가 많지만 아주 가끔 나를 아끼는 마음으로 혼자 고기를 굽기도 한다.

한창, 자판을 두드리다 보면 아이들이 순차적으로 하교한다.

보통은 이때, 자체 퇴근이다.

아이들과 간식 먹으며 수다도 떨고, 싸움도 말리고, 잔소리도 하고, 집도 치운다.

그러다가 침대에 쓰러져 쉬기도 한다.

그런데 바쁠 때는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내 멘털을 다스리고 인내하고 오래 참으면서

최선을 다해 내 일에 집중해본다.

아이들이 학원을 들고나는 사이,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 다돼간다.

family time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저녁시간의 식탁 교제를 통해 가족들과 교감을 시도한다.

대화가 잘 되는 날은 기분이 좋지만, 가족들이 비협조적일 때는 잔뜩 날이 선다.

그리고 아이들 취침시간 9시 반까지 카운트다운...

각자 하루를 마무리하고 아이들이 소등하면

꿀 같은 휴식 or 야근 모드

그렇게 하루 마감이다.


주체적으로 살아가자고 애써 외치는 나 조차도

별로 주체적이지 않은 일상인 것 같을 때가 많다.

다 큰 초딩 둘을 키우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의 루틴이 내 하루를 지배한다.


솔직히...

어제도 가족예찬론을 펼치며 회의를 끝내

싱크대 앞에서 콩나물을 다듬다가 헛웃음이 났다.

나 자신에게 '이것도 의미 있는 일이냐? 단순노동 아니냐? 어디 한번 얘기해보시지?' 따져 물었다.

나 자신이 가증스럽게 느껴지려던 찰나에,

내가 처음 콩나물 봉지를 뜯었을 때 다소 즐거운 마음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

컴퓨터랑 잠시 분리된 것에 대한 해방감 때문이었는지, 콩나물무침에 대한 자신감과 승부욕 때문이었는지,

이게 아이들의 건강에 기여할꺼라는 확신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초긍정주의자의 정신승리였는지는 모르겠다.


순간순간 울컥하고 이렇게 치열한데... 난 왜 행복하지?

아이들의 자라남에 참여하는 과정,

아이들이 성장해가면서 조금씩 엄마를 배려하고 이해하고 도와주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나를 전적으로 희생해야 했던 일방적인 관계가

이제는 서로를 분리하고 존중하는 사이가 되어가는 과정을 겪어가는 게

뿌듯하고 행복하다. 그렇게 후회스럽고 힘겹기만 하지는 않다.

다시 처음부터 겪으라면 한숨부터 나오지만, 힘든 굴곡을 지나고 나니 이제 이렇게 괜찮아졌다.


심지어 남편과 삶을 맞바꾸고 싶지도 않다.

아이들과 적절한 시간 보내기와 거리두기가 가능한 것이

위태롭다고 느껴질 때도 있고, 신경질적이 될 때도 있지만

어쩌면 이런 일상도 남편이 가장 노릇 해주니까 누릴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될 때도 있다.

내 벌이가 우리 가족의 생존을 좌우한다면, 일과 육아를 조율할 선택지 없이 일해야 했겠지...

일의 방식과 양을 조율하면서 유연하게 일할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참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일과 가정의 병행이 어려운 걸 너무 자책하지도, 억울해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엄마인 이상 참아내야 하는 부당함이 있다.

하지만,

그 한정된 범위 안에서 나름의 기쁨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나에게 주어진 기쁨을 누려라.

부모 노릇도 기꺼이 즐기고 누려보자.

전업맘이든, 직장맘이든, 나처럼 그 경계에서 어물쩡거리고 있든,

육아도 가족 돌봄도 하나의 의미 있는 활동이라는 확신을 갖는다면 불확실한 미래가 덜 두려워진다.

내 일상이 치열하다고 해서 '불행'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타인에 의해 통제된다고 해서 주도권을 상실했다고, 내가 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은

처음부터 당연하고 쉬운 일이 아닌거다. 내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기 때문에 어렵고,

또 한 사람(자녀)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따르고 중대한 사명이다.

쉽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된다.  대신, 그 만큼 성장의 가능성을 갖는다.

회사에서 도전적인 프로젝트를 맡았다고 생각해보자.

당분간 죽도록 힘든 시기가 있지만 점차 괜찮아진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잘 버티면 전혀 새로운 시선의 확장과 내적인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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