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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Jul 17. 2022

2주 만에 집으로 퇴근

인턴 생활은 이제 시작입니다만

금요일 밤 당직을 마치고 토요일 새벽 5시. 나의 첫 주말 오프였다.

바로 퇴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한 시간 정도 주말 당직의 아침 업무를 도와주었다. 


의무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서로 고통을 분담하기로 합의했다. 

주말 당직은 인턴 두 명이 다섯 명의 몫을 해야 한다. 다들 아직 업무가 능숙하지 않아 손도 느린 데다, 평일에 전담 간호사들이 하는 환자 드레싱까지 맡게 되어 굉장히 바쁘기 때문이다.


한 시간 가량 정규 업무를 마친 후 아침 6시쯤 병원에서 나왔다. 뜨거웠던 금요일 밤의 흔적이 굴러 다니는, 스산하고 조용한 아침 거리. 열린 곳이 거의 없어 겨우 찾은 24시간 해장국집에서 아침으로 먹고 집에 가는 버스를 탔다. 


집에 가는 건, 2주 만이었다.




라떼는- 이야기를 해보자면 옛날 선배들은 100일이 넘도록 집에 다녀오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한다. 쉴 틈이 생겨도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숙소에서 잠만 자기도 하고 말이다. 오프를 제대로 챙겨 받지 못해 도망갔다 온 친구들 이야기도 들었다. 휴, 난 2주만에 집에 가는 것도 버거운데 옛날이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일찌감치 수련 받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선배들에 대한 존경심이 커졌다.


밤을 새웠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엔 긴장이 풀리지 않아서였는지 정신이 또렷했다.

그러다 집 근처에 다 와서 깜빡 잠이 들어버렸다. 

결국 정류장을 하나 놓쳤다.


부라 부랴 다시 한 정거장을 되돌아 집에 와서는 오랜만에 음악을 들으며 욕조에 몸을 담갔다. 가습기를 틀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웠다. 건조하고 먼지 많은, 딱딱한 매트리스가 깔린 인턴 숙소와 비교되지 않는 쾌적함이었다. 인턴 시작 전에는 매일 누리던 나의 집, 나의 일상이 이렇게나 소중한 것이 되어버렸다. 




점심 시간이 다 되어 겨우 눈이 떠졌다. 

일어나니 코피가 주르륵 쏟아졌다.

코피는 나는데 코는 막혀서 숨쉬기가 너무 힘들고, 목이 미칠 듯이 아프면서 기침이 계속 났다. 


아,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 종일 세균과 바이러스 속에서 만성 피로를 달고 사는데 몸이 멀쩡할리가 없지. 주말이라 곧 문 닫을 새라 부랴부랴 동네 이비인후과를 찾아갔다.


이것 저것 문진을 하는 와중에 결국 인턴 생활 중임을 들켰다.

선생님께서는 빨리 나으려면 환경 조절이 중요한데... 라며 안타까운 시선으로 힘내라고 하시며 약을 지어주셨다. 


선생님도 인턴 시절이 있으셨겠지. 

그래도 누군가는 이 힘든 길을 무사히 다 지나갔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진료를 보고 나오니 햇살이 너무 좋은 봄 날이었다.

어느새 얇아진 옷차림들 속에서 나 혼자 으슬으슬 추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평소에 보기 힘든 햇볕을 조금이라도 더 쬐고 싶어서 피곤함을 무릅쓰고 무작정 걸었다.

날이 이렇게 좋다니, 괜히 설움이 몰려오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카페에서 차를 한 잔 마시고, 늦은 점심을 먹고 장도 보고 집으로 돌아와 또 깜빡 졸았다. 

저녁을 해 먹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평범한 일들이었다.

그런데 사무치게 좋았다.

누군가는 어디선가 또 죽어가고 있는데, 병원 밖을 나온 내 일상은 무서우리만큼 평화로웠다.


그 평화로움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너무 힘들었다.

이 생활이 고작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또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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