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받이 인턴 생활
하루는 바쁜 당직 시간에 항암환자 수혈 킵을 위해 터덜터덜 병실로 들어갔다.
15분 동안 혈소판 10팩이 환자 몸에 다 들어갈 때까지 갑작스러운 부작용이 생기진 않는지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는 동안에 콜이 많이 쌓이면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에게 부작용이 별로 없기 때문에 내가 여기 왜 지키고 서 있나, 피곤함과 함께 의문이 몰려오는 그런 일이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병실에 도착하니 환자는 혹시 모를 부작용을 막기 위해 미리 졸린 주사를 맞은 탓인지, 오랜 투병 탓인지, 기운 없이 잠들어 있었다.
앉아 있을 곳도 마땅치 않아 똑-똑 떨어지는 노오란 수액 라인을 보며 환자 곁에 멀뚱히 서 있었다.
그때 갑자기 환자 보호자가 나타났다.
수혈은 무슨 수혈이야!
맨날 피 빼고 또 넣고 이제 무슨 치료냐고!
조용한 병실의 적막이 갑자기 깨졌다.
계속해서 보호자는 애꿎은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며 짜증이 섞인 화를 버럭버럭 내었다.
나는 안 그래도 팅팅 붓고 아픈 다리로 서 있는 것도 싫었고, 그동안 쌓여가는 콜을 어서 처리하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도 급한데 그런 보호자를 만나니 나도 기운이 쭉 빠지고 짜증이 났다. 하지만 뭐라 대꾸할 힘도 없고, 내가 주치의도 아니니 뭐라 설명해주기도 어려웠다. 몇 마디 건네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시 돋친 대답과 한탄뿐이었다. 그저 조용히 서서 가만히 그 사람의 짜증을 다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무슨 말로 설명을 해줘야 이 사람의 화가 다독여질까. 나의 무지가 들통이 날까 봐, 그냥 그 자리에 인간 알람처럼 서있을 뿐이었다. 10분이 넘는 시간 내내 대는 보호자 옆에 있자니 나도 지쳤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무기력했다.
콧줄(L-tube)을 끼우는 것도 인턴의 업무 중 하나였다.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없는 분들에게 코를 통해 말랑한 고무 관을 위까지 넣는 일이다. 관으로 물도 주고, 약도 주고, 밥도 주는 건데 관이 목 뒤로 넘어갈 때 기침도 많이 나오고 꽤 역한 기분이 들어 모두들 힘들어한다.
대부분 흡인성 폐렴의 위험이 높은 노령의 환자들이 많고 협조도 잘 안된다.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지 알지만, 그 걸로 약도 먹고 밥도 드셔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열심히 어르고 달래면서 꿀꺽꿀꺽 콧줄을 삼켜보세요~ 할 수밖에 없다. 치료의 일환이니까.
그날 콧줄을 넣어야 하는 환자는 치매 할머니였다.
그만해! 씨발년아!
할머니는 나한테 욕을 하고 때리고 침을 뱉었다. 옆에서 딸도 같이 침을 맞았다.
당황했지만 화도 웃음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기계처럼 빨리 콧줄을 넣고 다음 일을 하러 가야 하는 사람이었다.
따님과 함께 할머니를 붙잡고 겨우 겨우 넣고 다음 병실로 이동했다.
하지만, 10분 만에 할머니가 손으로 콧줄을 잡아 뺐다고 다시 넣어달라는 전화가 왔다.
내가 이번에 다시 넣는다고 해도, 할머니가 또 잡아 빼면 아무 소용이 없을 일이었다.
딸인 보호자는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침대에 묶는 억제대 동의서를 작성했다. 억제대라는 것이 너무 비인간적으로 보이고,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마음 아파하며 싫어하는 일이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할머니를 굶길 수도, 약을 안 먹일 수도 없으니까.
나는 다시 땀을 뻘뻘 흘리며 할머니 한 번만 꿀꺽 삼켜 보세요 를 연거푸 말하며 열심히 시도를 했다.
할머니는 여전히 욕을 하고 침을 뱉었다.
그러다 아들이 왔다.
어머니 팔에 장갑을 채우고 콧줄을 억지로 넣고 있는 모습을 보니 화가 났는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다 관두고 퇴원할 거야!
그만해!
하아 - 한숨이 나올 뿐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왜 할머니가 약을 콧줄로 먹어야 하는지, 억제대를 해야 하는지, 내가 그 자리에서 설명해줬어도 되었겠지만 나에겐 그럴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따님, 아드님, 두 분이 함께 상의하시고 알려 주세요
간호사 선생님, 보호자분들 상의 끝나고 필요하시면 연락 주세요.
도망치듯 그곳을 떠났다. 그렇게 병실을 떠나자마자 다른 병동에서도 다른 할머니가 콧줄을 빼버렸다고 다시 넣어달라는 전화가 왔다.
허허허.
어느 날 아침에는 동기에게 도움 요청이 왔다. 동기가 실패한 동맥혈 채혈을 내가 대신하러 병실로 갔다.
도착해보니 덩치 큰 중년의 아저씨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격하게 화를 내며 검사를 거부했다. 이미 화가 나서 협조가 안 되는 환자를 대하는 일이 가장 어렵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나는 지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강한 어조로 말했다.
이 검사를 안 하시면 알맞은 치료를 해드릴 수 없어요.
하지만 환자는 계속 거부를 했다.
그러다 결국 담당 간호사가 와서 환자를 어르고 달래기 시작했다.
아프고 힘드시죠, 정말 힘드시겠지만 치료에 꼭 필요한 중요한 검사예요.
잘 아시죠? 한 번만 다시 해봐 주실 수 있을까요?
순간 나는 조금 부끄러웠고, 조금 숨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권위적인 태도로 환자를 대했구나, 싶었다.
사실 중년 남성은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환자군이다. 나 같이 젊은 여자 의사를 무시하거나 강압적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시를 세우고, 오히려 더 딱딱하게 나갔던 것 같다. 하지만 결국 환자가 검사를 수락하게 한 것은 환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정중하고 부드러운 말이었다.
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프고 지쳐있다.
환자도, 보호자도, 의사도, 간호사도.
질병 자체의 문제, 돈의 문제, 병원 시스템의 문제, 주치의와의 깨진 신뢰 문제, 충분하지 않은 설명들 -
모든 것이 짜증과 화를 불러일으킨다.
결국 그 쌓인 화와 불만은 터져 나오기 마련이다. 그때 환자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턴, 간호사, 여사님들이 주로 폭격을 당한다. 그나마 나는 의사 가운이라도 입었지, 의사가 아닌 의료진들에게는 더 심한 언사가 쏟아지는 것을 여러 번 목격할 수 있다. 전문직이 아니라 천상 서비스직이다. 가끔은 억울하고, 가끔은 화도 나고, 가끔은 지치기도 한다.
자꾸 날카로워지는 내 모습도 발견한다. 상대방은 아무 생각 없이 한 행동이나 말일 수 있는데도 '나를 무시하나?'라는 의심이 들거나 '만만하게 보이면 안 돼!!'라는 생각이 무의식 중에 자꾸 나에게 스며들고 있었다.
그런 생각 없이 스스로 자신감이 충만하고, 여유롭게, 너그럽고 싶다. 이 욕받이 생활에서 조금은 덤덤하게, 조금은 더 의연하게 지내고 싶다. 그리도 무엇보다, 모두가 아프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는 소망이 더욱더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