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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May 16. 2022

인턴을 그만 두지 못한 이유

사소하지만 중요한 일들

정말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때려치우고 나와야지.



처음 내가 인턴 생활을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 중 하나다.

말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남들 다 하는 일이라고 꾹 참고 나를 갉아먹으면서까지 무리해서 버티지 말고 용기 있게 때려치우고 나오자, 나름 굳게 결심했던 것이다.


인턴 생활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 피로함이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었다. 물론 생각보다 할만하네?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힘들지 않다. 괜찮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모두가 밤을 새우는 시험기간에도 신데렐라처럼 12시가 넘으면 잠자리에 들고, 7-8시간은 자야만 했던 체력을 가졌다. 이런 내가 당직날은 평균 2-3시간 (꼴딱 새거나 운 좋으면 4시간 정도 자거나) 자고 다음날 또 쉼 없이 정규 근무 시간에 제대로 일을 해내야 하는데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부담이 안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인턴 생활을 그만두지 않았다.

아니, 그만 두지 못했다.




하루는 밤샘 당직이 끝나기 30분 전, 새벽 4시 31분경. 병동에 코드블루가 떴다.

가운도 못 걸치고 안경만 주워 쓴 채 비몽사몽 두 층 위에 있는 병동까지 계단으로 숨을 헐떡이며 뛰어 올라갔다.


자는 심장내과 환자였다.

처치실 앞이 정말 운 좋게 정형외과 당직실이라 1년 차였던 내 친구가 먼저 달려와 흉부압박을 해주고 있었다. 병원에서 인턴보다도 더 힘들고 일이 많다는 정형외과 1년 차인데도, 코드블루가 떴을 때 달려가던 인턴 시절 몸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었는지 자기도 모르게 달려 나왔다고 한다. 천만다행이었다.


2분 후 나와 손을 바꾸었고 그 사이에 내과 당직 선생님 몇 분이 달려오셨다. 약 20분 동안 계속 흉부 압박과 약물 주입, 제세동, 산소 공급 등이 이루어졌고 환자분은 무사히 돌아오셨다. 내가 흉부압박을 한 환자분들 중 처음으로 살아 돌아오신 분이었다.


환자 앰부를 짜며 CT도 찍고, 중환자실에 무사히 모셔드리고 나니 벌써 아침 업무를 해야 할 시간이 지나버렸다. 부랴부랴 병동으로 올라가 업무를 했다. 이후에 괜찮아지셨을까, 궁금은 했지만 너무 바빠서 환자 차트는 찾아볼 틈도 없었다. 나중에서야 ICU인턴에게 우연히 소식을 들었는데, 전화기 좀 빌릴 수 있냐고 물어보실 만큼 의식이 돌아오셨다고 한다. 참 다행이었다.


몇 주 후, 병동에서 콜이 와서 처리하러 가보니 낯익은 보호자와 환자였다. 내가 워낙 환자 이름을 잘 못 외우는지라 그냥 오래 입원하신 분인가 보다- 하면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하다 보니, 번뜩 기억이 났다. 심폐소생술로 살아나셨던 그분이다.

아, 혹시 얼마 전에 새벽에 중환자실 가셨죠?

저도 같이 심폐소생술 했었거든요. 기억이 나네요.

많이 좋아지셨다고 들었는데 중환자실 나오셨네요!

빨리 낫고 무사히 퇴원하세요~


인사하고 나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그렇다.

내가 잠 못 자고 밥 못 먹고 땀 흘리며 흉부 압박을 했던 시간이, 누군가의 삶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며칠 내내 밤낮으로 내과 인턴들이 돌아가며 한 환자분을 2시간마다 관장해드렸다. 간 기능이 떨어져 혼수상태에 빠지신 분으로, 깨어날 때까지 관장을 해서 몸속에 쌓인 암모니아를 빼야 하는 것이다. 덕분에 당직날 쪽잠도 포기하고 꼴딱 밤을 새우는 일이 늘어났다.


그 관장이란 것은 드르렁드르렁하며 잠에 빠진 환자를 옆으로 돌려 눕히고, 항문으로 말랑한 고무 튜브를 넣고, 주먹 만한 커다란 주사기에 가득 찬 관장약을 아주 천천히 밀어 넣는 일이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기에 그러다 그냥 대변이 푸푸푹 하고 쏟아져 나오기도 하고, 가끔 튜브가 꼬이거나 막혀서 약물이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하고 펑하고 터져버릴 때도 있었다.


정말 더럽고, 냄새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젠가부터 관장 콜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동에서 환자분이 멀쩡하게 돌아다니시고, 퇴원 준비하시는 것을 목격했다.

계속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며 정신없이, 아무리 치워도 계속 나오는 똥오물과 함께 침대에 누워 계셨는데...

정말 신기했다.


이렇게 관장만 했던 나도 마음이 기쁜데, 그렇게 정신없이 실려온 환자가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주치의는 얼마나 뿌듯할까? 생각이 들었다.




고된 인턴 생활을 버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나는 사실 인턴 성적에 큰 욕심이 있지도 않고, 인기과를 지망해서 야망 있게 경쟁할 생각도 없었다. 소박하게 사고 없이, 무사히 인턴 생활을 마치는 것이 목표였다. 1년 동안 내 의학적 상식과 경험을 조금이나마 넓히고, 대학 병원의 생리를 배우고, 다음 단계인 레지던트 수련을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인턴 의사는 드라마나 TV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멋진 삶도 아니다.

힘들고, 피곤하고, 지저분하고, 괴롭다.

하지만 의사로서의 보람, 그것을 처음으로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똥, 오줌, 피를 주로 만지고 잡스러워 보이는 일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나는 인턴 생활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한 사람의 치료가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의 구시렁댐을 받아주는 동기들 있고, 또 가끔이지만 고마움을 표현해주시는 보호자와 환자들도 계셨다. 덕분에 힘들어도 한 달씩 열두 번만 버티면 다 지나간다는 생각으로, 인턴 생활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내가 무사히 인턴을 마친 것은, 다 그 들 덕분이다.



당직실에 동기가 두고 갔던 간식과 메모. 작은 마음이 큰 힘이 되었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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