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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Apr 29. 2022

처음으로 마주한 죽음

내 손 끝에서 떠난 한 생의 마지막 순간

병원의 밤은 낮보다 훨씬 조용하다.

전공의법 시행 이전에는 퇴근이란 개념이 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변했다.

내과 계열은 오후 다섯 시 이후가 되면 당직 인턴들만 남게 된다.


다른 과들은 밤에는 콜이 적어 바로  건물 숙소에서 쉬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내과계(내과, 중환자실) 사정이 다르다. 생사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 갑자기 상태가 나빠질  있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 병원  당직실에서 쪽잠을 자며 밤새 콜을 받고 응급 상황을 알리는 '코드블루' 뜨면 가장 먼저 달려가 심폐소생술(CPR)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생애 첫 CPR


그날은 금요일.

내가 당직인 날이었다.


오후 5시 3분.

당직실에서 어서 퇴근하라며 서로를 떠밀던 중, 당직인 내가 아니라 퇴근 준비를 하던 인턴에게 전화가 한 통 왔다.


'어레스트래!'(arrest ; 보통 심정지를 말한다)

당직실 문을 열고 나가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같이 뛰어 내려갔다.


이미 가까운 응급실에서 인턴 한 명이 와 흉부압박을 하고 있었다.

우리 셋은 돌아가면서 흉부압박을 하고 산소 공급을 위한 앰부를 짜기 시작했다.


환자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심폐소생술 과정에서 최근에 이미 한 번 심정지가 있었고, 어렵게 소생에 성공하신 적이 있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망이 없어 보였다.


하얗게 납처럼 변해가는 환자의 얼굴

손바닥에 닿는 으스러지는 갈비뼈의 느낌

흉부 압박이 없으면 뛰지 않는 환자의 심장 리듬

부산하면서도 점점 모두가 말이 없이 고요해지는 병실


그렇게 열 사이클 정도 돌고, 30분쯤 흘렀을까.

주치의 선생님과 담당 교수님께서는 대기실에 있던 가족들을 모두 병실로 들어오게 하셨다.


'가장 위에 보이는 선이 심장 리듬입니다.

지금은 인턴 선생님이 가슴을 누르고 있어서 리듬이 보이시죠,

저희가 지금 이렇게 30분 정도를 소생술을 진행했지만 전혀 반응이 없으십니다.
인턴 선생님, 멈춰보세요.'


흉부 압박을 멈추는 순간,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 하며 일직선의 심장리듬이  지나갔다.
가족들의 얼굴이 울렁인다.

'선생님도 앰부 그만 짜세요.'

앰부를 끝까지 짜고 있던 나에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순간, 울컥했다.

지금  순간 전까지는 나와   번의 접점이 없던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마지막 숨을 내가 놓아야 한다니. 의사가 되기 이전에도 조부모님이나 지인들의 죽음을 접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누군가의 생명이 끊어지는 바로  순간을 내가 함께  것은 처음이었다.


가족들은 오열했고, 우리는 조용히 자리를 비켜드렸다.




30 간의 CPR 이후에  몸은 땀으로 흥건했다.

분당 100회가량 빠르고 깊게 움직여야 하는 흉부압박은 중노동이었다.

둘 도 아니고 세 명이 손을 바꾸며 교대를 한건데도, 당직실로 돌아와서까지 숨이 찼다.


끼고 있던 라텍스 장갑을 벗었다.

그새 손도 땀범벅이 어 있었, 흉부 압박을 했던 부분이 벗겨져 빨간 속살이 보였다.


손이 쓰라린  둘째 치고, 자꾸 눈물은 올랐다.

하지만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었다.

앰부를 짜고 컴프레션을 하는 사이에도 콜은 쌓여 있었다.

다시 얼른 병동으로 올라가야만 했다.


쓰라린 손을 닦고 주머니에 있던 밴드를 하나 붙이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고맙게도 퇴근해야 하는 인턴이 잠깐이라도 쉬라며 퇴근을 미루고 급한 콜을 대신 하나 해주고 갔다.

그 잠시의 10분 정도의 시간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그날 밤 당직을 제대로 설 수 없었을 것 같다.


그날 밤은 2시간 간격으로 관장해야 하는 간성혼수 환자

사타구니로 심도자 시술 후 계속 출혈이 있어서 손으로 압박해줘야 하는 환자

앰부 짜면서 MRI 검사해야 하는 환들로 정말 밤을 꼴딱 새웠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도 쉬이 낫지 않았던 손의 상처





무뎌진다는 것


병동에서 대화가 통하는 환자들을 만나면 너무 반갑다.

의식이 없는 중환자실 환자들은 둘째 치고, 병동 내과 환자들도 대부분 너무 노령이라서 혹은 질병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분들도 정정하고 건강하셨을 때는 위엄 있는  사람의 인간으로 두 발로 길을 걸어 다니고, 밖에서  사람의 몫을 했을 텐데  지금은  똑같이 환자복을 입고,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냄새가 나거나, 기저귀나 소변줄을 차고 항상 멍한 표정과 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무엇을 했을지, 어떤 사람이었을지  모습만 보면 상상도 되지 않는다.


나도 지금은 이렇게 과 두 다리로 병원을 활보하고 있지만 언제 내가 어떻게 되어  자리에 누워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삶은  어떨까 하는 생각, 잠시 감상들이 짧게 스쳐 지나가지만 잠깐 뿐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기에 인턴은 너무 바쁘다.

 

첫 CPR 이후로도 많은 응급 상황들이 있었다.

다시 또 심폐소생술을 하고, 돌아가신 분의 사후 처치를 하고, 사망 선고를 하더라도 처음처럼 울컥하는 일은 없었다. 대체로 덤덤할 뿐이다.


또 나는 내 일을 계속해야 하니까.

매번 울컥하면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사람은 누구나 죽으니까.

그래도 가끔 그런 감상들이 찾아오는 것이 싫지는 않다.

반갑다.

이런 생활에, 이런 감정에, 무뎌지고 싶지는 않다.

내가 대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이 일을 오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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