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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Mar 20. 2022

아이와의 밥상 전쟁터에서 얻은 교훈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

말을 물가로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아이도 하나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기 의지를 벗어나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시킬 수 없다는 것. 아직 아이가 말도 제대로 못 하던 돌 무렵 그 사실을 처음으로 뼈저리게 느꼈다.


따박따박 주는 대로 얌전히 앉아서 잘 받아먹던 밥을 어느 순간 뱉는 것이 시작이었다. 나중에는 입을 꾹 다물고 끝까지 열지 않지 뭔가? 어쩌다 겨우 입에 넣는다 해도 뱉는 것은 기본. 이게 말로만 듣던, 스스로 먹고 싶어 하는 신호인가? 싶어서 애써 손으로 먹을 수 있게 핑거푸드를 만들어 줬지만 장난만 치며 뭉개 버렸을 때의 좌절감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앞에서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해봐도 아이는 시큰둥할 뿐. 안 먹겠다고 의자에서 나오려고 바둥대는 아이를 붙잡고 한 숟갈이라도 먹여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루 제대로 안 먹는다고 해서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식판 앞에서 거부당하는 날이 늘어나면서도 태연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될까? 너무 초초해졌다. 밥 한 끼 먹이는 게 이리도 어려운 일이었던가? 너무 절망스럽고 계속 이래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애써 만든 음식들을 모두 그대로 버리던 어느 날은 결국 울컥하고 눈물이 나버렸다.


내가 만든 것이 맛이 없나?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까지 안 먹어도 잘 클 수 있는 걸까?


분명 아이는 내가 한 <음식>을 거부하는 것인데 나중에는 왠지 모르게 <내>가 거부당하고, 부정당하는 기분까지 드는 건 왜였을까. 아이 밥 하나 제대로 해 먹이지 못하다니, 자격미달인 엄마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며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앞으로 아이를 키우면서 이런 문제가 수없이 반복될 것이 눈앞에 그려졌다.

지금은 잘 안 먹는다고 걱정하지만 나중에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요, 성적이 안 나와요, 게을러요, 정리정돈을 안 해요…… 등등 흔히들 아이에게 바라는 평범한 부모의 크고 작은 바람들이 좌절될 때마다 이렇게 초조해하고 절망하는 엄마가 될까?

그게 내가 원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던가?

언제까지 아이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괴로워해야 하는 거지?  


식사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고, 필요한 영양소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요리를 하고, 다양한 음식 경험을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 올바른 식사 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식사 환경을 정비해주고 식사 예절을 가르치는 것, 거기까지가 나의 역할이었다.


이후는 아이의 몫이다. 아이는  스스로 배고픔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음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먹기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그것을 배워가는 과정이고,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기 싫은 아이 입에 숟가락을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은 자기 통제력과 조절력을 잃게 하는 폭력적인 행동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먹기 싫을 때 누군가 억지로 먹이려 한다 생각하니 그것도 정말 끔찍한 일이더라. 그게 먹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더라도 말이다.


나는 아이를 물가로 안내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가 스스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기다려줄 것이다. 혹여 아이가 물을 마시지 않더라도 실망하거나 강요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중에는 아이가 스스로 물가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되고 싶은 부모의 모습이다.  


아이와 함께 하는 긴 여정 동안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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