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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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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Mar 24. 2022

아무래도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 봐

누구나 한 번쯤 어릴 적 들어본다는 그 말


“아무래도 우리 아이가 천재인가 봐”


아이가 어릴 때 한 번쯤 부모들이 생각한다는 그 말.

요즘 들어 나도 자꾸 그 말이 생각난다.

물론 나는 우리 아이가 진짜 천재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남들에게 천재라는 오해를 살 만한 행동들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은 태극기였다.

책에서 태극기를 우연히 보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밖에도 태극기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집 근처 도서관이나 경찰서 마당까지 태극기 구경을 가기도 했다.

점점 다른 국기들에도 관심을 가지길래 장난감 삼아 국기 카드를 사주었더니 이런, 국기에 대한 열정이 폭발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드를 모조리 꺼내서 “이게 뭐야”라고 묻기를 매일매일 반복.

나도 모르는 국기들을 가져와서 물을 때면 뒤집어보고 읽어주기 바빴다.


그렇게, 아이는 50여 개가 넘는 나라들의 국기를 외워버렸다.

말도 느려서 30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발화를 한 아이가 거의 몇 주만에 국기 카드를 마스터했다니 놀라운 일이다.

국기 카드 83개 목록. 몇 개나 알고 계시나요?

83개의 국기 중 이름이 길고 어려운 것들을 빼면 거의 다 외운 것 같다.

비슷한 모양들을 가끔 헷갈려할 때가 있지만, 아이가 나에게도 낯선 쿠바, 페루, 칠레, 파키스탄, 케냐 같은 국기들을 말할 때면 흠칫흠칫 놀란다.

내가 너무 상식이 부족했던걸까 반성도 해보게 되었다.


아이의 국기에 대한 열망에 불을 지피기라도 하듯, 때마침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아이는 매일 같이 TV 화면에 나오는 국기들 중 아는 것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자신이 아는 국기들을 가슴이 붙이고 경기를 하는 언니 오빠들을 보며 자신도 태극기를 붙이겠다며 가슴팍에 태극기를 꼭 껴안는 모습이란 …


처음에는 단순히 그림과 이름을 연결 시켜 외우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조금씩 각 나라가 ‘장소’라는 개념이 생겼는지 “엄마 여기 가봤어? 못 가봤어? 나중에 가봐”라고 이야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인도네시아 / 폴란드. 서로 다른 나라의 국기가 이렇게나 비슷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아이가 아직 지구, 세계, 나라라는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나라 이름들을 외운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예쁜 그림이 있고, 그림마다 이름이 있다는 것.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고 알고 싶다는 것.

그 순수하고 새하얀 열망이 매일매일 하루에도 수십 번을 반복해서 카드를 보게 하고 결국 몇십 개의 국기를 외우게 된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걱정될 만큼 끊임없이 반복하고 그 누구보다 빠르게 흡수하는 아이들.

만사에 이렇다면 세상에서 못 배울 것이 없을 것만 같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배우기 원하는 것, 알기 원하는 일”이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지겹게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볼 만큼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 있던가?

내가 이루고 싶은 일을 저렇게 좋아하면서 여러 번 반복해보았던가?


아이를 보면서 다시 한번 돌이켜본다.

잊고 살지만, 나에게도 그런 열정과 열망이 있던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어른들에게도 천재 소리 한 번쯤 들어봤을지도 모를 순수했던 어린 시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잊고 살뿐이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 어디엔가 남아 있을지도 모를 그 작은 불씨를, 찬찬히 찾아봐야겠다.

또 아이 마음의 불씨도, 오래도록 간직하게 도와주고 싶다.


집안 곳곳에 흩어져 있는 국기 카드들… 이제는 저도 덩달아 외우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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