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 모두 두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퇴근길 전철의 특별한 안내방송

by 닥터스윗비
이번 역은 OO, OO 역입니다.
내리실 곳은 왼쪽입니다.
내리실 때 열차에 두고 내리는 물건은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보통의 전철 안내 방송이라면 마치 AI와 같이 나긋나긋한 여성의 목소리가 놓고 내리는 것 없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주의를 주기 마련이다. 졸면서 잠시 느긋하게 풀어졌던 마음도 그 방송을 들으면 다시 경계태세를 갖추게 된다. 내릴 곳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흘린 물건은 없는지 확인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날의 퇴근길 전철은 달랐다.


안녕하십니까, 이 열차는 당고개행 열차입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 모두 힘들고 지치시겠지만 다 지나갈 것입니다.
근심과 걱정이 있으시다면 열차에 모두 두고 내리시기 바랍니다.
저녁 식사 맛있게 하십시오.
오늘도 행복한 저녁 시간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목소리, 하지만 단단하고 굳센 어조로 또박또박 말씀하시는 기관사 아저씨의 방송에 괜스레 뭉클했다. 요즘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준 적이 있던가?

어쩌면 기계처럼 일만 하고 퇴근해버릴 수 있는 자신의 일터가 누군가에게는 지친 퇴근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나누는 아저씨. 타인의 행복을 빌어주는 마음이다.

퇴근길 지친 몸에 온기가 퍼졌다.


그래, 모두 다 잘 지나갈 거야.
근심, 걱정은 여기 열차에 모두 내려 두고 집에 가자.


그렇게 조금은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열차에서 내렸다.

나도 이렇게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면 참 좋겠구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쩐지 힘이 나는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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