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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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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스윗비 May 14. 2022

쳇바퀴의 고마움

일상을 유지하는 힘

가끔 주체할 수 없이 몸과 마음이 가라앉을 때가 있다.

날씨 탓일 때도 있고, 지병 탓일 때도 있고, 업무 스트레스 때문일 때도 있고, 도무지 원인을 찾을 수 없을 때도 있다.


취업 준비와 장래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 찼던 대학 졸업반 시절. 그런 날은 무기력하게 작은 자취방 구석에 누워 있곤 했다.

가끔은 그 하루가 이틀이 되고 삼일이 되고 여러 날이 되기도 했다. 그때는 내가 매일 해야 할 일도, 책임져야 할 일도, 나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일도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뭐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좌절감이 언제나 내 발목을 잡아끌었던 시절.

스스로와의 약속은 저버리기 쉬웠고, 남들과의 약속은 잡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자꾸 바닥으로, 더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나를 잡아줄 평범한 일상이 없다는 것은 번지점프가 아닌 자유낙하와 같은 것이었다.




사회인이 되고 아이를 낳은 이후로는 그런 하루는 허락되지 않는다.


기계처럼 일어나 아침을 주워 먹고, 아이와 인사하고, 전철을 타고, 출근을 한다. 세상은 힘들고 지친 내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고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래도 일단 업무를 시작하면, 관성대로 일을 하게 된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돌보면, 언제 지쳤냐는 듯 정신없이 육아를 하고, 그렇게 하루를 또 보낸다.


지루하고 속박 같아 보이는 나의 루틴과 일과들은 힘든 순간에 빛을 발한다.

내가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최소한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준다.


오늘 다 버리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내일이면 또 괜찮아지는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럴 때 일단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내고 나면, 그래도 살아지는구나-하는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그래도 잘 해냈다, 기특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은 경제적 자유, 조기 은퇴와 같은 키워드에 열광한다.

비단 돈뿐만 아니라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자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 같은 것들을 추구한다.


반면 막상 나이를 먹고 은퇴를 하신 분들은 오갈 데 없는 시간을 어떻게 죽일지 몰라 방황한다.

과연 지금 내가 퇴사를 하고, 은퇴를 한다면, 어떻게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의무감과 책임감 없이도 나의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그것이 진정 은퇴를 위해 필요한 준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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